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이용호] 벙커버스터(bunker buster)가 던지는 교훈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6월 21일 밤 10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3개 도시(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에 소재한 핵시설을 성공적으로 폭격하였다는 내용의 대국민 연설을 했다.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 근본적 제거라는 명분 아래, 미국은 B-2 스텔스 폭격기와 벙커버스터(예컨대 Guided Bomb Unit-57 등)를 앞세워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직접 뛰어든 것이다. 트럼프는 스스로 이란의 핵 위협이 절멸(絶滅)되었음을 선언하면서도, 이란에 '평화의 길'로 갈지, 아니면 '비극의 길'로 향할지를 선택하라고 추가적 압박을 늦추지 않았다.

국제 핵 질서의 한 축인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대 강대국에만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란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가동한 것은 동 조약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이란의 핵시설에 대해서만 벙커버스터까지 동원해 폭격하는 것은 이중적 잣대다. 따라서 이란 입장에서는 자국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벙커버스터를 앞세운 군사행동도 몇 가지 교훈을 남긴다. 먼저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떠한 핵 개발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물론 북한의 상황은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고 했던 1994년과는 같지 않다. 현재 북한은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미사일과 잠수함 운용 능력까지 일정 부분 갖춘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에서, 이란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어떠한 사태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한 만큼, 북한도 핵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음으로 힘이 없으면 스스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이란으로서는 이번 폭격이 불공정하다고 억울해하겠지만, 이란 스스로 국제법 질서를 준수(遵守)하지 않았고, 동시에 국력을 키우는 데 실패한 책임이 있다. 2월 말에 있었던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정상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를 향한 트럼프의 심한 면박에서 잘 보여지는 것처럼, 국제사회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기본적으로 작동한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평화 주장은 말만으로도 가능하지만, 평화 유지는 힘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선택지는 스스로 국가임을 포기하고 강대국에 의존하며 명맥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삼전도의 굴욕'을 견디면서 후일을 기약하는 것밖에 없다.

대한민국도 스스로 힘을 키우고, 대비해야 한다.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고, 외교도 공을 들여 무르익게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코스피 지수 3,000의 벽이 뚫리고, 대통령이 시장을 방문하는 등 국민 가까이에 가려는 노력 등은 긍정적 신호이다. 참 잘한 일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역사에 기록되기 위해서는 국민으로부터 보다 폭넓은 사랑과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인사와 협치가 중요하다. 인사는 만사의 시작이고, 협치는 더디지만 단단하다. 함께해 온 동지냐, 아니면 국민이냐를 선택해야 할 때다. 동시에 핵확산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서 빈번한 무력의 사용이 핵확산 위협보다 지구를 더 빨리 파괴시키는 촉매제라는 점도 함께 기억하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