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6·3대선은 12·3비상계엄 때문에 치러진다. 국민의 한 표에는 그 판단이 담길 것이다. 12·3비상계엄은 잘못됐다. 하지만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줄 탄핵과 국정 마비 사태가 계엄을 촉발했다. 국민은 그 문제도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6·3대선의 시대적 의미는 60여 년에 걸친 '근대화'(modernization)의 종언이다. 한국 근대화의 신화는 끝났다. 다시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새 시대의 비전이 필요하지만, 이번 대선 레이스는 상호 비방과 추문들로 덮었다.
1987년은 한국 역사의 대 분수령이었다. 민주화를 통해 근대화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8년 건국 이후 겨우 4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란 이중의 근대화 혁명을 완수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200여 년 걸린 일이었다. 피식민 국가 중에는 그런 유례가 없었다. 더구나 6·25전쟁으로 국토가 잿더미로 변하고, 분단 속에서 이루어낸 성공 사례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경제학자 아제모을루, 존슨, 로빈슨 교수는 수상자 회견에서 일제히 "한국이 이뤄낸 업적이 놀랍다"고 찬탄했다. 한국의 위업은 20세기 인류의 기적이었다.
하지만 6·3대선을 앞둔 지금, 그 성공 신화가 막을 내리고 있다. 지난 12·3비상계엄은 그 종말의 서막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40여 년,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이제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문 앞에 서 있다. 지금이 최고란 뜻이다. 제로 성장의 경제, 망가진 정치가 그 근거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키워드는 '저성장'이다. 저성장을 넘어 '제로 성장'에 빠졌고, '역성장'도 우려된다. 금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직전 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2024년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제로 성장' 상태다. 지난 30년간 대통령 임기 5년마다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씩 하락해 왔다. 모든 지표가 구조적 스테그네이션(경기 침체)을 가리키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도 심화되어 계층 이동이 거의 막혔다. "부모의 소득 격차가 자산 격차, 교육 격차, 일자리 격차로 이어지는 세습사회가 됐다."(장세은 교수) 박정희표 경제성장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포용적 성장'이었다. 못 배우고 가난해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산업화'의 신화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12·3비상계엄은 한국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비서구 국가의 민주주의는 험난하다. 중국은 글로벌 파워 2위 국가지만, 민주주의는 148위로 거의 바닥이다. 하지만 한국은 1987년 민주화 덕분에 "경제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급진화하지 않고 불안정하지 않으며, 내전이 벌어지지 않았던,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모범을 보여준 곳"(D. Slater, 미시간대 교수)이란 평가를 받았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지(紙)도 2023년 한국 민주주의 지수를 세계 22위,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세계 32위,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떨어졌다. 12·3비상계엄의 결과다.민주주의의 위기가 시작된 건 노무현 정부 때부터였다. 노 전 대통령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보수와 진보의 대타협이라는 1987년 민주화의 대전제를 깼다.
그는 "보수는 약육강식, 그것이 우주의 섭리 아니냐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연대다."(2004년 연세대 초빙연설)라고 말했다. 정치적 양극화에 불이 붙고, 정치는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 되었다. 대통령들은 탄핵되거나, 죽거나, 감옥에 갔다. 민주주의 퇴행(democratic backsliding)이 뚜렷했지만, 민주주의 붕괴(democratic breakdown)는 아니었다. 12·3비상계엄은 민주주의가 붕괴 직전에 멈춘 것이다.
새 정부의 당면 과제는 국민 통합, 민주주의와 성장의 회복이다. 하지만 근대화 시기의 민주주의와 성장으로는 안 된다. 지난 60여 년간 그 과업을 이끌었던 TK세력, 나아가 보수 진영의 비전은 이미 낡았고,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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