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美 전설적 밴드 '비치보이스' 리더 브라이언 윌슨 82세로 별세

음반 1억장 넘게 팔아치워…英 비틀스 인기에 대적한 슈퍼스타
히트곡 대부분 만든 천재 프로듀서…정신질환·약물로 굴곡진 삶

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브라이언 윌슨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그의 가족이 11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2012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윌슨의 모습. AFP=연합뉴스
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브라이언 윌슨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그의 가족이 11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2012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그래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윌슨의 모습. AFP=연합뉴스

1960년대 영국의 비틀스와 함께 당대를 대표한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 브라이언 윌슨이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윌슨의 가족은 이날 공식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윌슨은 치매를 앓고 있었으며, 지난해 아내 멀린다가 사망한 이후로 건강 상태가 더욱 나빠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가족 요청에 따라 법정후견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윌슨은 19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끈 미국의 밴드 '비치보이스'의 리더이자 프로듀서, 싱어송라이터다.

'서핀 유에스에이'(Surfin' USA),'서퍼 걸'(Surfer Girl), '코코모'(Kokomo) 등의 히트곡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서핑과 자동차 등으로 상징되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젊은이들의 문화를 잘 녹여낸 비치보이스의 음악은 '서프 뮤직'(Surf Music)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1961년 윌슨을 중심으로 그의 남동생 칼과 데니스, 사촌인 마이크 러브와 친구 알 자르딘 등이 뭉친 밴드 비치보이스는 첫 싱글인 '서핀'(Surfin)부터 대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내놓은 100여곡의 노래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록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밴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총 30개 넘는 곡을 빌보드 차트 40위 안에 진입시켰으며, 전 세계적으로 1억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윌슨은 이러한 히트곡의 대부분을 작곡하며 밴드의 성공을 견인했다.

비치보이스가 활동했던 1960년대는 영국 밴드 비틀스의 인기가 전 세계를 강타한 시기이기도 했다.

팝의 본고장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대표 록밴드였던 비치보이스는 이러한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에 대적할 만큼 높은 인기를 끌며 비틀즈와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숙적이기는 했지만 이들은 서로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는 관계이기도 했다.

비틀스를 이끌던 폴 매카트니는 비치보이스가 1966년 발표한 명반 '펫 사운즈'(Pet Sounds)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면서 이 음반이 비틀스의 음악에도 영감을 줬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치보이스 역시 1965년 앨범에서 비틀스의 노래 3곡을 커버하는 등 서로 음악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밴드는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윌슨은 그를 평생 괴롭힌 정신질환과 약물 중독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윌슨은 밴드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1966년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며 밴드 투어 공연 도중 이탈했다.

이후로도 계속 밴드의 핵심 멤버로는 남았지만 주로 스튜디오에서 곡 작업에만 매진하며 무대에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이 시기 그가 작업한 음반 '펫 사운즈'는 이전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이후 음악적으로는 그가 남긴 가장 훌륭한 명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음악 잡지 롤링스톤스는 이 음반을 역대 가장 위대한 록 앨범 500개 중 2위에 올리기도 했다.

비치보이스는 1988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윌슨이 점차 약물과 알코올 중독의 길로 빠지게 되면서 그의 음악적 커리어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지게 된다.

환청을 동반한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받을 만큼 그의 정신 건강은 나빠졌고, 침대에 누워 며칠째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산발적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긴 했으나 계속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으며, 초창기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시대를 풍미한 천재 음악가의 죽음에 이날 대중음악계 인사들의 애도 메시지도 쏟아졌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딸 낸시 시나트라는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윌슨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그의 소중한 음악은 그가 우주를 넘어 여행하는 동안 평생 살아남을 것"이라고 적었다.

비틀스의 멤버 존 레논의 아들이자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션 오노 레논은 윌슨이 '미국의 모차르트'이자 '유일무이한 천재'였다면서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죽음에 내가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지 알 것"이라고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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