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조두진] 겉 희고 속 검은 언어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속뜻이 다른 경우가 많다. 과거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한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이 대통령은 "맥락을 무시한 해석이 진짜 문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존경하는'이라는 말은 그냥 수사(修辭)에 불과한데, 거기에 집중하니 자기 뜻과 다른 해석을 한다는 말이다. 드러나는 표현이 아니라 내심을 읽으라는 말일 것이다.

이 대통령의 화법이 그러하니 대통령실도, 언론도 그런 화법을 닮아 가는 모양이다. 6월 14일, 이 대통령의 장남이 결혼했다. 대통령실은 "결혼식은 대통령 내외와 가족, 친지들이 참석하는 가족 행사로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대부분 언론들도 하나같이 이 결혼식을 '비공개 가족 행사'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개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날짜, 장소, 심지어 이 대통령 아들의 계좌번호까지 공개됐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과 당직자들이 초대됐고, 대거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과 민주당, 언론은 '조촐한 비공개 가족 행사'라고 말한다.

이 대통령은 통합과 실용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등에 대해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도 현 정부의 국정 철학과 중대한 불일치 사유가 있다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국정 철학과 중대한 불일치'라는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이 대통령의 언어는 '통합'인데, 민주당 의원들은 '윽박질러서 어떻게든 내쫓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겉과 속이 다른 화법'을 민주당 의원들이 잘 이해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민주당 지도부에 "나의 신상과 관련된 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무리해서 처리를 안 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의 속뜻 역시 "법안을 헌법 취지에 맞게 처리하라"는 말이 아니라 "요령껏, 명분을 만들어 처리하라"는 말일 것이다.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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