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양승진] "잘못했음"

양승진 경북부 기자
양승진 경북부 기자

죽었다 깨어나도, 하기 힘든 일. 모두에게 적어도 한두 개씩은 있다. MBTI가 'E'로 시작하는 외향형 인간이지만, 난 솔직한 감정 표현이 쉽지 않다. 진심을 보인다든가,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들. 성장하면서 별 문제가 없었는데도, 어렵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이건 나에게만 난제(難題)는 아닌 듯하다. 각종 사건·사고를 저지른 유명 연예인만 봐도 그렇다. 전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의 피의자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들이 보여 준 '사과의 기술'은 일단, 머리를 푹 숙여야 한다. 모자나 마스크는 필수다. 카메라 셔터를 피해서 빠른 보폭으로 움직여야 한다. 용서는 육성(肉聲) 대신 문자(글)를 통해 구한다. 적당히 '유감스럽게' 혹은 '죄송하게'를 버무린 끝에 '생각한다'는 말로 끝맺는다. 핑계를 계속 만들수록 완성도는 높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던 조상들 혜안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14만 개가 넘는 축구장을 잿더미로 만든 이들이 그랬다. 산불이 처음 발생한 그날, 그곳엔 자신들뿐이었으면서 "억울하다"고 호소한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친 것도 아니고, 불에 발이 달려 있는 건 더욱더 아닌데 말이다.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의 기로에 서 있으면서까지 그들은 반복했다. "억울하다"고.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좋은 일로 유명세를 타도 부담이 크다. 그런데 이들은 경북 북부권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역대급 산불의 '시발점'이었다. 창작물로 치면 흑막, 끝판 대장, 빌런(villain)이 그들이다.

그들에게도 '변(辨)'은 있었다. 하필, 그때 유독 강하게 불던 강풍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일주일 넘게 비 한 방울 뿌려 주지 않았던 하늘도 미웠을 테다. 그래도 사과는 반드시 했어야만 했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얼굴을 가리면서, 억울함만을 외쳐선 안 된다.

잘못을 해도 한참 잘못했다. 산에서 불을 지핀 건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 어리석은 행동으로 드넓은 산림이 탔다. 누군가는 생계 터전을 잃었고,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했다.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은 억울함은 비겁함이다. 그저 소음(騷音)에 불과하다.

이들만큼 '사과의 기술'이 훌륭한(?) 분들도 있다. 대한민국의 21대 대통령이 되려는 자들이 그렇다. 훨씬 월등한 수준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유력 주자는 받아야 할 재판, 씌어진 혐의가 5개가 넘는다. 자신과 가족, 주변을 둘러싼 각종 재판에 대해선 사정 기관의 '표적 수사'라고 되받아친다. 심판 탓을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병'과는 같은 듯하면서 더 고차원적이다. 상대편 후보는 조기 대선 실시 원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그들 모두 제대로 된 뉘우침이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지금도 지키지 않을 약속만 반복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미 부끄러움을 지운 지 오래다. 이쯤이면 장인(匠人)을 능가한다. 뻔뻔해도 어쩔 수 없다. '철면피'가 곧 '사과의 기술' 마스터(master)다.

이변이 없다면, 둘 중 하나는 곧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른다. 대관식 전,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떨까. 구호에 그칠 국민 통합, 경제 성장,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구태(舊態) 말고 말이다.

그저, "잘못했음"이면 된다. 간단하다. "잘못했음". 딱 네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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