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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어쩌다 나는 근심을 멈추고 책 칼럼을 쓰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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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정말 뜻밖이었다. 영화평론가에게 책에 관한 칼럼을 쓰라고 요청이 올 줄은 몰랐다. 책을 사고 읽는 데 열심이었고, 몇 권의 졸저를 내놓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나는 책에 무지한 사람이었다. 못 쓸 일도 없지만, 본업으로도 생계를 책임 못 지는 주제에 다른 영역까지 기웃대는 게 좋은 선택인지 미심쩍었다. 어쨌든 시작했다. 영화도 영화평론도 모두 문학에 기대고 있다는 자기변명을 확신 삼아서였다.

변명의 배경은 이랬다. 영화는 창작과 비평이 가진 무기가 서로 달라 비평가가 창작자를 이길 수 없는 데 반해, 책은 무기가 같으니 해 볼 만하다고 여긴 것. 말하자면 영화감독에게 카메라(영상)가 무기라면 영화평론가는 펜(글)이 무기이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 반면 문학은 창작자도 평론가도 모두 펜으로 이야기한다. 동등한 조건이라 해볼 만한 승부라는 것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의 솔직한 느낌을 적으면 된다고 믿었고, 주위 눈치 보지 않는 성격에 비추어 그리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놓친 게 있었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영화는 2시간, 길어봐야 3시간 안에 완주 가능하지만, 책은 분량과 내용에 따라 최소한 하루에서 일주일 이상 걸린다는 사실. 즉 텍스트를 이해하는 건 고사하고 수용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속독해도 되는 책이 있는 반면, 천천히 곱씹어가며 푹 빠져들어야 하는 책도 있고, 지나치게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시간만 잡아먹는 책도 있었다(어느 쪽이든 끝까지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또 하나는 고전의 경우 몇몇 대형출판사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알만한 클래식은 3~4곳에서 대부분 발간되었다. 업계 특성상 불가피한 일임에도 혹여 매체 칼럼이 특정 출판사 책에 치우치는 건 아닐까, 하는 자기검열에 시간을 허비할 때도 있었다. 에두르지 않고 말하자면, 지난주는 '위대한 개츠비'였고, 당초 이번 주는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차례였다. 둘 다 문학동네에서 펴낸 책이다. 중간에 이 글을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

어쩌다 책 칼럼을 맡고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일상의 비중이 영화에서 책으로 옮겨간 것이다. 내 방에는 책상이 두 개가 있는데, 위아래 책상에 3종류의 책이 놓여 있다. 읽은 책, 읽는 책, 그리고 읽을 책. 늘 십여 권의 책에 포위된 형국이다.

지난 화요일 밤에 이번 주 마감을 쳤고, 수요일엔 다음 초고를 끝냈으며 오늘은 그 다음 주에 쓸 책의 메모를 마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건 의심이요 줄어드는 건 확신이다. 지금, 내가 맞게 쓰는 건가 싶은 의심은 기고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인즉. 그래도 잘 해내고 싶고, 잘 쓰고 싶고, 내가 쓴 글을 보고 누군가 그 책을 읽고 싶어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다.

나는 기계적인 반복 작업의 효율과 기능성과 품질을 신뢰하고 신봉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장인들이 만든 영화를 높이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관성적으로 쓰다 보면 제대로 잘 쓸 날이 내게도 올까. 마음을 다잡고서 고개를 돌리니 읽다가 덮은 책이 보인다.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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