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 대구 수성아트피아에 손녀들과 함께 다녀왔다.이곳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한 달 전쯤, 베토벤 전문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직접 지휘하며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4번, 그리고 '황제'라는 별칭의 5번을 감동 속에 들었던 곳이다.
나는 이곳 무대에 수성행복싱어즈 합창단의 단원으로 선 기억도 있다. 다른 여성합창단과 함께 공연했을 때, 무대 위에서 우아한 빨간 드레스를 입은 90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감탄하며 인사를 나눈 후 함께 사진을 찍었던 순간이 생생하다.그런 특별한 추억이 쌓인 장소, 그곳에서 손녀들과 함께 샌드아트 공연을 보게 되었다.
소극장은 어린이들과 부모들로 가득 찼고, 무대에서는 사계절을 배경으로 동물들이 샌드아트로 그려졌다. 아이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동물들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마지막 무대에서 '문어의 꿈'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모래 위에 펼쳐진 문어의 변신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동안, 수백 명의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멍해졌다. 순수한 목소리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다.갑자기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경기에 졌음에도 팀을 응원하며 노래를 부르던 야구 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함께 노래하며 에너지를 나누던 그들의 모습. 그것은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힘'이었다.
대한민국의 힘. 그리고 미래의 형상.'문어의 꿈'은 단지 유쾌한 동요가 아니다. '문어의 꿈'을 작곡한 케이팝 감성 예술가 안세은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으며 병원 침대에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독창성은 있으나 대중성은 없다"는 혹평에도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지켜낸 뮤지션이고 아이들에게 사랑받으면서 역주행한 대중가요이다.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꿈속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이 가사는 유쾌한 시작 뒤에 외로움, 두려움, 변신, 용기와 같은 감정들을 담고 있다. 어른들의 피곤한 삶을 조용히 위로하는 듯한 노래다.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 노래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가사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그 감정을 감지하고 있는 걸까? 그 어느 쪽이든, 나는 그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떼창은 단순한 음악 활동이 아니다.공감의 신경 회로가 동시에 활성화되는 신경사회적 경험이다.서로의 억양과 표정, 리듬에 반응하면서 거울신경계가 작동하고, 타인의 감정을 모방하고 동일시하는 공감 능력이 자라난다. 리듬을 맞추며 노래할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유대감과 협동이 강화되고, 불안은 줄어든다.도파민은 긍정적 정서를 학습하게 만들고, 전측 대상피질은 타인과의 충돌을 조정하며, 편도체는 이 모든 감정을 기억 속에 각인시킨다.
떼창은 청각, 언어, 신체 운동을 동시에 자극하는 다중감각 통합 자극이자, 공감력과 협력성의 씨앗이 심어지는 순간이다.합창은 조화가 생명이다. 각자의 소리를 맞춰야 하기에 인내가 필요하다. 반면 아이들의 떼창은 그 조율이 없다. 불완전하고 들쭉날쭉하지만, 에너지는 그보다 훨씬 생생하게 뛰논다.
합창과 떼창은 다르다.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연결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나는 그 다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6월 3일, 우리는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탄핵이라는 아픈 사건 이후 맞이하는 선거다. 혼란의 시기지만, 나는 수성아트피아에서 들은 그 떼창을 떠올린다.아이들이 무심하고 솔직하게 꿈을 노래하던 모습. "나는 문어, 꿈을 꾸는 문어." 그 순진한 고백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진짜 힘이 아닐까.정당이나 이념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바닷속에서 오색 문어가 되어 날아오르던 그 노래처럼,우리 아이들의 내일이 다채롭고 따뜻하길 바란다.그리고 이번 선거가 그런 시작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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