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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계 CEO 세계 혁신 주도…인재가 산업 발전의 핵심 [반도체 강국의 미래]<하>

中 공산화 피해 이민 떠난 모리스 창, TSMC 설립 대만 반도체 산업 기틀 다져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 AMD 구원투수 리사 수 등 세계적인 CEO 배출
대만 반도체 엔지니어 최고 대우…풍부한 인력풀 과학기술 발전 원동력

경북대학교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매일신문DB
경북대학교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매일신문DB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급변하는 가운데 경쟁국인 대만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무역특화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점유율이 높은 메모리 반도체 무역특화지수 격차도 축소되고 있다.

인재는 대만 반도체 산업 부흥의 원동력이 됐다. 공기업으로 시작한 TSMC 설립 이전부터 국책기관인 공업기술연구원(ITRI), 전자공업연구소를 설립하며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확대했고 해외 인재 유치도 마다하지 않았다.

대만 산업계는 '인재가 곧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는 가치를 공유했고, 그 결과 경제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모리스 창 TSMC 초대 회장. TSMC 제공
모리스 창 TSMC 초대 회장. TSMC 제공

◆ 대만이 배출한 혁신 기업인

대만계 기업인들은 '개척자' 역할을 하며 세계 첨단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TSMC의 초대 회장 모리스 창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국공내전을 피해 9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대학 졸업 후 당시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었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 입사해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50대 중반이 된 모리스 창은 대만 정부의 요청에 창업을 결심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이란 새로운 사업 모델을 제시했고, 그의 혜안은 대만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강국의 반열에 올려놨다. 공산당을 피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한 소년이 돌아와 대만 산업 발전의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TSMC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재도약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엔비디아 제공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엔비디아 제공

AI(인공지능) 반도체 선도기업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 CEO도 대만 타이난 출신이다. 태국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그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학업을 마쳤다. 엔비디아 설립 초창기 당시 GPU(그래픽 처리장치) 활용 범위가 국한돼 있었으나 AI시대를 맞아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돌파하며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에 이어 세계 3위 기업에 등극했다.

반도체 설계 기업 AMD를 이끄는 리사 수 CEO는 젠슨 황과 친척 관계다. 일찍이 반도체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치며 26세에 IBM 임원에 올랐고,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AMD의 '구원 투수'로 등판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주축이 된 인물도 다수 배출했다. 야후를 창립한 제리 양, 유튜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첸, 19살에 애플 고문을 맡은 천재 해커 오드리 탕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이공계 전공으로 첨단 분야에 진출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반도체 중심의 산업 육성정책과 기술창업에 대한 도전정신, 엔지니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경북대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매일신문 DB
경북대 반도체융합기술연구원. 매일신문 DB

◆ 엔지니어가 '최고 연봉자'…인재 유치전 치열

대만 산업계는 최고 수준의 기술 인력을 보호하고 이탈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우 관련 종사자들에게 최고 수준의 대우를 보장한다.

지난 2022년 대만 노동부 직업별 급여 현황 조사를 보면 TSMC의 비관리직 중위소득은 1억6천만원이고,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인 미디어텍의 경우 1억471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대만 평균 급여의 4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의사를 포함한 다른 전문직과 비교해도 처우가 더 좋은 편이다.

모리스 창 TSMC 전 회장은 지난해 대만법관협회 개막식 강연에서 대만 반도체 산업의 강점에 대해 "이 분야 근무를 희망하는 엔지니어, 기술 인원, 운영 인원 등 인재가 풍부하기 때문"이라며 "근무는 시간이 길고 클린룸에서 우주복 같은 복장을 착용해야 해서 매우 힘들지만, 대만에는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헌신적인 엔지니어가 있어 TSMC 매년 이직률은 4~5%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인재 육성 체제도 강화되고 있다. 2019년 출범한 '대만반도체연구센터'(TSRI)는 반도체 관련 연구개발은 물론 인력 양성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 기업, 대학교와 긴밀한 연계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반도체 전문인력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팹리스 중심 산업 구조의 틀을 깨고 파운드리 건립에 나서면서 인재 영업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 부흥을 노리는 일본 산업계도 석·박사급 인력을 데려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청소년들은 더이상 꿈을 과학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면 대만은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엔지니어를 선망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라며 "이공계 인재는 산업의 미래이자 국가 발전의 힘이다. 인재풀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인책이 요구된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반도체 생태계 육성 및 주도권 장악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 육성과 유출 방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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