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모현철] 기업을 살려 달라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모현철 편집국 부국장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미국발 관세 전쟁 와중에 정부·여당은 이른바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쏟아 내고 있다. 재계는 "우려를 넘어 참담하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거대한 지진의 진앙지(震央地)에 위태롭게 서 있는 형국이다. 재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단순히 이익 감소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수출이 막히고, 경영 의사결정이 흔들리고, 노사 갈등이 일상화돼 한국 경제가 무너질까 봐 두려운 것이다.

일본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미국과 15% 관세 협상에 합의함에 따라 한국이 느끼는 압박감은 커졌다. 협상을 끝내지 못하면 8월 1일부터 일본, 독일보다 10%포인트 높은 관세로 미국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경쟁국들처럼 관세를 내린다 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가 사라져 한국산 제품은 더 큰 타격을 받는다.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25% 관세를 부담하면 한국 산업은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기업 부담을 늘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재개정안 등을 내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고 못 박았다.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주주권 강화 조항이 담겼다.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회사가 대상이다. 해외 투기 자본의 경영권 침해 가능성 등 부작용 우려가 상당하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는 더 크다. 원청 사용자의 책임 확대와 합법적 파업과 관련한 손해배상 책임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들은 경영 안정성과 법적 예측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에 이어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법인세 인상은 기업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는커녕 세금을 더 거둘 수도, 경제 성장도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지금은 관세 폭풍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기업이 살아남고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숨통을 틔워 주는 정책이 더 절실한 때다. 기업 활력을 먼저 살리고 법인세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도 중요하고 주주의 권한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非常狀況)이다. 국익 중심의 균형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수 의석을 앞세워 강행 처리한다면 국민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담당하는 주체는 결국 기업들이다. 정부의 대미 협상 SOS에 기업들이 한 팀을 이뤄 대응하는 것은 결국 관세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본격적 관세 협상을 앞두고 우리 기업과 '원팀'을 이뤄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의 일방통행은 원팀 약속과 어울리지 않는다. 협상이 불발되면 모든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면서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타격도 상당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기업들과 진정한 소통을 위해 애써야 한다. "살려 달라"는 기업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 주도 성장을 외치면서도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과 규제를 추진하는 모순을 깨야 한다. 기업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규제로 인해 한국을 떠나는 기업이 더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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