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30달러 유가' 경고 뒤에…이란·이스라엘 분쟁이 남긴 교훈은?

중동 분쟁, 유가 급등 불씨…한국경제 리스크 확대
호르무즈의 경고…유가 전쟁에 흔들리는 석유 의존 경제
비축 확대·에너지 전환, 지금이 골든타임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베르셰바를 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현장을 이스라엘 보안군이 점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베르셰바를 향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현장을 이스라엘 보안군이 점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군이 21일(현지시간) 이란의 핵 시설 3곳 중 지하 요새화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도 시설을 타격하는 데 전격 동원한 것으로 지목되는
미군이 21일(현지시간) 이란의 핵 시설 3곳 중 지하 요새화한 것으로 알려진 포르도 시설을 타격하는 데 전격 동원한 것으로 지목되는 '벙커버스터'는 '벙커 파괴용 무기'라는 이름 그대로 땅 밑 깊숙한 곳에 만들어진 시설을 무력화하기 위해 개발된 폭탄이다. 벙커버스터는 지표면 아래 깊숙이 파고들어간 뒤 폭발하도록 설계된 공중 투하용 초대형 관통 폭탄(MOP·Massive Ordnance Penetrator)을 통칭한다. 사진은 미국 공군이 AP통신사를 통해 지난 2023년 5월 2일 배포한 자료 사진으로 미국 미주리주 휘트먼 공군기지에서 공군병사들이 '벙커버스터'(GBU-57)를 운용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여전히 우리 경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국제유가 급등과 해상 운송망의 혼란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수입 원유의 72.7%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은 큰 타격이 우려된다. 에너지 수입 다변화와 장기적 구조 전환 없이는 제3의 석유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스라엘-이란 분쟁이 남긴 경고

국회예산정책처가 26일 발표한 '중동분쟁 위험과 우리경제의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3일 새벽,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및 군사시설에 대한 공습을 단행하고, 이란이 미사일과 드론으로 반격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무력 충돌이 본격화됐다.

이어 22일에는 미국까지 이란 핵시설 3곳을 공격하며 사태가 국제화되는 양상을 띠었고, 2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인 휴전을 발표하면서 일단 확전은 멈춘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일시적 분쟁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경로가 전쟁 리스크에 노출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경제, 특히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중동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중동발 석유 공급 차질로 유가와 운임 상승이 우려되는 2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앞 유가정보판에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번 주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은 6주 만에 상승 전환됐으며, 국제 유가 또한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에 따른 중동 지정학 리스크 상승 등이 반영돼 올랐다. 연합뉴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으로 중동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중동발 석유 공급 차질로 유가와 운임 상승이 우려되는 22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앞 유가정보판에 가격이 표시돼 있다. 이번 주 국내 주유소 휘발유·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은 6주 만에 상승 전환됐으며, 국제 유가 또한 이란·이스라엘 무력 충돌에 따른 중동 지정학 리스크 상승 등이 반영돼 올랐다. 연합뉴스

◆중동 의존 구조의 위험성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72.7%를 중동 국가에서 들여오고 있으며, 이 중 상당 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경로를 따른다. 2024년 기준, 하루 약 755만 배럴의 해상 원유 수송량 중 203만 배럴(27%)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고 있으며, 이 중 84%가 한국, 중국, 일본, 인도로 향한다.

이번 사태에서 이란이 해당 해협을 군사적으로 차단하거나 해운을 방해할 경우, 국제유가의 급등은 물론 해상 공급망의 혼란, 운송비와 보험료 폭등, 전 세계 제조업 체계의 차질 등 연쇄 충격이 예상된다. 실제 이란 의회는 지난 23일 해협 봉쇄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최고국가안보회의의 최종 결정을 앞둔 상태다.

◆유가 급등과 물가 상승·GDP 하락 시나리오

국회예산정책처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우리 경제가 받을 충격을 추정했다.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란의 원유 수출이 일부 되는, 첫 번째 시나리오는 국제유가 75달러다. 이 경우 무역수지 82억 달러 감소와 소비자물가 0.3%포인트(p) 상승이 예측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일부 봉쇄해 해상 운송이 부분적으로 교란되는, 다음 시나리오는 국제유가 100달러로, 무역수지 408억 달러 감소와 소비자물가 1.3%p 상승이 예상된다.

또한, 석유 수입이 5%만 감소해도 실질 GDP는 –0.6%p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서비스업 –0.37%p, 제조업 –0.12%p, 건설업 –0.04%p 등으로 광범위한 침체가 예상된다. 일부에선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 위기, 수입 다변화와 에너지 구조 전환까지

중동 분쟁이 발생한 지금이야말로 에너지 정책 전환의 골든타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기·중기·장기 세 차원의 대응 전략이 제시된다.

먼저 단기 대응으로 석유 비축 확대와 취약계층 보호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석유 비축 일수는 115일 수준이다. 보고서는 이를 상향 조정해 유가 급변 사태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급등한 유가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의 생계비 부담을 빠르게 가중되기 때문에, 유류비 보조금 확대, 에너지바우처 제도 강화, 서민 연료지원 프로그램 등의 정책적 장치를 가동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수입선 다변화와 해상 운송 안정성 확보가 요구된다. 중동 의존을 줄이기 위해 미국·호주·멕시코 등 비중동권 수입선 확보가 시급하다. 또한 호르무즈 해협 외에 대체 가능한 해상 루트를 개발하고, 해운·보험 분야의 위기 대응 체계도 점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안보 차원의 외교 협력과 함께 공기업과 민간 정유사 간 전략적 재고 공유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석유 중심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다변화하고,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전략이다. 전기차와 수소차,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물론, 산업계의 에너지 효율화 및 전환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경제성 세 축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통합형 에너지 전략' 수립이 절실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보고서를 통해 "분쟁이 교착 상태에 머무르더라도, 국제유가 불안과 수송로 차질은 무역수지와 물가, 실질GDP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특히 석유 공급 감소는 업종별 생산활동 전반에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제유가 급등 및 수급 불안에 대응하려면 에너지 소비의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석유 수입선 다변화와 비축 확대 등 장기 대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의 한 마을에 떨어진 이란의 탄도미사일 잔해 옆에서 한 남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의 한 마을에 떨어진 이란의 탄도미사일 잔해 옆에서 한 남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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