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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4쌤의 리얼스쿨]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정말 어렵고 중요한 일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에나. 10년 전에 있었던 여학생이 아직도 우리 교실에 존재하다니. 뽀송뽀송한 피부를 굳이 누리끼리한 비비크림으로 덮고, 얼굴과 목의 경계를 분명히 하며, 몇 번이나 덧대어 올린 마스카라. 쌍꺼풀 테이프까지. 게다가 촌스럽게 많이 발라 오히려 해골 같아 보이는 쉐딩까지. 10년 전 그 여학생도 그렇게 얘기했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야 해서 시간이 없다고. 그래서 마치기 전에 단장을 끝내야 한다고. 그 아이는 6, 7교시만 되면 기괴한 얼굴로 변했다. 뽀송뽀송한 피부를 유지해야 해서인지 1~4교시는 내리 잠만 자곤 했다.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마다 쟤는 학교에 무슨 생각으로 오는 건지 걱정된다고들 하셨다. 늘 화장하지 마라, 안 해도 예쁘다 지겨울 만큼 얘기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날 빈 교실에 단둘이 있게 됐을 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화장을 하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화장을 벗기는 건 진실한 눈빛이었다.

"저는 제 얼굴에 자신이 없어요. 잘하는 것도 없고요."

10년 전 그 상황이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

"제 얘기를 제일 잘 들어주는 건 남자친구뿐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남자친구 만나는 시간만 기다려요. 남자친구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어느 날 햇살 받은 위치에 앉은 그 아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맨 얼굴 위로 기분 좋을 정도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그 아이의 검은 머리를 뒤흔들었고 아이는 쉴 새 없이 그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있었다. 진짜 참 예뻤다. 나도 모르게 내가 한참 그 아이를 보고 있었나 보다. 세상에……. 본인이 저렇게 예쁜 줄도 모르고 있다니. 빤히 보는 눈빛을 느꼈는지 눈이 마주쳤고 곧이어 그 아이는 당황한 듯 내 눈을 피했다.

종례가 끝나고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아까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셨어요? 저 뭐 잘못했어요?"

"너무 예뻐서."

아이는 꽤 당황한 듯했다. 지금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는데 아까 그 모습이 예쁘다고 하니 말이다.

"지금 네 얼굴 말고, 아까 네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빤히 봤네. 기분 나빴다면 미안."

아이는 당황한 듯, 감동한 듯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교실을 나갔다. 다음날부터 그 아이는 정확히 2일간 화장하지 않았다. 3일째에 다시 시작했지만. 나는 알았다. 진실한 말과 표정의 힘을.

'화장하지 마, 진짜 안 해도 예뻐'라고 말한 것, 벌점을 준 것, 반성문을 쓰게 한 것. 그 수십, 수백 번의 행동보다 진실한 그 한 번의 몸짓이 그 아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진짜 그렇게 예쁜가?'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 아이들은 귀신같이 참된 메시지를 읽어낸다. 이에 나는 매번 진심으로 대함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장난 속에 숨겨진 진심을 읽다

종례 후 그날따라 유난히 행동이 늦은 남학생 하나가 혼자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잘 됐다. 오늘 저 아이의 행동이 느려서. '조용히 둘이서만 있으면 하고픈 얘기가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너무 다른 애들한테 맞춰주지 마. 아이들 위해 행동하지도 말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교실에 남은 가정통신문을 챙기며 무심한 듯한 말이었는데 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실은 전부터 그 아이의 행동이 눈에 띄었다.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몸짓과 웃음. 그 모습은 마치 꼭 그렇게 보여야만 하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무심한 듯 던져 본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이렇게 답해주길 바랐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뭘 맞춰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예상이 맞았던 것이다. 그 아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괜찮은 척, 밝은 척하는 가면 말이다.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외부 강사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 시간, 제시된 글을 누가 한번 읽어보자 했더니 누군가 그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 시켜요, 되게 잘 읽어요."

"맞아요, OO야, 한번 읽어주라."

아이는 분명 웃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찝찝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었다.

"그럼 읽어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읽어보자."

애들은 뭔가 뾰로통해졌고 다른 아이가 글을 읽었었다. 그 뒤로도 다른 교과 선생님을 통해 그 아이가 일부러 넘어지는 시늉을 하며 아이들을 웃겨주기도 하고, 요즘 이상할 정도로 밝아진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여전히 양보나 배려할 기회가 있으면 늘 그렇게 하는 그 아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해 주는 것에 아주 익숙해진 반 친구들도.

나는 그 아이를 따로 불러 물었다.

"그날 울음이 터진 이유, 말해줄 수 있니?"

아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꺼이꺼이 울었다. 이쯤 되니, 그날 내 말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한바탕 울음을 토해내고 나서야 아이는 입을 열었다.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괜찮지 않다니. 세상에. 마음이 아려왔다. 그 착하디 착한 배려, 양보의 아이콘인 아이가, 늘 '난 괜찮아, 너 먼저 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가 제 입으로 괜찮지 않다니. 나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다니, 참 고마웠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젠지도 모른단다. 집에서는 착하고 반듯한 아들로 불리는데 그 모습을 깨기 싫다고도 했다.

"그럼 어머니는 어떡해? 이렇게 네가 힘든 시기에 도와주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아시게 되면, 그건 어머니께 너무 가혹한 거 아닐까? 그게 진짜 어머니를 배려하는 게 맞나?"

아이는 생각에 빠졌다. 나는 계속했다.

"친구들 다 챙겨주고 너는 매일 뒷전인 게 맞아? 그럼 너는 누가 챙겨줘? 자신을 우선시하는 거, 가장 소중하게 대해주는 거, 그것도 필요해."

나는 위클래스 상담을 권유했고 아이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했다.

나는 다시 한번 진심의 소중함과 위력을 느꼈다. 장난스러운 표정과 말투, 그 너머를 보는 시도가 없었다면 그 맑은 눈망울에 맺힌 눈물을 결코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 정말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교실전달자(조운목쌤,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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