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은 노후·불량 건축물을 개량·정비하고 기반시설과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사업이다. 도시 기능 회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흔히 재개발·재건축으로 대표된다. 복잡한 법령과 규제, 주민 간 갈등, 공사비 분쟁, 정부의 조정 역할 미흡 등으로 아직도 난맥상이다.
우리나라 정비사업은 1970년대 이후 산업·도시화 과정에서 대량 건설된 주택들이 노후화함에 따라 이들을 체계적·효율적으로 정비하기 위해 시작됐다. 2010년대 들어와서는 정비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 저소득층 주거 불안, 젠트리피케이션 등 사회적 부작용이 부각되면서 물리환경적 개선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회복을 추구하는 '도시재생'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했다.
저출산·고령화·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주택보급률이 100%를 초과하면서 다수의 정비사업이 지연·중단됐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는 결국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도 재건축을 자산가들이 부(富)를 증식시키는 수단으로 보고 안전진단 강화, 사업 시행 연기 등 규제를 강화했다. 이로 인해 구도심에서는 기존 주택 노후화가 심화되고 주민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는 민심을 따라가는 법이다.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에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는 뜨거운 이슈가 됐고, 그 결과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이 지난달 27일부터 시행됐다.
특별법 제정으로 택지·산업단지 등으로 조성된 후 20년 이상 된 100만㎡ 이상의 지역은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통합 심의,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특별법에 의한 재건축·재개발 추진이 가능한 곳은 전국 108개 지구, 215만 가구에 달한다. 대구에서는 성서, 지산범물, 월배, 대곡, 칠곡, 시지 등 10개 지구가 포함된다. 지금까지 불편을 겪으면서도 규제와 사업성 부족으로 재건축이 막혀 있던 주민들은 법 시행을 반기는 분위기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구도심의 침체로 인한 인구 유출과 공동화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특별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해 재건축·재개발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비사업이 복잡한 만큼 한두 가지 해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업성이다. 정비사업으로 적어도 손해는 없어야 한다. 최근 2~3년 사이에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공사비, 과다한 신탁 수수료, 높은 공공기여 비율, 초과이익환수제 등은 사업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분양 수입 총액의 일정 비율로 돼 있는 신탁사 수수료 체계는 구간별로 요율을 다르게 정하고 공공기여는 그 비율을 낮추거나 인정 항목을 늘려야 한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의 경우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양도소득세와의 이중 과세 문제 등으로 위헌 시비가 있는 점을 감안, 폐지함이 마땅하다.
다음은 환경과 지속가능성이다. 전국에서 쏟아질 엄청난 양의 건설폐기물과 재건축 후 30년 뒤 또다시 기로에 설 아파트 운명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이와 함께 앞으로의 재건축은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 구조 안전성은 높이면서 가용 공간을 넓히는 공법을 채택하고, 전기·상하수·공조 설비는 유지 관리가 쉬운 노출형으로 시공돼야 한다.
특별법 시행이 많은 기대감을 주고 있으나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낼지는 미지수다. 복잡한 만큼 긴 호흡으로, 과거처럼 정치권력 변동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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