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디오로 먼저 들려온 소설, '완주'를 위한 여름나기…김금희 신작

[책] 첫 여름, 완주
김금희 지음/무제 펴냄

여름 일러스트
'첫 여름, 완주' 책 표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메일함에 들어갔다가 두 눈을 의심하게 한 제목이 있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배우 박정민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메일은 그가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의 대표로서 신간을 소개하기 위해 직접 보도자료를 작성해 보내온 것.

이번 무제에서 출간된 신간은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다. 낙담한 마음과 상처를 안고 '완주' 마을에 도착한 주인공 '손열매'가 사람들 사이의 호혜적 사랑을 통해 다시 세상으로 나설 용기를 되찾는 이야기다.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저자이자 사람의 온기와 슬픔까지도 사려 깊게 그려내는 김금희 작가 특유의 필치가 빛나는 작품이다.

이번 신간의 주목할 점은 종이책이 출간되기에 앞서, 오디오북이 먼저 나왔다는 점이다. 무제 출판사의 '듣는 소설' 프로젝트를 두고 박정민 대표는 "출판사 첫 책 '살리는 일'이 출간될 즈음 아버지께서 시력을 잃었다. 아들이 만든 첫 책을 보여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상심했고, 아버지처럼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오디오북을 만들게 됐다"고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오디오북이 출간되는 과정은 책이 출간된 뒤 성우가 책을 낭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지지만, 이번 책은 거꾸로 오디오북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기 때문에 반 희곡 형태처럼 대사와 지문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덕분에 종이책을 읽는 독자들도 오가는 대사 속 말맛과 섬세하고 유려한 지문을 통해 오디오와 장면을 상상하며 읽게 되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 녹음에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 배우들

앞서 출간된 오디오북 녹음에는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고민시, 김도훈, 염정아, 최양락, 김의성, 배성우, 류현경, 임성재, 김준한 등의 배우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음악씬에서 주목받는 뮤지션 구름, 윤마치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디테일한 요소를 더했다. 오디오북은 국립 장애인 도서관을 비롯한 시각 장애인 도서관에 기증돼 우선 이용이 가능하게 했으며, 현재는 전체 공개돼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에서 이용 가능하다.

책은 어린 시절 글을 못 읽는 할아버지에게 자막을 대신 읽어주다 성우의 길에 접어들게 된 주인공 열매의 이야기다. 친한 선배이자 룸메이트인 고수미가 투자 실패로 생긴 빚을 갚지 않은 채 사라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우인데 목소리에 이상이 생긴다. 사라진 수미를 찾아 그의 고향인 완주 마을로 당도한 열매는 돈도, 일도 없는 막막한 신세다. 이런 열매에게 머물 곳을 내어준 건 다름 아닌 장의사이자 매점을 운영하는 수미 어머니다.

그렇게 열매는 매점을 지키며 저마다의 사정을 지닌 마을의 이웃들과 여름 한 철, 완주를 이어간다. 외계인 같은 수수께끼의 청년 강동경은 사람들에게 지친 나머지 "인류애 상실"이라며 외친다. 옆집 중학생 한양미는 스타를 꿈꾸며 춤을 좋아하고, 슬픈 이야기는 싫어하지만 돌봐주는 보호자 하나 없이 방치돼있다. 수미 엄마 역시 행방이 묘연한 딸을 마음 한편에 품고 장례지도사 일을 하며 홀로 암투병 중이다.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낙담을 겪지만 소설은 삶이란 원래 다 그런 면이 있다고, 모두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다독인다. 그러면서도 웃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다시 일어서서 나아갈 수 있다고 상기시킨다.

열매는 서울로 돌아온 뒤 완주 마을에서 마주한 서로 돕고 나누며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이 도시에도 기적적으로 찾아오길 기원한다.

완주에서 보낸 여름은 서로를 보듬는 회복의 계절. 완벽함이 아니더라도 결국 나아가게 하는 이야기다. 끝으로 김금희 작가는 작가의 말에 이처럼 남겼다.

거짓 없는 사실, 완전한 올바름, 그것은 때로 삶을 수렴하기에 너무 옹색하다. 그보다는 더 수용적이고 오래고 성긴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서로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여름의 방문 같은 것. 224쪽, 1만7천원

여름 일러스트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