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란봉투법, 이재명 정부에서 현실화…노사관계 대전환 예고

플랫폼·하청노동자 권리 확대 vs 기업 부담 증가…노사정 보완 논의 시급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4법',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 재표결 안건이 부결되자 야5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나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 활동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원청의 책임 범위를 확대하는 '노란봉투법'이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본격적인 입법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대법원 판례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노동권 보호 장치라는 기대와 현실적 부작용을 우려하는 경고가 교차한다. 법 시행에 따라 노동계와 경영계, 나아가 하도급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변화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8년 만의 국회 통과, 두 차례 거부권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을 지칭하는 별칭으로 파업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원청 사용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47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4만7천원을 담아 보내며 입법 필요성을 공론화했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023년 11월 여소야대 정국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 속에 한차례 법안이 가결됐다. 이는 2015년 첫 발의 이후 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야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 없는 야당의 일방적 입법 강행이라는 이유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지난해 8월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재차 의결됐으나 윤 전 대통령은 두번째 거부권으로 맞섰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노란봉투법 제정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대선 후보 TV 토론에 "대법원 판례가 이미 (필요성을) 인정하는 법안이다. 국제노동기구도 다 인정하고 있다"며 "노란봉투법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싸고 정치권, 노동계, 재계, 시민단체 등 각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점이다. 찬성 측은 노란봉투법이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막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입법을 요구한 반면 반대 측은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산업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4일 '21대 대통령 선거 결과와 영향' 보고서에서 "노란봉투법은 그동안 경영계가 반대해온 공약"이라며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대부분의 하청업체 노동조합은 도급비 결정권이 있는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고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 구체적 지배·결정권이 없다면서 교섭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 응해야 하는지 여부는 법원 판결 등을 통해 결정날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따라 교섭을 둘러싼 혼란과 분쟁의 증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소규모 대구경북 기업 현실적 부담

노란봉투법이 실제로 시행될 경우 한국의 노사관계도 구조적 변화가 예상된다. 우선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던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하청근로자들의 노조 가입과 교섭권이 대폭 확대되어, 각 산업 현장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배달·택배·대리운전 기사 등 그동안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직업군의 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개정법에 따라 원청 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지게 되면, 대기업-협력업체 간 기존 하도급 거래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대기업은 협력사 선정과 노동 조건을 보다 신중하게 관리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 일부 업무를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거나 해외 아웃소싱으로 대체할 수 있다.

파업에 대한 기업의 대응 전략도 큰 전환을 맞게 될 전망이다.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해 이전처럼 막대한 손해배상소송으로 압박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사용자 측은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로 나와 갈등을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재계와 보수 야당은 법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주목한다. 모든 경영 현안이 노조의 파업 대상이 될 수 있고 기업 투자의 위축과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특히 쟁의가 장기화되면 생산 차질과 납기 지연 등으로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법 이후에도 쟁의행위와 합법적 노조활동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분쟁 해결 절차를 정비하는 등 세부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용자들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노사정 대화 기구를 통한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북연구원 김용현 사회문화연구실장은 "대구경북지역에는 300인 이하인 소규모 사업체(기업)가 95% 이상으로 많고 기업들은 상당한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특히 기존에는 쟁의에 소극적이었던 간접고용 노동자나 플랫폼 종사자까지 단체행동에 나설 경우 노사갈등 양상이 다양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존재하고 기업인들의 기업할 의지가 많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보완 입법 및 가이드라인 마련 ▷지방정부의 중재 기능 강화 ▷산업계 및 노조 역량 강화 등 3가지를 정책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노사 모두를 위한 '쟁의행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파업 범위, 대상, 절차 등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지방노동위원회와 지방 산업단지 노사관계 지원센터의 기능을 확대하고 분쟁 예방 중심의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에는 노사관계 관리 컨설팅과 예방적 교육을, 노조에는 책임 있는 조직 운영 교육 등을 병행해 실질적 협상력이 균형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와 업종별 단체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함께 노란봉투법 반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와 업종별 단체가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과 함께 노란봉투법 반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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