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박물관의 대모(大母)'로 불려 왔던 이난영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이 지난 8일 별세했다.
박물관장이라는 직함을 떼고 그저 박물관을 좋아하는 할머니로서 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인은 지난해 초 '박물관 할머니'가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인 '박물관에서 속닥속닥'(진인진) 책을 출간했다.
그는 진주여고와 서울대 문리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57년 국립박물관에 첫발을 들였다. 박물관은 물론, 문화계를 통틀어도 여성이 많지 않던 시절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각종 유적 조사와 발굴을 도맡아 하던 시절 그는 남자 학예사들과 함께 현장을 누볐고 '무덤 파는' 여자라는 호칭이 붙기도 했다.
고인의 박물관 생활은 유물 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서 빛을 발했다.1966년 한일 협정에 따른 약탈 문화재 반환 협약에 근거해 국립박물관에 돌아온 유물을 정리하고 등록해 수장품으로 관리하는 데도 그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학계에서 '즐문토기'로 부르던 토기 명칭을 '빗살무늬토기'로 바꿔 부르게 한 것도 그다.
반세기 가까운 박물관 생활에서 고인이 가장 애착을 가진 곳은 경주였다. 1986년 국내 첫 여성 국립박물관장이 된 그는 신라 토우와 동경(銅鏡·구리로 만든 거울) 등을 연구하면서 신라인의 삶과 역사를 복원하는 데 기여했다.
퇴임한 뒤에는 국내외 연구 자료 3천600여 권을 경주박물관에 기증해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평생을 박물관인(人)으로 살았던 그였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그는 2006년 펴낸 회고록 '박물관 창고지기'(통천문화사)에서 여성으로서 감수해야 했던 각종 차별대우, 국립경주박물관장 임명 당시 느낀 소회 등을 털어놓았다.
그는 1993년 뚜렷한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려는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고 국보인 성덕대왕신종 보호를 위해 타종 행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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