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양궁이 파리 올림픽에서 전 종목 석권의 대업을 이루면서 '양궁의 고장'으로 불리는 경북 예천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예천은 김진호 선수부터 김제덕 선수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궁'을 배출한 곳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통산 세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예천군청 소속 김제덕(20) 선수는 한국 양궁의 현재며 미래다. 나이와 실력 등 모든면에서 앞으로 한국 양궁을 이끌어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예천에서 자란 김제덕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양궁 영재로 불렸다.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는 고교생 신분으로 남자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 종목에서 금메달 2개를 따냈다. 성인이 된 후 예천군청에 입단해 치른 파리 올림픽에서는 남자 단체전에서 1개의 금메달을 추가로 목에 걸었다.
김제덕에 앞서 예천 양궁을 맨 처음 알린 선수는 김진호다. 17세(만 15세)의 나이로 참가한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양궁 역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대회 등에서 선수 생활 중 그가 수립한 신기록만 37개에 달한다. 1995년 예천에는 김진호의 이름을 딴 '진호국제양궁장'까지 지어졌고, 현재까지 한국의 대표 양궁장으로 꼽히고 있다.
이후에도 예천 신궁의 명맥은 이어졌다. 1999년 29세의 나이로 예천군청 양궁팀에 입단한 김수녕 선수는 은퇴 6년 만의 복귀 이후 단 1년 만에 참가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같은 해 발탁된 장용호 선수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 2연패를 달성해 당시 예천군청 양궁팀에선 2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동시에 탄생했다.
예천 출신인 윤옥희 선수도 김제덕이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예천 양궁의 저력을 지켜왔다. 윤옥희는 김제덕과 같이 초·중·고 모두 지역 내 학교 선수로 활약하다가 졸업 후 예천군청에 입단했다. 입단 후에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여자양궁 세계랭킹 1위라는 타이틀도 따냈다.
진호국제양궁장 건립은 예천군이 양궁 인재 육성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제2의 김진호를 배출하고자 지역의 민·관·학이 협심한 결과 예천은 초·중·고등부까지 이어지는 단계별 선수 육성 과정과 훈련 인프라, 각종 지원 등을 모두 갖춘 육성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체육 수업 시간이나 활쏘기 체험을 통해 재능을 보이는 선수들을 우선 선발하고 지원한다. 초등부 때는 지도자들이 가장 기초가 되는 기본기부터 어린 선수들이 양궁에 재미를 느끼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보살핌' 지도를 중점적으로 한다.
중등부부터는 본격적인 기초 훈련과 정신력 등을 배우고, 고등부에 가서는 정교한 기술 훈련과 양궁 메커니즘 등에 대한 심도 있는 교육을 받는다.
이런 교육 체계는 윤옥희, 김제덕와 같이 국제무대를 누비는 선수를 비롯해 언제든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선수층을 만들었다.
이밖에도 예천군은 양궁부가 있는 6개 학교에 매년 수 천만원 이상의 장비구매 비용과 훈련비를 지원하며, 지역 기업가들도 정기적으로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해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훈련에만 정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제덕 선수는 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도쿄올림픽 이후로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식지않는 예천군민 분들의 뜨거운 응원이 파리 올림픽까지 이어져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었다"며 "다음 LA 올림픽에도 양궁을 사랑하는 군민들에게 기쁜 선물들 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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