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많은 지방도시가 인구감소와 산업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방의 중소도시는 물론이고 거점 대도시들까지 쇠퇴와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방소멸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면 도시의 발전을 이끌 방법은 무엇일까. '도시와 창조계급'(Cities and the Creative Class)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소위 창조계급(creative class)이 도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는 도시발전을 위해서는 3T가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인재(talent), 기술(technology), 관용 혹은 포용력(tolerance)이 바로 그것이다.
리차드 플로리다는 미국 하이테크 도시(창조도시)들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동성애자(gay) 지수와 보헤미안(Bohemian) 지수를 활용한 결과, 이들 도시에는 대체로 동성애자와 보헤미안의 인구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밝혀냈다. 아울러 이들 도시는 그가 명명한 용광로 지수(도시 내 외국인 인구의 비중)도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리차드 플로리다는 도시 간 경쟁에서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의 관건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보았고, '장소의 질'이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도 다양한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그가 말하는 '장소의 질'은 매력적인 주거환경,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문화적 토양, 환경적 쾌적성(amenity)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다.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의 저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는 1970~2000년 사이 미국에서 고학력 성인 인구의 비중이 큰 도시는 그렇지 않은 도시에 비해 인구의 증가 비율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학력자가 도시의 발전을 이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분석 결과이다. 그리고 고학력 인재가 많은 실리콘밸리는 쇠락한 자동차산업 도시인 디트로이트와 달리 몇몇 대기업이 지배하는 도시가 아니라, 크고 작은 많은 기업이 분업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경쟁하는 이유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살아 있음을 주장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성공한 모든 도시가 그렇듯이 실리콘밸리의 강점은 경제적 기회나 즐거운 근무 환경에 이끌려 온 인재에 있음을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의 태동과 성장에는 스탠퍼드대학교와의 산학협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중심에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레드릭 터먼(Frederick Emmons Terman: 1900~1982)이 있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전기공학 교수였던 프레드릭 터먼은 제자들의 기술개발과 창업을 장려하고, 지식 재산권 이양,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초창기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혁신적 역량을 갖춘 인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기업들이 텍사스주(오스틴 등)나 애리조나주(피닉스 등)로 이전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떠나는 이유는 실리콘밸리의 높은 주거비용과 생활비, 캘리포니아주의 높은 소득세율과 법인세율, 그리고 과도한 규제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의 상대적으로 낮은 생활 및 생산 비용, 낮은 세율, 인적자원(고급 인력) 및 에너지 공급능력, 기업친화적 정책과 제도가 실리콘밸리의 기업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보통신(IT)산업을 비롯한 하이테크산업의 남방한계선이 판교라는 보도가 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이는 하이테크산업에 필요한 고급 인력(인재)의 공급이 지방에서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러한 경험적 사실과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미래 도시는 인재가 도시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도시발전을 위해 일자리가 먼저인지 사람(인재)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산업구조가 고도화할수록 인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천연자원(원료)과 육체노동의 효율적 결합이 경제발전의 원천이었고, 전통적인 산업입지론은 원료와 제품(생산물)의 수송비를 최소화하는 장소를 최적 입지로 보았다. 그러나 하이테크산업을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이제 고급 지식과 과학기술이 경제발전의 원천이 되었고, 전통적인 산업입지론은 많은 업종에서 설명력을 잃었다. 그만큼 고급 지식과 과학기술의 가치가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재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도시발전을 위해 단순히 기업(일자리)을 유치하는 전략에서 탈피하여 인재를 유인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다.
인재들은 어디서 살고 일하기를 원하는지, 인재들의 생활양식(life style)과 관심사는 무엇인지, 그럼 도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이제 우리 도시들도 이런 질문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산업구조도 지식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어 인재가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윤대식(영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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