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 이루어진다." (비고츠키)
"학교는 공동 생활을 연습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존 듀이)
교육학을 전공했거나 교육학 수업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이 둘의 이름은 아마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눈을 맞추고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과정이다. 결국 교육의 본질은 누가 뭐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2013년 내가 초임으로 발령받은 학교는 수업 이야기가 일상이었고 발표 수업이 특별하지 않은 문화였다. 교사들은 서로의 수업을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며 매일 성장했다. 최신 기술은 없었지만 수업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말'과 '표정', '호흡' 즉 '관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구의 교실은 낯설다. 지난 4월 11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대구 용계초등학교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수업을 참관했다. 언론은 '현장 안착'을 강조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태블릿 속 화면만 터치하거나 이어폰을 낀 채 스크린에 집중하고 있었다. 교사와의 상호작용도, 학생들 간 협업도 보이지 않았다. 교육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편함을 느꼈을 장면이다. 나 역시 수업이 아닌 장관과 교육감만 환하게 웃는 '기술 시연회' 속에서 기괴함을 넘어 두려운 마음이었다.
대구의 AI 교과서 도입률은 98%로, 전국 평균 34%에 비해 압도적이다. 교육청은 '권장'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초밀착', '한뼘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공문이 내려오고 활용률과 로그인 횟수가 수치로 관리된다. 원래 컨설팅 장학은 교사의 요청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요청했는지도 모르는 사실상 '지도점검'에 가까운 방식이다.
사실 교사들은 AI 교과서가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줌(Zoom) 수업과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디지털 수업 역량을 쌓아왔다. 아이들과의 연결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온라인 수업을 설계했던 경험은 교사들이 디지털 교육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그런데 이제는 수업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시스템 활용 횟수만 남았다.
현장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나는 대구교사노조 교권팀장으로 일하며 매일 AI 교과서 관련 전화를 받는다. 특히 3학년 학생들은 영어를 처음 배우는 시기라 로그인과 입력조차 버거워 수업 시간 대부분을 기기에 소비한다. 그날 접속하지 못한 아이의 학부모가 "오늘 우리 아이는 뭘 배웠나요?"라고 묻는 상황에 대한 답도 교사의 몫이다.
지난 4월에는 대구의 한 교사가 AI 교과서 실태를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우리 조합원이기도 한 이 교사는 단 한 명이라도 문제를 돌아보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현장의 목소리는 대구교사노조의 올해 스승의 날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됐다. 교사들은 수업의 다양성 상실, 자율권 침해, 상호작용 감소, 활용률 중심 감시 체계를 뚜렷이 지적했다.
김성열 서울대 교수는 수업을 "교사와 학생이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며 의미를 구성하는 대화적 활동"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 교실에서 그 '대화'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대구의 선생님들은 강제에 가까운 권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복잡한 절차나 수치가 아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걱정 없이 수업에 몰입할 수 있는 하루일 것이다. AI 교과서도 좋다. 단, 교사의 손 안에 있을 때만.
대구교사노동조합 대변인·교권팀장 신수정
댓글 많은 뉴스
경북 포항 영일만 횡단대교 길이 절반으로 뚝…반쪽짜리 공사될까
"광주 軍공항 이전 직접 챙긴다"는 李대통령…TK도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홍준표, 정계 복귀하나…"세상이 다시 부를 때까지 기다릴 것"
이진숙 "임기 보장하라" vs 최민희 "헛소리, 뇌 구조 이상"
"총리 임명 안돼" 권성동…李대통령 "알았다"며 팔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