매일신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건네는 사색으로의 초대장"

[책]샤이닝
욘 포세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죽음에 대한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죽음에 대한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Jon Fosse)가 작가 데뷔 40주년인 그해 발표한 소설이다. 본문 자체의 길이는 채 80쪽도 되지 않지만 1천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그의 걸작 '7부작'의 결정적인 압축판으로 평가받는다.

소설 '샤이닝'은 어느 초겨울, 저녁 삶이 지루해 무작정 차를 몰고 나갔다가 어둡고 깊은 숲 속 눈 밭에 고립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차 바퀴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공허함을 느끼며 차 안에 앉아 있다 점점 두려워진다. 급기야 날은 어두워지고 눈까지 내린다. 온 길을 되짚어보던 그는 절박한 마음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숲 속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피로와 추위와 배고픔에 방황하던 그에게 예기치 않게 신비한 존재들(순백색의 흰빛을 내뿜는 존재, 어머니와 아버지로 보이는 노부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소설 속 상황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의 1곡 중 1~3행 도입부(우리네 인생길 반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길에 있었네)를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인 나는 삶의 지루함과 공허함, 어둠 속 두려움과 고립감, 낯선 것들에 대한 불안과 신비, 사람에 대한 기대와 좌절 등 인간이 살면서 보편적으로 겪는 근원적인 감정을 어두운 숲 길에서 체험한다.

대책 없이 무턱대고 이 길에 들어선 자신을 탓하며 절망하다가도 앞길에 자신의 차를 빼 내주고 길을 찾아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절박하고도 허망한 기대를 놓지 못한다. 밤하늘의 달과 수많은 별 아래, 눈 내린 숲 속 나뭇가지가 드리운 바위를 보고도, 길을 잃은 누군가 쉬어갈 존재의 자리(집)를 그린다. 마지막에 가서 느닷없이 나타난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과의 동행은 어느새 숲 속에서 홀로 헤매는 생명을 더욱 경이롭게 비추는 또 하나의 신비다. 나는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이 존재들이 왜 나와 함께하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지를 독자 역시 거듭 생각하며 마치 체험하듯 따라가게 한다.

불가해한 이 만남 속에서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기는 주인공이나 독자나 마찬가지지만 욘 포세 특유의 절제된 단문과 명징한 묘사, 음악적인 독백의 문체는 가히 압권이다. 최면을 거는 듯한 반복적인 단문과 낯선 존재들과 나누는 대화는 선문선답 같기도 하고 기도문처럼 읽히기도 한다. 공회전하듯 반복적으로 되감기는 좌절과 희망, 믿음과 의심, 자책과 회심의 문장은 막다른 길에 봉착한 인간의 내면 심리에 대한 강력한 몰입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포세의 소설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단일한 해석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점인데 이 소설 또한 그렇다. 읽을수록 이야기는 명확한 단음으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모든 가능한 해석이 한꺼번에 울려 퍼지는 화음이 된다.

한국어판 부록으로 실린 그의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문: 침묵의 언어'도 일독할 만하다. 연설문에서 포세는 자신의 글쓰기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침묵도 언어다." 이 소설에서도 사람 하나 없이 고립된 어두운 숲 한가운데서 듣는 고요, 정적, 침묵이 작품과 문장 전체를 관통한다.

유수 언론사의 서평처럼 짧지만 강렬한 이 소설은 '욘 포세에 다가가기 위한 완벽한 입문서'(텔레그래프)이자 '새 노벨 수상자를 발견하고 싶고 그의 작품의 드높은 경지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상적인 디딤돌'(크낵 매거진, 데 스탠다드 데어 레터렌)이라 할 만하다.

힘들고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욘 포세가 건네는 사색으로의 초대장, 한 편의 시처럼 읽히는 죽음에 대한 짧은 걸작, 이것이 소설 '샤이닝'이다. 120쪽, 1만3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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