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 넘쳐나 '헐값' 되파는데 양곡법 강행…표심 눈치보기로 혈세 낭비

올 연말 기준 정부 양곡 재고량 140만t…적정 규모 한참 웃돌아
양곡법 도입시 초과생산량 132.6% 증가…농안법은 변동직불제 부활

지난해 10월 26일 광주 서구 영산강변 들녘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26일 광주 서구 영산강변 들녘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쌀 소비가 줄어 남는 쌀을 정부가 사들이고 헐값에 되파는 일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쌀이 정치권의 표심 눈치 보기로 '정치재(財)'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 개정안까지 도입된다면 재정 낭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쌀 수매 적자인데…양곡법 도입 시 초과생산량 132.6% 증가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연말 정부 양곡 재고량은 약 140만톤(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성적 공급 과잉으로 정부 창고에 쌓이는 쌀이 적정량(80만∼100만t)을 넘어서는 일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정부 양곡 40만t을 사료용으로 처분하겠다는 특단의 조치를 꺼내 들었다. 3년 넘게 방출되지 않은 사료·주정용 쌀은 매입가 대비 10~20%인 '헐값'으로 처분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10만t을 사는 데 약 2천479억원이 들지만, 사료용 판매 대금은 349억원 정도다.

넘치는 쌀을 싸게 되팔아야 하지만 소비는 줄고 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90년 119.6㎏에서 지난해에는 56.4㎏로 52.8% 줄었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70만2천t으로 1990년 쌀 생산량(560만6천t)에 비해 34% 줄었지만, 소비량에 견줘보면 감소세가 더디다.

여기에 양곡법 개정안까지 도입되면 남아도는 쌀은 감당하기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초과생산량 규모는 연평균 46만8천t으로, 전망치 대비 132.6% 증가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냈다. 시장 격리에 따른 재정 소요액은 연평균 1조443억원으로 추산된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이하 농안법) 개정안까지 국회 문턱을 넘으면 농산물 수급 조절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주요 농산물의 기준 가격을 정하고 이보다 내리면 차액을 보전해주는 내용이 문재인 정부 시절 폐지된 '변동직불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변동직불제는 정부가 쌀 목표가격과 시장가격 차액의 85%를 보장하는 제도로, 쌀 공급 과잉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2020년 폐지됐다.

승준호 농경원 곡물경제연구실장은 17일 열린 '지속 가능 농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대상 품목 선정과 기준·시장가격, 차액 보전율 등을 결정하는 농산물가격안정심의위원회의 권한이 비대해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쌀과 특정 품목에 대한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반대로 공급 부족 및 가격 상승 현상이 우려되므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곡법·농안법, 野의 '農퓰리즘'…농민단체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야당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양곡법·농안법과 유사한 정책을 도입 중이라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기준가격이 낮아 제도로 인한 증산 유발 효과가 거의 없고, 일본은 계약 물량만 보전한다는 것이다.

쌀이 일종의 '정치재'로 취급되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에서 쌀 농가 보호를 명목으로 예산을 투입하려는 악순환이 반복돼 적정 생산·농업 선진화 대책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변동직불금 제도만 해도 쌀 과잉 생산을 유발하고 재원이 쌀에 치중된다는 이유로 폐지된 정책"이라며 "민주당도 책임 있는 여당 시절엔 문제가 있다고 봤던 정책인데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고 했다.

기존 농가 안정 정책과도 엇박자를 낼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도입한 전략작물직불제는 논에서 밀·콩 등 수입 의존성이 높은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를 지원하는 제도인데, 이들 작물 재배를 장려하면서 또다시 쌀 증산을 유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쌀 자급률은 104.8%에 달하지만 밀(1.3%), 옥수수(4.3%), 콩(28.6%) 등의 자급률은 저조하다.

이용형 대한곡물협회 경북도지회장은 "쌀농사 한쪽에 기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한시적인 농업 정책이 아니라 전반적인 농업 정책의 흐름이나 쌀 품질 개선 등이 추진돼야 한다. 양곡법·농안법이 도입되면 궁극적으로 질보다는 양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용 한국쌀전업농 경북도연합회장은 "수입에 의존하는 작물을 심었을 때 쌀농사보다 수익이 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면 농민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콩·밀 등을 재배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등 농가의 안정적인 생산을 지원하면 쌀 생산은 자동으로 수급 조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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