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나를 버리고 나를 만난다

홍경임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

홍경임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
홍경임 대구 수성구의회 의원

얼마 전 부처님오신날이었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생각나는 어느 스님의 이야기가 있다. 지난 1925년 엿장수 한 명이 금강산 신계사를 찾아 나선다. 그는 이찬형이란 사람이다. 평안도 양덕에서 출생하여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그는 26세에 조선 최초의 판사 자리에 오른다.

조선에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그는 동포들을 징벌하는 심판의 지위인 판사가 된 것이다.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자리다. 말하자면 동포에게는 최악을 자행하는 일이었다. 검사는 일본인이다. 판사는 검사 논고대로 해야만 한다. 그는 동포에게 벌을 주는 판결을 하였다. 그는 고뇌하고 방황을 하다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여 집을 뛰쳐나온다. 그는 엿판을 등에 메고 길을 헤맨다.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신계사를 찾았다. 그의 나이 38세. 무섭게 정진을 이어간다. 그는 판사에서 엿장수로 그리고 엿장수에서 스님으로 변신을 거듭하여 다시 태어나기에 이른다.

아무리 높은 자리라도 어떤 삶이 이웃을 향한 삶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길을 잘못 들어선다면 재빨리 그 길을 떠나야 한다. 그 길이 부귀영화라도 떠나는 것이 삶의 지혜다. 한 알의 솔 씨앗이 울창한 해송으로 자란다. 풀 한 포기에도 수많은 시련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덧없음과 허무함, 고뇌와 절망 그리고 좌절. 그는 과거의 삶에서 탈출을 한 것이다.

세상살이가 조련치가 않다. 국제 사회도 개인 사회도 그러하다. 이 같은 일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나만의 이익만을 좇아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지구촌의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전쟁도 불사한다. 과정과 절차보다는 성취와 결과만을 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세상은 점점 황폐해지고 이 같은 시대적 추이가 개인 사회로 만연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부터 바로 서야 하겠다. 그리하면 사회가 바로 서게 되고, 나라가 바로 서게 되고, 국제 사회가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웃을 돌아보는 새사람으로 태어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버려야 한다. 지난날을 반추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웃에게 플러스가 되는 그런 사람이 새로운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너무 힘들다. 갈팡질팡하는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주장만 있고 타인의 말에는 귀를 열지 않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매일 나의 말부터 성찰해 보면 좋겠다. "그대가 존재하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는 말을 되뇐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올바른 삶의 궤도일 것이다. 모두 제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삶의 궤적을 이탈하지 않고 늘 타인에게 나의 말 하나부터 나의 행동 하나가 플러스가 되는가를 생각하면 한다. 그러면 우리들의 삶은 보다 행복한 오늘을 위한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사람을 평가하는 저울이 있다.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보고, 영국은 어떤 품격을 가진 사람인가를 생각한다. 독일은 무엇을 아는 사람인가를 판단하고, 이탈리아는 무엇을 바라보는 사람인가를 고민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모두가 품격을 갖추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플러스가 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건강한 자질을 갖추어 품격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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