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정시', '논술', '수시'로 나뉜다. '정시'는 수능 점수만 높으면 된다. 많은 사람이 '정시'가 공정하다고 말한다. 객관식 문제를 풀어서 1점이라도 높은 학생이 합격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시'는 면접이 없다. 대학은 얼굴 한번 안 본 학생을 뽑는다. '논술'은 주관식이지만 단답형에 가깝다. 긴 문장을 서술하지 않는다. 이과 '논술'은 수학과 과학이 섞인 계산 문제다. '논술'도 면접이 없다. 대학은 문제를 내고 점수를 매길 뿐이다.
'수시'는 생활기록부로 학생을 선발한다. 10분 짜리 면접이 있으나 형식적이다. 교수에게 주어진 생활기록부에는 내신 성적이 없다. 고등학교 수준을 한참 넘은 책을 읽었다는 기록은 있다. 대학원 수준의 연구를 했다는 '자랑질'도 있다. 입시 컨설팅 회사의 손을 탔다는 심증(心證)은 있는데 물증(物證)이 없다. 그래서 생활기록부 내용이 진짜인지 의심하지 않는다.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교사의 학생 평가도 미사여구(美辭麗句)만 넘쳐난다.
우리 국민은 전문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수도 예외가 아니다. 교수 재량이 없어야 공정한 입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대다수 대학이 실질적으로 학생을 평가할 기회를 교수에게 주지 않는다. 공정성이라는 미명(美名)하에 손쉬운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대학이 학생을 제대로 뽑고 있는지 의문이다. 학생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을 평가해야 하지만, 학생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마련이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다. 겉만 그럴듯한 '레몬'(lemon)이 뽑히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발생한다.
필기시험이나 서류 평가는 '죽은' 시험이다. '살아 있는' 시험이 아니다. 다양한 주제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살아 있는' 시험이다. 100분이면 충분하다. 100분은 생각보다 길다. 미리 준비한 인사말이나 자기소개로 100분을 버틸 수 없다. 이것저것 물어보면 생각하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물론 '살아 있는' 시험을 시행하면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 평가하는 교수도 힘이 든다.
포스텍이 입시에 '심층 다면 면접'을 도입했다. 10시간 이상의 그룹 토론, 프로젝트 수행, 관찰 면접을 통해 신입생을 뽑는다. 올해는 이 방식으로 정원의 60%를 뽑지만 앞으로 모든 신입생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포스텍 총장은 사교육으로 가공된 인재, 반복 훈련으로 길러진 숙련공을 거부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내 주위에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둘 중 하나다. 어려운 문제를 잘 풀거나, 논문을 잘 쓰거나. 어려운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은 많지만, 논문을 잘 쓰는 사람은 적다. 논문을 잘 쓰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 창의력, 지적 호기심, 끈기, 인내, 집요함이 그것이다. '2분 짜리 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풀기'로는 이런 특징을 잡아내지 못한다.
'심층 다면 면접'을 시행하면 포스텍이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정원의 60%의 3배수만 '심층 다면 면접'을 하더라도 그 수가 660명이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혹여 학생들이 이런 시험을 싫어해서 경쟁률이 폭락할 수도 있다. 시험 결과에 대한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이다. 야차(夜叉) 같은 사교육 학원의 마수(魔手)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원래 옳은 길은 좁고 험하다.
올해 영재학교 지원자 수는 최근 5년 중 가장 적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작년보다 늘었으나 지원자 수는 줄었다. 의대 쏠림이 원인이라고 한다. 영재학교에 들어가면 사실상 의대 진학이 불가능하다. 일반고와 비교하면 내신 성적에서 불리하고 수능 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영재학교 자체가 의대 진학 도구로 변했다. 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이공계 대학에 진학해도 상당수가 반수(半修)나 편입을 통해 의대로 샌다. 이 과정에서 영재학교 졸업이 '스펙'으로 활용된다.
포스텍은 과학기술에 특화된 작은 대학이다. 학생 수준도 고르다. 포스텍이니까 이런 입시 실험이 가능하다. 부디 '심층 다면 면접'이 성공해서 사교육에 오염되지 않은 좋은 원석(原石)을 발굴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다. 이국종 병원장 말마따나 "입만 터는 문과 X들이 해 먹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우리의 미래는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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