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하고 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의미이다. 또한 공직선거법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의 다수결제를 채택하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의 다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 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으로서,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역설이 숨겨져 있다.
선거에서 가장 호소력 있는 말은 '국민' 또는 '민족'이라는 단어다. 따라서 정치인이 국민이라는 말을 자주 소환하는 것은 선거 전략의 측면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국민이라는 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다 보면, 자칫 전(前) 국민과 현(現) 국민의 의사가 시차를 두고 충돌하거나, 또는 투표 가치를 둘러싼 모순(유효 투표율과 득표율의 상이에 따른 투표 가치의 상이)에 빠질 수도 있다. 또한 특정의 경우에는 국민을 현혹하는 선동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다수결제는 공동체의 의사 결정을 다수가 지지하는 방식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많은 국가가 각종 선거에서 이 원칙을 채택하고 있는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대한민국은 '단 한 표라도 더 받은 자가 승리하는 다수결제'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다. 따라서 근소하게 승리한 다수가 패배한 실질적 다수(예컨대 당선자가 48%를 얻었고, 2·3등 한 후보자가 각각 46%, 6%를 얻은 경우 승자는 형식적 다수가, 패자는 52%로 실질적 다수가 됨)를 배제시키는 '소수의 폭정'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득표율도 문제인데, 예컨대 투표율 78%에 득표율 48%로 당선된 대통령을 가정한다면, 전체 유권자의 37.4%만이 지지한 셈이 된다는 사실이다. 참! 민주주의의 역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실 다수결제는 만장일치(滿場一致)를 이루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한 차선의 방안이며, 합리적 토론을 통한 설득과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민주적 정당성과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선투표제 도입 또는 승자독식제의 재검토 등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시작된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탄핵 찬반을 둘러싼 진영 간 싸움의 성격이 강했다. 지난 6개월 동안 국민은 혼란스러웠고, 쪼개졌다. 선거 기간 내내 상호 막말과 비방(誹謗)이 난무했다. 시대정신을 따라잡지 못한 망언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 안타까운 선거였다.
상호 비방과 고발로 얼룩진 네거티브하고 과거 회귀적인 선거로 기억될 6·3 대통령 선거도 막을 내렸다. 이제 새 대통령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때이다. 그 시작은 과거의 반성으로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의 첫 번째 소임은 국민이 잘 먹고 편히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통합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정치 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적 난제와 함께 더 강력해진 북한 도발에 대한 현명한 대처도 필요하다.
모든 대통령이 퇴임 후에도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국민은 행복해할 것이다. 국민은 모르는 것 같지만 꿰뚫고 있고, 어리석은 것 같지만 지혜롭다. 이것만 알면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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