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보라 작가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위트 넘치는 포항의 특산물들

부커상 최종후보 경력의 정보라 작가 신작 발표 인터뷰
문어·대게·상어 등 포항 특산물의 반란

포항을 배경으로한 SF소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쓴 정보라 작가가 자신의 지난 삶이 담긴 신작 에세이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우 기자
포항을 배경으로한 SF소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를 쓴 정보라 작가가 자신의 지난 삶이 담긴 신작 에세이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우 기자

"이런저런 불편한 내용이 있더라도 결국은 제가 살고 있고, 사랑하는 포항에 여러분들이 와주십사 하는 이야기에요."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어느덧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문학 작가로 성장한 정보라 작가의 신작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가 출간했다.

지난 2020년 포항 출신의 남편을 만나 이곳에 살며 경험한 일을 고스란히 담은 SF 단편집이다. 포항 죽도시장부터 영덕, 구미 등 대구경북(TK)권을 배경으로 했다.

'문어'로 시작하는 단편은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로 이어진다. 모두 포항의 해양 특산물을 주인공 삼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선지 해산물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남편이 해산물을 와구와구 먹는 모습에 신기한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산물 시리즈를 써보자 생각했죠."

첫번째 작품 '문어'. 어느 날 대학교 비정규직 농성장에 민머리에다 촉수가 달린 외계인이 나타난다. 마치 문어를 닮은 존재들은 인간들에게 경고한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외계인의 최후는 허탈하다. 숙취에 취한 노조 위원장이 그것을 잡아 해장라면으로 먹어 버린다.

뜻하지 않게 지구의 구원자가 된 노조 위원장이지만,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참혹하다. 주인공 '나'는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비정규직 강사의 처지를 극복하지 못해 실직을 맞고, 위원장인 남편을 만나 투쟁을 이어간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SF를 빙자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정 작가는 지난 2022년 모교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시간강사의 퇴직금 등 처우 개선을 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투사로 나섰다. 작중 문어(외계인)를 잡아먹은 노조 위원장이 바로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 만난 지금의 남편이다.

"'문어'에는 제가 왜 남편에게 반했는지, 그리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가 들어있어요. 어떻게 보면 연애소설이기도 하네요. (웃음)"

심해 가스관 공사 도중 노동착취를 당하던 '대게'가 노동조합을 만드는 이야기나, 구룡포수산업자 사기 사건이 투영된 '상어'의 이야기 모두 현실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들이다.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보니 소설은 다분히 투쟁적이고, 현실 고발적이다.

그가 지난달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작 에세이 '아무튼, 데모'를 참고하면 그녀의 작품세계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 작가는 이번 소설을 '포항을 홍보하는 책'이라고 강조한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올해 국내 최대 독서문화축제 '2024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리는 포항시에서 '올해의 책(일반 부문)'으로 선정됐다. 죽도시장과 영일대해수욕장 등 포항의 대표 관광지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함께 신비롭게 묘사한 덕이다.

정 작가는 "장르문학이라 해도 결코 삶과 분리하기 어렵다"면서 "제가 사랑하고 인상깊었던 주변의 이야기를 계속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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