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남자', 장 파투(Jean-Patou)
1887년 프랑스 파리 피카르디(Picardy)에 기반을 둔 태너 가문에서 태어난 장 알렉산드르 파투(Jean-Alexandre Patou(장 파투로 이름 변경))는 고급 가죽제품 제혁업자인 아버지와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2년 '메종 패리(Maison Parry)'라는 양재 살롱을 오픈하였으나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활동을 잠시 중단, 1914년 독일의 벨기에 침공 직후인 8월에 전선에 동원되었다. 전선에서 돌아온 그는 부모님, 여동생(마들렌 파투)과 그녀의 남편(레이먼드 바르바스)의 도움을 받아 1919년 자신의 이름을 딴 메종 장 파투를 리오픈(reopen) 하였다.
1920년대의 장 파투는 파리의 멋쟁이로 흠잡을 곳 없는 취향을 지닌 심미주의자이자 선구자였던 그는 모든 사교 행사에 참석하여 파티와 식사를 즐겼고 유럽과 미국 전역을 다니며 여행했다.
경주용 자동차를 타며 빠른 스피드를 즐겼으며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쾌속정으로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등 강렬하고 역동성으로 가득 찼으며 미국 언론은 그를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남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 감각과 자유로움을 패션으로 결합하여 여성들의 패션에 혁신을 선도하였다.

그는 발칸반도와 동부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스타일의 니트 수영복의 스포츠웨어 라인과 짧은 길이의 스커트, 코르셋없이 착용하는 미니멀한 실루엣의 원피스 등을 선보이며 첫 번째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여성들의 패션에 틀을 깨고 제한적이었던 의복에서 해방시켜 주었고 보이시한 스타일이 유행하던 시기에 테니스 챔피언인 수잔 랭글렌을 자신의 뮤즈로 삼아 대담한 민소매 상의와 무릎길이의 테니스 유니폼을 디자인하며 오트 쿠튀르 스포츠웨어의 창시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여성복의 실크 스카프를 활용하여 최초의 여성용 넥타이를 출시했다.
당시 그의 경쟁자였던 샤넬과 함께 '가르송' 룩의 선도적인 디자이너로 주목받았으며 그는 1924년 자신의 컬렉션을 발표하기 위해 6명의 미국 모델을 데려온 최초의 유럽 디자이너로 언론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1919년부터 1924년까지 장 파투의 매출은 30배 증가하며 파리의 유명 여배우 루이스 브룩스, 콘스탄스 베넷, 메리 픽포드 등 상류층 여성들과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어 파리의 생-플로렌틴(Saint-Florentin) 거리에 위치한 메종 장 파투는 필수 방문지가 되었다.
큰 성공과 함께 카지노에 도박을 즐기던 그는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25년, 몬테카를로에 새로운 부티크를 열었으며 자신의 디자인 복제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이니셜인 "JP"로 구성된 모노그램을 적용하여 고급 맞춤 가운과 니트 수영복 라인을 선보이며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입기 시작하였다.

◆ 매혹적인 향수 '조이(JOY)' 출시
1929년의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장 파투는 뉴욕에 새로운 매장을 열어 바카라(Baccarat)와 반 클리프(Van Cleef)와 협력하여 향수 '조이(JOY)'를 출시하며 큰 인기를 얻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수(30ml에 1,000달러)로 유명해졌다. 매혹적인 향수 조이의 특이점은 만 송이의 자스민과 286송이의 그라스 센티폴리아 장미와 일랑일랑, 참팩, 튜버로즈 등의 꽃들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건축가이자 장인인 루이스 쉬에(Louis Süe)가 디자인한 오리지널 향수병은 단순하고 고전적인 디자인으로 제작되었으며 "조이(Joy)"는 2000년 향수 재단의 오스카상인 FiFi(The Fragrance Foundation) 어워드에서 "샤넬 No. 5"를 제치고 세기의 향수로 선정됐다.

◆ 메종 장 파투를 거쳐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큰 인기와 성공을 뒤로하고 장 파투는 1936년 48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며 화려했던 그의 삶처럼 빛나는 별이 되었다. 메종 장 파투는 그의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이 경영을 이어갔다.
창립자가 없는 장 파투는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마크 보앙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어 예술적인 방향성을 전개하였으며 보앙의 뒤를 이어 1958년 칼 라거펠트가 수석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미셀 고마가 패션 하우스의 수장으로 남아 양재 작업과 기성복개발을 병행했다. 이후 장 폴 고티에, 안젤로 탈라치,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뒤를 이었으며 1987년대 크리스찬 라크르와가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떠나며 메종 장 파투는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다.
2001년 프록터 앤 갬블에서 인수, 2011년 영국 기반회사인 디자이너 퍼퓸스(Designer Parfums Ltd)에 다시 인수되어 2018년 9월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그룹은 디자이너 퍼퓸즈와 파트너십으로 장 파투의 대다수 지분을 인수하여 기욤 앙리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 기욤 앙리가 이끄는 '파투(Patou)'
1978년 프랑스 동부에서 태어난 기욤 앙리는 트루아 보자르에서 공부한 후 뒤프레 응용 미술학교와 파리 패션 스쿨(IFM)에서 패션 & 크리에이션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지방시와 폴 카에서 이름을 알렸으며 2009년 카르뱅과 2015년 니나리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며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8년 9월, LVMH그룹은 기욤 앙리를 예술 감독으로 임명, 기존의 브랜드 레이블인 '장 파투'에서 '파투(Patou)'로 레이블을 변경하여 2019년 9월 파리 패션 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파투 하우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 파투의 잇 백 '르 파투 백'
장 파투의 'JP' 로고인 모노그램에서 영감을 받은 최초의 가죽 핸드백인 '르 파투 백(Le patou bag)'과 '르 쁘띠 파투 백(Le petit patou bag)'은 일 드라 시테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디자인하고 업사이클링 고급 가죽으로 제작되어 색상은 한정판으로 레이블에 제작 순번이 매겨져 있다.

30년 이상 가죽제품 생산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우브리케 마을에 위치한 당사 제조업체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며 가죽 한 조각, 조각들을 신중하게 선택한 다음, 7개의 가죽 조각을 장인의 손으로 재단하고 제작되었다.
지난해 11월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착용해 화제가 된 블랙 컬러의 '르 파투 백'은 연일 매진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사장의 착용 이후 판매량은 2주 전에 비해 1천% 증가하는 등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는 '잇 백'으로 알려져 있으며 배우 김희선, 한예슬 등이 파투 의상을 착용해 화제를 모았다. 그 외에도 르 비스킷, 르 JP, 오가닉 면을 사용한 토트백과 버킷 백 등 다양한 가방들을 선보였다.

◆ 파투의 업사이클링 첫 번째 에디션
브랜드의 기존 재고를 재구성하여 젊은 창작자와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용도를 변경하고 환경을 고려한 지속 가능성에 중심으로 두어 진행하는 재활용 프로젝트 '파투 업사이클링'의 첫 에디션으로 친환경 주얼리 브랜드 키테시 마틴 스튜디오가 선정되어 파트너십을 맺었다.
키테시 마틴은 예술과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실버와 골드를 혼합한 오브제로 스타일을 강조했으며 사용하지 않는 직물과 용품들을 재사용한 의류, 가방, 신발 등 창의적이면서 실험적인 다양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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