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강민구] 환관(宦官)이 몰라야 훌륭한 인물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진짜 일꾼 찾기 프로젝트'를 표방한 '국민추천제'가 닷새 만에 무려 7만4천 건이나 접수된 후 마감되었다고 한다. 추천 의견 수렴 방법 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행정 부처의 고위급 인사를 국민이 직접 추천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사실 인재 추천제가 새로운 정책은 아니다. 이상적 정치의 상징인 고대 중국의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은 왕위(王位)부터 인재 천거제를 활용하였으니, 그 연원이 깊다. 그것은 한나라에서 제도화되었는데, 지방에서 효성이 지극하고 청렴하거나 학식이 뛰어난 인재를 추천하면 중앙정부에서 관리로 임명하였다.

천거제는 인성을 기반으로 한 인재를 선발하려는 취지와 함께 관료 기구를 독점한 공신·호족에 대항할 신진 세력을 구축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 천거제는 이후의 왕조에도 계승되었고, 우리나라 삼국에도 전래하였다. 특히 고구려는 현량(賢良)과 효순(孝順) 등의 덕목을 갖춘 인물을 천거하게 하였다. 이후 고려는 천거제를 과거제와 체계적으로 병행하였으며 자천(自薦)도 허용되었다. 그리고 조선은 천거제를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켜 정기적 천거제를 도입하는 한편 추천된 인재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는 현량과(賢良科)를 신설하는 등 공정성을 강화하였다.

이처럼 '국민추천제'는 과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적극 활용되었으며 부작용을 경험하고 개선 방안까지 강구한 인재 등용 방식이다. 따라서 '처음 시행하는 제도이기에 시험적이다'라는 무책임한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스스로 말한 '엄정한 검증'의 조건을 제시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다.

진(晉)나라 무제는 인재 등용의 여섯 가지 조건, 육조(六條)를 공표하였으니, 그것은 충성되고 신실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 효도하고 공경하여 예의를 다하는 사람, 형제와 우애로운 사람, 처신을 깨끗이 하면서 겸손한 사람, 신의가 있는 사람, 인격 수양을 도모하는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송나라 인종이 명신 왕소(王素)에게 "정승으로 적임자가 누구인가?"라고 묻자, "오직 환관(宦官)과 궁녀가 그 성명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정승으로 선임할 만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국정을 농단하는 십상시(十常侍)가 있다는 말이 떠도는가 하면, 각종 인사 청탁 비리가 끊이지 않는 우리 정치판에서 역사적 교훈으로 삼을 만하다.

물론 관료이기에 인성과 더불어 정치적·행정적 능력도 필수적이다. 당 현종 때의 재상 노회신(盧懷愼)은 자신의 재능이 요숭(姚崇)에게 미치지 못함을 자인(自認)하고 모든 일의 결단을 요숭에게 양보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이 그를 '함께 밥이나 먹는 재상'이라는 의미의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고 비웃었다. 조회를 마치면 재상이 백관을 거느리고 회식을 하였기 때문이다.

또 무능한 재상을 조롱하여 '삼지상공(三旨相公)'이라고 하는 말이 있으니, 북송 신종(神宗) 때 재상 왕규(王珪)가 말끝마다 '성지(聖旨)'란 어휘를 쓴 데서 유래하였다. 왕규는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재상으로서 정사에 대해 한 건도 건의하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게 재가를 받을 적에는 "성지를 취(取)하겠습니다", 왕의 재가가 끝나면 "성지를 받듭니다", 일을 아뢴 자에게 결과를 알릴 적에는 "이미 성지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반식재상·삼지상공을 신물 나게 경험하였다. 차제에 신망을 받으면서도 능력 있는 관료의 출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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