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판결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에서 무시무시한 말과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법원 선고 후 이 후보는 "법도 국민의 합의"라며 "국민의 뜻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 말에 기자는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했다. 그 국민이 누구의 어떤 국민인지 모르겠으나 국민이 합의하면 사법적 판단은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고, '국민의 뜻'은 어떤 것이든 법 위에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 '반혁명 분자' 처단을 위해 설립된 '혁명재판소'는 법률이 아니라 '사건의 상황과 혁명가적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형벌을 내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모던타임스 Ⅰ', 폴 존슨) 이후 '소련의 법치'는 이 경로에서 한 치도 이탈하지 않았다. 스탈린 집권기 검찰총장으로, 스탈린 독재의 법률 이론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안드레이 비신스키는 이를 더욱 명료하게 정리했다. "법의 형식적 명령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명령은 충돌하거나 모순될 수 있다. 이 충돌은 법의 형식적 명령이 당 정책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해결돼야 한다."
법 밖의 무엇을 법 집행의 준거(準據)로 삼았다는 점에서 나치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나치는 소련과 쌍생아(雙生兒)였다. 히틀러 내각의 첫 법무부 장관인 프란츠 귀르트너의 법 해석은 이를 간명하게 보여 준다. "법은 무엇이 합법이고 무엇이 불법인지 결정하는 유일한 원천이라는 그 권리를 포기한다." 이런 원칙은 1936년 채택된 개정 형법 제2조에 그대로 반영됐다. 어떤 행위가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대중의 여론'이 원하면 처벌하도록 한 것이다.('독재자들', 리처드 오버리)
소련과 나치가 법을 집행하면서 따랐던 '프롤레타리아의 명령'이나 '민족' '대중' '여론'은 법 밖의 추상적 범주(範疇)이다. 이 대표의 '국민의 뜻'도 마찬가지다. 판결의 준거가 추상적이니 무엇이 죄인지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무한정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죄가 아닌 것도 죄가 된다. 이런 게 인민재판이다.
민주당이 이 후보 사건 2심 파기환송을 '사법 쿠데타' '노골적 대선 개입'이라며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겁박(劫迫)하고 서울고등법원 파기환송심을 향해 오는 15일로 잡힌 첫 재판을 당장 취소하고 '통상의 절차와 재판 관행'을 준수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국민의 합의' '국민의 뜻'이라는 이 후보 '철학'의 충실한 추종이다. 이 후보는 3일 대법원장 탄핵 추진 관련 취재진의 질문에 "당이 국민의 뜻에 맞게 처리할 것으로 본다"며 다시 '국민의 뜻'을 꺼냈다. 내가 생각하는 '국민의 뜻'에 어긋나면 사법 체계는 얼마든지 뒤엎어도 된다는 무서운 발상이다.
민주당이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은 그런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준다. 자기편을 대거 대법관으로 심으려는 속셈이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다. 그대로 되면 대법원은 민주당의 사설(私設) 로펌으로 전락해 삼권분립은 무너진다. 이미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차베스는 1999년 취임 후 개헌에 이어 대법원을 해산하고 새로운 대법원을 구성했다.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차베스는 2004년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고 그 자리에 '혁명적인' 측근들을 채워 넣었다. 효과는 '대박'이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4만5천474건의 대법원 판결 중 차베스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은 한 건도 없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1937년 비슷한 시도를 했다. 연방대법원이 뉴딜 정책 관련 핵심 법안을 번번이 위헌으로 판결하자 당시 9명의 대법관 가운데 70세 이상인 판사 수(6명)만큼 대법관 수를 늘려 친정부 성향의 판사를 임명하려 했다. 이른바 '대법원 재구성 계획'(Court-Packing)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여당인 민주당조차 '사실상 독재를 향한 걸음' '법치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민주당에는 이런 자정 능력이 없다. '이재명 일극 체제'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급기야는 "삼권분립의 막을 내려야 할 시대가 아닌가"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고하는 듯하다. 다시 한번 모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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