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방황이었다.
문학 앞에 겸손하라, 어깨에서 힘을 빼라, 죽을 때까지 정진하라는 말은 매번 엉망인 소설을 들이밀 때마다 나의 스승이 했던 말이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부끄럽고 아프게 가르쳐주신 삶의 자세 같은 것이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떨어지는 자잘한 잎새에도, 잎새에 이는 가벼운 바람에도 괴로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계절이 바뀌는 일, 떠나가는 누군가의 뒷모습, 항상 비껴가는 세상의 기준은 어느 때에나 나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곤 했다. 마치 공기처럼, 물처럼 방황이 내내 곁에 머무는 이유였다.
그때마다 나는 앞으로 한 치도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시간을 정성껏 비관했다. 방황이 젊어서 누릴 수 있는 호의호식일 따름이라며 마구잡이로 객기를 부려댔다. 지리멸렬한 청춘의 시간이 길고 캄캄한 터널 속같이 침울하리란 걸 짐작했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에 허덕이는 자신을 침통하게 생각했다. 때로는 쉬이 취하지 않아서 조급한 마음으로 발발거렸고, 가끔은 너무 취해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지도 못했다. 취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이었고, 취기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쳐야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 팔 할의 시간을 건너오며 알게 됐다. 결국 죽을 때까지 쓸 수밖에 없겠구나, 쓰지 않고선 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자각. 받아들이고 나니 편해졌고, 죽을 때까지 어깨에서 힘을 빼자고 다짐하고 또 되뇌었다.
과거에는 상상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마법처럼 과학으로 현실이 되는 세상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누나야, 전화기로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날이 언젠가 온다'던 동생의 말에 무슨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냐며 한 귀로 흘려보냈었는데 진짜로 그런 세상에서 지금 살아가고 있듯, 과학은 또 얼마나 더 스펙터클 한 결과를 내놓을지 모른다. 상상을 피부에 와닿는 현실로 실현 시켜준 것이 과학이라면, 가슴에 와닿는 힐링으로 실현 시킨 존재가 바로 문학이었다. 그런 상상을 무한으로 펼치게끔 글자를 쓸 수 있어서, 적어도 원하는 모양으로 조금이나마 그럴듯하게 그려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방황이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는 걸 또 나는 눈물처럼 받아들인다. 받아들였다고 해서 남은 생에 다시 들이닥치지 않을 바람이 아니란 사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찬 바람에 옷자락이 펄럭이고 머리칼이 휘날릴지언정 잔뿌리 한 가닥조차도 꿈쩍거리게 하지 못하리라는 진실 또한 말이다. 하찮지 않은 이 확신은 문학에게 보내는 고해이자 다짐이다.
6개월 동안 보잘것없는 글을 실어준 매일신문과 읽어준 독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비록 대면하지는 못했어도 매주 함께 글을 게재한다는 이유로 강한 연대감을 느꼈던 두 분께도 유익한 글 잘 읽었다고, 언제 어디에서나 샘물 돌 듯 새로운 날들 보내시라는 응원을 보낸다. 일주일마다 소재거리를 찾고 또 테트리스 조각 짜맞추듯 한 편의 글을 만드는 일이 무작정 짜릿하고 절절하게 뜻깊었다는 고백으로 마지막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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