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춘천세계인형극제(5.23~6.1) 열기가 뜨거웠다. 춘천인형극장 입구부터 세계 인형극 아티스트들이 전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올해는 인형극인의 문화올림픽인 제24회 유니마(국제인형극연맹, UNIMA: Union Internationale de la Marionnette) 총회가 54개국 207명이 참가해 춘천에서 열리다 보니, 유럽 도시를 연상하게 했다. 춘천인형박물관은 고전부터 현대 인형극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왔고, 인형극 전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올해 축제 주제는 '경계를 넘나드는 인형(Puppetry Beyond Borders)'으로, 축제 기간 동안 100여 작품, 300회 이상이 공연됐다. 인형극 축제로는 세계적인 축제인 셈이다. 춘천인형극제는 1989년부터 개최되어 올해로 37년째 한국 인형극의 역사가 됐다.'춘천' 하면 인형을 떠올리는 게 일상 문화가 되었고, '마임'은 춘천 시민의 자존심이 됐다.
지자체 공연 축제가 수십 년 유지되며 특화되기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춘천은 인형과 마임의 도시가 되었고 관람객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점이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축제로 특화된 강점이다. 세계 인형극 아티스트들이 춘천으로 모이니, 춘천은 지자체의 대표 브랜드가 '인형극'이다. 올해는 인형극의 예술성과 작품성, 실험성이 높은 수작들이 다수 공연되었다는 것도 성과다. 극단 하땅세의 신작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공동연출 윤시중·표지인, 공동작가 정승진·윤시중/ 춘천인형극장 대극장)은 인형과 오브제, 영상과 배우들의 놀이로 감각되는 무빙씨어터 형식의 공연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며 가족극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다. 영상 카메라의 기능은 작품의 서사적 장치를 병합하고, 장면의 구조를 스트리밍으로 연결해 서사와 극중 인물의 내면성을 입체적이면서 놀이로 시각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극단 하땅세 '위대한 놀이' 시즌 2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현실과 상상의 이중 구조: 동화, 다큐, 환상이 교차하는 무대 위의 워킹홀리데이
극단 하땅세의 신작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고전 서사의 구조를 실험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주인공으로 분한 바다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네 개의 여행지에서 만난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거인국을 여행하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구조로 짜여 있다. 원작 『걸리버 여행기』는 18세기 영국 사회를 풍자하는 정치·사회적 알레고리로 구성된 4부작 체험기이다. 걸리버는 각각 소인국(릴리퍼트), 거인국(브롭딩낵),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 그리고 말이 지배하는 나라 휘넘국을 여행하며 타자성과 문명, 권력 구조를 관찰하고 비판한다. 극단 하땅세의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은 이러한 구조를 워킹홀리데이 체험기라는 자전적 서사로 치환하고 있다. 여대생인 극중 인물 '바다'(오에바다 분)는 "엄마랑 같이 떠난다는 마음"으로 호주에서 체류하며 겪는 네 개의 주요 에피소드(캥거루의 만남과 도착 후 호주에서 벌어지는 일들 - 파티 - 바다의 세간살이 - 파도수영 - 병원 - 라퓨타)를 통해 걸리버 여행기의 체험처럼 자신이 점점 작아지고 커지는 경험, 바다에 빠지고 구조되는 경험, 병원에서 MRI를 받고 우주 여행하는 듯한 상황들을 겪게 된다.
무대는 극중 인물이 겪는 낯선 세계, 소인국(호주 사회 공동체), 라퓨타(병원에서의 환상), 바닷속(수조와 수영 장면)을 오브제와 영상, 조명, 배우의 그림자 등을 통해 구체화한다. 영상은 배경 장치가 아닌, 배우의 몸, 오브제, 미디어 서사 구조로 작동한다. 영상 카메라는 극중 인물과 밀착되어 인물의 심리와 내면의 확장성보다는 상상과 환상 동화의 분위기로 치환되는 게 특징이다. 극중 인물 바다가 호주로 떠나 파티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과 연결되는 지점에서는 테이블 위 핸드폰 화면을 통해 영상으로 재현되면서 현실과 미디어, 실재와 재현 사이의 층위를 확장시킨다. 이는 '줌 인 아웃'이라는 제목처럼, 시간의 시점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연극적 메커니즘을 동화적 환상성으로 드러낸다.
작품은 영상과 오브제, 배우의 신체를 시각적으로 감각화하는 구조로, 대사의 재현보다 몸의 서사, 사건보다 오브제를 통한 놀이적 감각이 작품에 총체적으로 융합된다. 기존 인형극(아동극, 가족극)의 고정관념을 파격적인 설정으로 영상 입체 동화 같은 판타지를 더해 상상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줌 인, 줌 아웃'이 가능한 카메라 장비, 크고 작은 도구들, 몇 가지 오브제, 배우들의 놀이성이 핵심 장치다. 카메라로 인물을 줌 인·줌 아웃하며 무대 후면 호리존트를 통해 그림자극을 만들고, 그 과정이 무대 위에서 개방되면서 상상과 판타지가 강렬해진다. 바닷속 여행 장면에서는 어항을 올려놓고 배우가 유리면 밖에서 헤엄치는 동작을 하면 카메라 앵글에서는 물속처럼 보이는 식이다. 천, 막대, 종이 등을 이용해 해조류와 인어공주 같은 형상을 만들고, 유리면 밖에서 물속 이미지만 제공하면 바닷속 여행이 된다. 장면들을 고정 카메라, 클로즈업, 부감 촬영 등 영상 언어로 처리함으로써 감정의 내면화와 이미지의 확대 효과를 보여준다.

◇ 상상력의 물리적 구현: 미니어처와 그림자, 걸리버여행의 거인들.
극단 하땅세의 신작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은 일상의 사물들을 오브제로 전환해 영상으로 투사하는 장면에서, 바다와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체험이 걸리버 여행기처럼 강렬한 영상 이미지로 재구성된다. 바가지, 이불, 핸드폰, 종이박스 등은 호주에서의 삶을 은유하며, 배우들은 퍼포머로 움직이며 위대한 놀이가 무대를 통해 감각되도록 한다. 감각된다는 것은 실제 관람 주체가 퍼포머와 동일하게 극의 체험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아동극과 가족극의 장르에서는 오브제를 통한 놀이화와 명작 같은 스토리와 서사적 장치로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면,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줌 아웃>은 배우-미디어-영상-놀이-오브제가 총체적으로 묶여 촬영 기법을 통해 걸리버 여행의 극적인 환상성을 구현하며 마치 유튜브 촬영 스튜디오를 방불케 한다. 이러한 장치와 오브제 외에도, 공간과 시간, 감정을 조절하고 드러내는 스탠드 이동 조명이 유기적으로 장면으로 결합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극적 환상을 무대로 발화해내는 연출적 장치가 공연 50분 동안 지속된다.

한 장면을 돌아보자. 특히 '병원 MRI 장면'에서는 무대 위 오브제(가습기, 바가지, 풍선 등)가 결합되어, 배우의 신체는 우주로 발사되는 로켓으로 은유되는 장면에서 놀이의 신비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병원이라는 공간의 공포를 환상으로 치환하는 동시에, 낯선 타지에서의 불안을 무중력 상태의 상상력으로 승화시키는 놀이적 장치를 드러낸다. 인상적인 장면은 극중 인물 바다가 '거인'이 되어 마을을 걷는 장면이다. 조명과 그림자, 미니어처 마을을 활용해 배우의 실루엣을 실제 '거인'처럼 연출한다. 고전 원작의 '브롭딩낵 거인국' 장면의 재해석이자, 타자-되기의 물리적 구현으로, 그동안 환상 동화나 가족극이 상상시킬 수 있는 인형극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성이 '확장된 무대'로 만들어낸다. 이 밖에도 휴대폰, 작은 조명, 종이 인형, 머그컵, 어항, 풍선, 바가지 같은 일상 오브제들이 감각적 시점의 변환 장치로 작동하며, 배우가 무대에서 퇴장하자마자 바로 휴대폰 화면 속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극과 영상의 경계를 허문다. 배우의 몸은 실물과 영상 속 인물로 이중화되는 '줌 인 아웃'은 감각적 몰입의 매직적 환상성을 극대화해 연출되는 것이 장점이다.
그만큼 극단 하땅세의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은 오브제와 영상의 창의적 활용으로 연극적 상상력을 극대화하며, 일상 사물이 상징으로 확장되는 상상의 무대를 구현하는 것이 기존 가족극에서 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방식이다.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이것은 대사관이 아니다>에서도 카메라와 영상을 활용한 입체 동화 형식이 있었지만, 극단 하땅세는 영상 미디어 활용을 전체적인 서사로 전복하는 확장성을 보이며 한 발 더 나아가 휴대폰을 활용한 점도 인상적이다. 촬영된 영상 이미지와 무대 상황을 휴대폰과 소도구들을 이용해 효과적으로 연결되는것도 신비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배우가 무대에서 퇴장하면 곧바로 휴대폰 화면 안으로 들어가거나 등퇴장을 휴대폰과 무대에서 연속되는 식이다. 천 조각들이 배우들 사이를 덮고, 주인공이 헤엄을 치면 카메라 앵글 안에서는 물속 환상이 구현된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 형태의 종이를 투사해 그림자극을 만들고, 주인공이 호주(걸리버)를 여행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소품을 활용한 즉흥적 그림자극 장면도 매끄러웠다. 주인공 설정이 줌 인 아웃 구조를 위한 인위적 설정으로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극단 하땅세의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은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원작 『걸리버 여행기』처럼 낯선 세계에서 마주하는 불안과 환상, 그리고 삶의 정체성과 타자의 시선에 대한 감각적인 성찰을 무대 위에서 이처럼 강렬한 상상력으로 자극하는 가족극은 <걸리버 여행기: 줌 인 아웃>이 유일하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주제 다년 지원사업으로 제작되었으며, 사업의 취지에 매우 부합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전통 인형극과 가족극의 고정화된 표현 구조를 실험적으로 넘어선 융합형 무빙 씨어터로, 참신한 작품이면서도 특정 연령에 제한 없이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땅세가 '줌 인·아웃' 유튜브 채널을 개발해, 무대에서 보여준 상황 외에도 영상 카메라로 동화적 상상을 할 수 있는 장면을 하루 1개씩 업로드한다면 어린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작품에 집중하고 웃는 어린이들과 연령을 초월했다. 7월 4일부터 13일까지 하땅세극장 2층에서 공연된다. 볼만한 공연이다. 출연 배우는 주인공 오에바다와 황호찬, 유성곤, 김예린, 문지영, 조인서, 김의진, 송대영, 박진희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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