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지만,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로 한국 문학에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요즘이다. 넷플릭스를 누르고 어떤 걸 볼지 고민하는 시간만 길어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어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라면, 더군다나 그 소설이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의 작가나 제목이라면 선택의 시간을 줄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구병모의 '파과', 김초엽의 단편소설 '스펙트럼'('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김보영의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같은 인기 소설들의 영화화가 확정된 가운데,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잘 알려진 김려령 작가의 장편소설 '트렁크'도 이달 29일(금) 넷플릭스 드라마로 공개를 앞두고 있다. 배우 서현진과 공유가 주연을 맡아 두 배우의 연기력과 시너지에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대 중이다.
원작 소설인 김려령의 '트렁크'는 2015년 출간돼, 이번 드라마 개봉과 함께 9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개성 넘치는 문체와 폭넓은 사유로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김려령 작가의 작품답게 미국, 영국, 중국,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6개국에 번역 수출된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 트렁크는 '배우자 임대 서비스'라는 파격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올해 스물아홉살인 주인공 '노인지'는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비밀 자회사 NM의 육년차 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본사 직원들이 미혼 남녀의 결혼을 연결하는 일을 담당한다면, 이 비밀 자회사 직원들은 직접 VIP회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기간제 부인 또는 남편으로 일하게 되는 '계약 결혼' 업무를 맡고 있다. 업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던 인지였지만, 자신의 연애에 과도하게 간섭하는 어머니에 대한 반감과 취업의 어려움으로 망명하듯 NM에 입사하게 된다. 네 번째 결혼을 마친 인지는 이번 결혼의 남편인 '한정원'으로부터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 번째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소설은 '기간제 아내'로 살아가는 그녀의 결혼생활과 그녀 주변 인물들을 통해 사랑과 결혼, 인간관계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실제로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외면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소재들을 전면에 내세워 삶과 사랑에 '보편'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 고루하다고 꼬집는다. 특히 주인공 인지의 소개팅 상대인 '엄태성'은 주인공의 거절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삶에 개입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세상의 '폭력성'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엄태성을 비롯한 주인공을 둘러싼 사연 많은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타인의 삶에 무책임한 호기심을 갖고 개입하는 것이 거대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런 사랑, 모두 꺼내어 볕에 널고 싶다. 누구라도 보송보송 잘 마른 사랑을 했으면 했다"라며 마음 한구석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날 사랑을 응원한다.
"내 직업에 대한 회의였다. 누가 내게, 당신의 이십대는 어땠나요? 물으면, 대답이 마땅치 않다. 트렁크. 여행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좋았겠어요. 글쎄요. 십대 때 원한 이십대가 아니었다. 벌써 서른이다. 삼십대를 마치며 또 후회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을 꾸역꾸역 구겨 넣고 다녔던 트렁크를 버려야 한다."(본문 232쪽)
다시 소설 제목으로 돌아와 작품 속 '트렁크'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인지가 배우자 임대 서비스 출장에 나설 때마다 꾸리는 짐이자, 20대 청춘을 바친 다섯 번의 결혼생활이자, 어딘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이자, 원하지 않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나약한 마음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주인공은 마음의 짐인 트렁크를 정리한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트렁크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당신은 행복합니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248쪽, 1만7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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