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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에 스테이블코인 문 열되…한국은행 "만장일치 위원회 통과해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비은행권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되, 인가 절차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한국은행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관련 제도 마련을 둘러싼 정부·여당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가운데, 한국은행은 '모두의 동의'를 조건으로 문을 열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한 공식 의견서를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인가 과정에서 한은을 포함한 유관 기관 간의 만장일치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기준이 단순한 자문이나 협의 수준이 아닌, 법제화된 절차로서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범부처 간 조율을 바탕으로 하는 정책기구 설립이 요구된다"고도 밝혔다.

한국은행이 이 같은 방안을 꺼내든 배경에는 최근 여당과 정부가 비은행권을 포함한 민간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용 방향으로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핀테크 업계 등 비은행 부문이 주도하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되, 완전 차단은 하지 않겠다는 절충안을 제시한 셈이다.

한국은행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의 사례도 언급했다. 한은은 미국에서 추진 중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명시된 '스테이블코인 인증심사위원회'(SCRC·Stablecoin Certification and Review Committee)를 예로 들며, "미국 역시 연방준비제도, 재무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 기구를 통해 발행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위원회는 금융기관이 아닌 일반 상장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반드시 만장일치로 의결해야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한국은행은 미국과 달리 자본 및 외환 규제가 엄격한 한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 강력한 심사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이 같은 방침을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바 있다. 지난달 23일 은행연합회 이사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주요 시중은행장들에게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위원회 만장일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은 그간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의 예금토큰이 스테이블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장 수요가 빠르게 변하고 정부 내 논의도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은행권 중심의 스테이블코인을 우선 허용하자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마저도 비은행권 진입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인가 요건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이 총재는 지난 1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수요에 따라 기존 계획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유지해온 정책 방향이 잇따라 수정되는 상황에 대한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으로 해석됐다.

한국은행이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무분별하게 발행될 경우 시중 유동성이 급증하고, 그에 따라 통화 신뢰도 저하와 통화정책의 유효성 약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기업의 신용 리스크나 준비자산 관리 실패로 인해 대규모 환매 요청이 발생하면, 가상자산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 간의 리스크가 전이되고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표면적으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발행 수익(시뇨리지·seigniorage)이 민간업체로 이전되는 구조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다. 공공 통화 공급자로서의 역할과 경제적 이익이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국은행은 향후 관련 법률 제정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안전판'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화폐 기능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기존 금융 시스템과 충돌하지 않도록 인가와 발행, 감독까지 모든 절차에서 다층적 심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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