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진호의 每日來日] 청포도의 꿈, 청진과 포항 쇳물로 길을 내다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포항 청림동에 가면 청포도 문학공원이 있다.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하는 시인 이육사의 서정적 저항시를 머금은 고장이 포항이다. 그러나 포항이 한때 동양 최대의 포도농장이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일제강점기 유럽의 포도를 들여와 포도주 생산을 원했던 일본이 일본열도에서 재배에 실패하고 적합한 장소를 찾은 곳이 바로 포항이었다.

그래서 1918년 시작된 미쯔와 포도농장은 매년 18만 리터의 포도주를 생산할 정도였고, 포항사람들은 포도농장에서 일하느라 전시에도 징용으로도 잘 끌려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시인 이육사가 그 포도농장을 돌아보며 '청포도'라는 시의 영감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안동이 고향인 이육사는 친족을 방문하고 시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몇 개월씩 포항에 머물곤 했다. 광활한 포도농장을 지나 호미곶 해변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저항 시인 이육사는 '흰 돛단배를 타고 고달픈 몸으로 찾아올 청포 입은 손님, 조국의 광복'을 꿈꾸었다.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이렇게 해방을 간절히 노래하던 이육사는 그리던 그 손님을 결국 맞이하지 못하고 1944년 1월 베이징 일제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그 포도밭 부근에 공항과 군사·교육시설이 들어섰고, 그 인근 해안에 대한민국을 살린 포스코(POSCO)가 조성되었다. 포항 포도주의 전통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포항시 청하면에서 포도재배를 재개하여 '마주앙'이라는 국산 브랜드 포도주가 탄생하기도 하였다.

1995년 겨울 필자는 영하 25도의 혹한 속에서 두만강 유역 중국도시 남평 언덕에서 강 건너 북한의 무산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노천 광산, 뿌연 연기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따닥따닥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단층집 굴뚝마다 밥 짓는 연기들이 솔솔 올라가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프도록 정겨웠다.

그 속에서 살고 있을 비록 가난하지만 소박한 우리 민족의 함경도 사투리들이 조근조근 들리는 듯 내 마음은 그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시아 최대의 자철광 (마그네타이트)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 도시 무산, 이 50억톤의 철광석을 언젠가 내가 살던 곳 포항의 POSCO에서 사용할 날이 오지 않을까?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그 꿈이 성큼 내 심장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무산 광산이 돌아가고 있는 동안은 강 하류는 검정색 탁류, 우리가 부르던 노래 '두만강 푸른 물'이 아니었다. 무산에서 캐낸 자철광은 파쇄를 통해 밀가루처럼 미분이 되고, 철 성분을 선별하기 위해 자력선광(beneficiation)을 한다. 철성분이 25% 미만이던 광물을 빻아서 자석을 통해 골라내면 63%이상의 철 성분이 높아진 가루가 된다.

이 미분광을 함경북도의 주도인 청진시까지 직경 90cm가량의 대형 관에 물과 함께 압력을 높혀서 수송한다. 무산에서 95Km, 250리를 달려가면 바닷가 청진시에 북한 최대의 제철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가 있다. 북한에 꼭 제철소를 세우고 싶어했던 고 박태준 회장의 꿈을 언젠가 청진시에 이루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남과 북이 함께 일어서고 함께 살아갈, 내일을 여는 길을 만드는 그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내 안에 싹튼 그 꿈은 마치 사막의 선인장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동해를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을 이어서 대륙으로 달려가고픈 소망으로 유라시아 원이스트씨 포럼을 만들었다. 그 꿈에 동참한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동해안 제철 도시 청진과 포항을 쇳물로 이어 길을 내는, '청포도(淸浦道)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무산 철광석을 활용하는 친환경제철소를 세우고, 포항과 청진을 오가는 화물선으로 철강재를 나르며, 유럽이 2차대전 후에 평화의 기초를 놓기 위해 시작했던 유럽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 Steel Community, ECSC)와 같은 남북한 철강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그 앞바다를 21세기의 지중해로 만들어 서로 오가며 청진과 포항을 쇳물로 이어 길을 내겠다는 당찬 꿈, 청포도의 꿈이다.

1973년 첫 쇳물이 쏟아질 때, 박목월 시인이 작사한 POSCO의 사가(社歌)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겨레의 슬기와 의지를 모아, 통일과 부흥의 원동력 되자'. 포항에는 청진리가 있고, 청진에는 포항동이 있다. 7월의 땡볕은 포도송이를 영글게 한다. 그 꿈꿀 수 없는 꿈을 함께 꾸고 싶다. 오래된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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