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문화를 축제처럼 만들려고 하면 안 됩니다. 도시 곳곳에 예술이 일상처럼 스며들어 있어야죠. 걷다가도 볼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서울 도심에서 즐기고 만날 수 있어야 하는 게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관되게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 '예술의 일상화'인데, 이제는 안정화가 된 것 같아요."
2시 정각 슈트 차림으로, 집무실로 나온 오세훈 서울시장은 훤칠한 키에다 미남형이었다. '영화배우'처럼 보였다. 실내에는 6인용 나무 탁자가 보였고 갤러리 분위기가 났다. 인터뷰는 대체로 옆좌석에서 사선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2m 정도 간격을 두고 수직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당황하자 오 시장은 "사진 촬영이 필요한 인터뷰를 할 때는 이렇게 합니다."라며 웃었다. 5m 정도 간격 옆쪽에는 원형 탁자가 있었고, 이는 돌출형 객석처럼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이창기 서울시 문화수석부터 대변인, 서울시 문화정책과장 등 10여 명이 배석해 인터뷰를 바라봤다. 조명이 설치된 인터뷰 탁자는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2인극 무대처럼 느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선 민선 서울시장답게 평소 밀어붙이는 생각들을 막힘없이 얘기했다. 말투는 조용하면서도 높낮이가 분명한 데서 느껴지는 힘이 있었다. 억양과 속도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있었고,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배우가 촬영장에서 상대역과 대사를 주고받는 기(氣) 같은 에너지가 흘렀다. 어깨가 약간 흔들렸다. 그 시선과 눈빛을 받고 질문하기 위해 자세를 바꿔 앉고는 오스트리아 빈과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인터뷰 탁자에는 물 한 컵과 질문지만 놓여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명쾌한 답변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오 시장의 표정도 그렇게 보였다. 마치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인터뷰 프로그램처럼, NG를 내면 안 된다는 강박감이 밀려왔다. 호흡을 들이마시고는 첫 질문을 했다. "1778년 개관한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Teatrale alla Scala)을 방문하셨더군요."
"유럽 도시들을 방문하면 그 도시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들을 눈에 담게 되는데, 그중에 공연장은 꼭 들어가 있어요. 밀라노시 관계자도 라 스칼라 극장을 먼저 보여주겠다는 거예요. 그만큼 유럽에서는 극장이 도시의 자랑거리인 거죠. 지금 서울시도 제2의 세종문화회관 건립을 계획 중이고, 한강 변 여의도 지구에 입지가 돼 있습니다. 올해 설계가 들어가서 곧 착공할 겁니다. 기존의 세종문화회관도 리빌딩하려고 하는데, 내부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외관이 많이 바뀔 겁니다. 그래서 관심을 갖고 유럽의 공연장들을 보게 된 겁니다."
▶정명훈 지휘자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라 스칼라 극장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볼만한 것들이 많았겠군요.
"맞아요. 라 스칼라 극장은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역대 공연작과 출연 배우들 사진, 발레 의상이나 토슈즈 같은 것까지 작품화해서 진열해 놓았더라고요. 특히 공간 활용과 관련해 인상 깊었던 건, 무대 뒤편을 둘러보니 관객석보다 백스테이지 공간이 훨씬 넓었어요. 옛날에 지었는데도 백스테이지에 차량이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요. 공연 두 편을 동시에 준비할 수 있도록 무대장치가 두 개 들어와 있는 거죠. 극장을 둘러보는데도 차량이 보이더군요. 그런 부분들은 관객 시점에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뜻깊은 출장이었습니다. 정명훈 지휘자가 최근 라 스칼라의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소식도 반가웠어요. 서울시향을 이끌었던 예술감독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서울시의 예술 정책에서도 제가 더 넓은 시야와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표정에서 출장의 만족감이 묻어나오는 인상을 받았다. 벤치마킹의 설계도를 서울시의 정책으로 연결하려는 성과가 있어 보였다. "책임감을 얘기하셨는데, 공연예술 분야의 성장에 있어서 극장 조성이 필수입니다. 공공예술극장 확충 아이디어와 벤치마킹할 수 있는 문화정책이 보이던가요?"
"라 스칼라 극장을 통해 한 도시의 공연장으로부터 나오는, 문화예술 인프라의 품격 같은 걸 느꼈어요. 이처럼 좋은 공연 시설은 한 도시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이에요. 서울시는 단순히 공연장의 숫자를 늘리는 게 아니라, 창작·연습·발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품을 수 있는 구조로 새로운 세종문화회관을 설계하고 있어요. 라 스칼라에서 이뤄지는 공연과 교육, 시민들의 일상적인 참여 방식도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공공예술극장이 창작자에게는 실험과 창작의 플랫폼으로, 시민에게는 일상에서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의 목표에요. 현재 세종문화회관은 야외무대를 활용해 '광화문광장 야외 오페라'를 3년째 진행하고 있어요. 시민들에게 오페라를 더욱 친근하게 소개하려는 시도죠. 전통을 지키면서도 오페라의 대중화를 위해 힘썼던 라 스칼라의 노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보니 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출장 평가를 하셨더군요. 예술인들은 공공임대주택 확충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문화예술인의 주거와 생활이 안정되어야 좋은 예술도,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도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예술인 주거 정책에 관심이 많아요. 집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인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서울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빈 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정책도 공공임대주택이었습니다. 공공임대주택이 주거 복지 정책에 그치지 않고, 도시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인프라로 작동하고 있더라고요. 특히 예술가, 신혼부부, 고령층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공급 방식이나 민관협력 운영 시스템은 서울시가 충분히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유럽 도시들에 비해 서울시의 공공주택 공급은 적은 편이에요. 하지만 서울시도 '예술인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추진 중이고, 빠른 속도로 많은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2022년부터 SH공사와 협력해서 매입형 임대주택을 활용한 예술인 전용주택을 공급 중인데요. 지난해에는 약 40호 정도 공급했고, 올해는 50호 이상 확보할 예정입니다. 오는 2026년까지는 총 200호 이상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앞으로는 예술가들이 주거지에서 창작과 교류를 유기적으로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설계하려고 해요. 빈의 사례를 참고해 수요 맞춤형 공간 설계, 민관협력형 기금 활용, 커뮤니티 중심의 운영 방식, 예술인의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지원 체계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려고 합니다."
▶예술인을 위한 공공주택 확대도 '예술이 도시의 경쟁력을 결정한다.'라는 서울시 정책 방향과 연관된다고 보는데.
"예술은 단순히 도시의 장식품이 아닙니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그 이상으로 도시의 품격과 회복력,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도시 형성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창작 활동이 활발한 도시가 결국은 발전해 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감수성과 창의성이 도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사람들을 끌어당기거든요. 과거 제조업 중심의 20세기와 달리, 오늘날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대규모 제조업 공장이 거의 없어요.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감수성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예술은 바로 그런 창의성과 감수성을 길러주는 정서적 근육인 거죠. 예술축제, 공공미술, 박물관, 공연장 등은 자원이 되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소비를 창출합니다. 디자인, 공연예술,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 내는 시너지가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에요."
▶오세훈 시장은 한국 사회 예술,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폭이 전문가 수준 이상이었다. 답변은, 현장에서 뛰고 달리면서 시장의 예술적 감각으로 느낀 것을 정책으로 순환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예술이 도시의 경쟁력이 되고, 예술 인프라가 도시 발전을 견인하는 곳은 어디인지"물었다,
"세계적으로 한류가 풍미하게 된 바탕은 대학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로가 사실 배고픈 연극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인데, 요즘엔 명소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인해 임대료가 너무 비싸졌죠. 옛날에는 궁핍했지만 자유로운 보헤미안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문화예술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곳이었잖아요. 예술 인프라는 도로, 상하수도, 교통망만큼이나 시민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도시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시각화하고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그 도시만의 독창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요. 서울에서는 '키아프·프리즈 서울'과 같은 국제 미술 행사, 이와 연계한 '서울아트위크' 등이 도시를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이 되고 있어요. 서울은 이제 외국인, 특히 젊은이들이 경험을 쌓고 공부하고 싶어 하는 도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최근 QS(영국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가 발표한 '대학생을 위한 최고의 도시' 순위에 서울이 런던과 도쿄를 제치고 1위로 선정됐거든요. 서울에 오면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형성됐다고 볼 수 있겠죠. 그만큼 앞으로 대한민국 예술과 문화의 경쟁력은 더욱더 높아질겁니다."

▶최근 서울시가 예술인 지원 정책을 다각도로 펼치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술은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예요. 그리고 그 예술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예술가가 있죠. 서울에는 예술활동증명 기준으로 약 7만 명의 예술인이 등록되어 있어요. 청년을 비롯해서 중장년, 원로까지 다양한 장르의 예술인들에게 연간 약 500억 원 규모로 예술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나 지자체의 가용 예산은 한정적이잖아요. 또 보조금 형식으로 단체나 개인에게 지급될 때 선정 과정에서 잡음도 있을 수 있고요. 그래서 근본적인 지원책은 자족적인 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으로 작품을 선정해서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는 생태계를 형성할 수가 없어요. 예술가가 대중과는 유리되고 심사위원들의 기준에 맞추려고만 하게 되거든요. 예술인에게 창작지원금과 고용 안전망 강화, 생활 안정 지원금을 제공하는 동시에, 창작이 지속 가능하도록 도시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죠."
▶'500억 원을 지원하면서 성과가 각인되는 예술 작품이 무엇인가?' 했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순수예술의 성과가 다른 산업처럼 수치상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지만요. 그런 측면에서 자족적인 예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공감합니다.
"관객들이 좋은 전시나 공연을 스스로 보러 가는 문화가 활성화될 때, 공연 예술계도 경제적으로 선순환되고 재투자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됩니다. 제가 시장으로서 4년 전에 처음 시작한 사업이 '공연봄날'과 '서울청년문화패스'예요. '공연봄날'은 초·중·고 학생들을 단체로 공연장에 초청하는 프로그램인데,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공연을 접하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만들어서 미래의 소비자이자 제작자가 되도록 하는 거죠. '서울청년문화패스'는 20~23세 청년들에게 20만 원의 문화 관람권을 제공해 '문화 세포'를 키워주는 사업이에요. 지금까진 잘 진행되고 있고, 정부가 이 사업을 가져가서 전국적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어요. 이런 장치들을 통해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2~3년 후엔 굉장히 늘어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시장은 미래 관객 개발을 위한 정책과 청년 예술가를 육성하기 위한 방향은 확고해 보였다, "관객 육성만큼이나 미래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젊은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죠."
"젊은 창작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회와 공간이지 않을까요? 재능은 있는데 창작할 공간과 발표할 기회가 없어서 예술을 포기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죠. 그동안 서울시는 청년예술청, 서울연극창작센터와 같은 창작 공간을 통해 젊은 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왔습니다. 이곳들은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 지원과 함께 발표 기회, 네트워킹, 멘토링까지 패키지로 지원함으로써 결과물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지원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이 인맥이나 배경이 아니라 오직 예술성과 창의력만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울시는 실력과 콘텐츠 중심의 평가 시스템을 계속 보완하고 있어요. 또 기존의 청년 예술인 지원을 넘어, 이제 막 졸업을 앞둔 예술 전공생들이 전문 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현장과의 연결을 지원하는 '브릿지 페스타'를 준비 중입니다. 이 사업은 쇼케이스 발표, 공연예술 단체와의 매칭, 역량 강화 교육과 네트워킹 등 실질적인 예술계 진입을 돕는 프로그램이에요. 이를 토대로 서울시의 예술 지원 체계를 더 정교하게 고도화할 계획입니다."
▶서울시의 정책만을 가지고 인터뷰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뮤지컬 이야기를 꺼냈다.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관왕을 수상하면서 K-컬처에 대한 관심이 순수예술 분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결국, K-컬처의 뿌리는 기초 예술 분야일 텐데…."
"사실 서울시와 <어쩌면 해피앤딩> 수상하고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 6관왕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뿌듯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성공은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라 창작 지원, 인프라 구축, 관객 개발까지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 결과죠. 단순히 한 작품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지난 수년간 서울시가 공연예술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온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체적으로 평가하긴 멋쩍지만 제가 취임한 이후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등 많은 예술지원시설을 개관하고, 서울예술상을 만드는 데 힘을 실었습니다. 사실 케이팝과 K드라마의 세계적 성공을 보며, 우리의 다른 문화들도 충분히 세계에 어필할 수 있다고 늘 생각해 왔어요. 연극이나 무용, 전통예술과 같은 순수예술이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짜 깊이와 저력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영역입니다. 서울은 2천 년 고도의 역사, 압축성장의 경험, 그 속에서 쌓아온 인간적 정서를 지닌 도시잖아요. 순수예술은 한 철 유행하고 지나가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서울의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을 보다 더 잘 담아낼 수 있어요."
▶정치권 얘기를 꺼냈다. 최근 기업가 출신 후보자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지명됐습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떤 예술 지원 정책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최휘영 후보자가 기업가 출신이다 보니 문화예술계 안팎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걸로 알아요. 그분은 여행플랫폼 대표 등 관광 쪽 경력이 있으시더군요. 아무래도 문화, 체육, 관광이 한 부처로 묶여 있으니까 모든 영역에 달통한 전문가를 찾기는 어렵겠죠.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효율성과 수익성만이 아니라, 먼저 예술의 자율성과 실험성을 보장하는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초 예술과 신진 예술가를 꾸준히 지원하는 게 중요한 거죠. 후보자가 순수예술과 그 생태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문화예술로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어요. 예를 들어 케이팝이나 대중문화는 잘 만드는데, 한국의 클래식이나 순수예술은 어떤 수준인지에 관해서 세계의 눈이 집중될 수 있겠죠. 그런 부담감을 극복하기 위해 이번에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으로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을 모셨어요. 이사진들뿐만 아니라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가 정치 얘기로 흐를 것 같아 예술정책 이야기로 돌렸다. "'예술의 일상화'가 서울시 예술 정책의 중요한 방향이지요?"
"특별한 날에만 예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누리는 문화적 여유가 꼭 필요하다고 봐요. 제가 2013~2014년경 서울시장을 그만두고 온 가족과 런던에서 1년 정도 거주한 적이 있는데요. 틈만 나면 웨스트엔드나 동네 극장을 다니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 공간들이 매번 관객들로 가득 차는 걸 보면서 굉장히 놀랍고 부럽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의 저녁 문화라고 하면 술집이나 노래방에 가는 정도였는데, 런던에서는 여가를 예술과 함께 보내는 문화가 확고하게 정착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도 문화적으로 더 성숙한 단계에 와있지 않나 싶습니다. 서울문화재단이 6월에 발표한 '2024 서울 시민 문화 향유 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시민들의 문화예술 관람률이 76.1%까지 올라갔고, 공연예술과 전시 관람 비율이 영화 관람을 앞질렀더라고요. 평범한 시민들이 일상에서 공연 전시와 어우러지는, 예술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겠죠. 퇴근길에 커피 한잔 마시듯, 주말에 동네 산책 나서듯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예술의 일상화'가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예술의 일상화가 실현되고 있다고 하셨는데...'예술이 일상이 되는 도시'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서울시는 예술의 일상화를 위해 끊임없이 투자하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문화예술을 즐기는 문턱을 낮추는 일이에요. 많은 시민이 연극이나 클래식, 무용 등 순수예술을 보러 가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기 때문에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해요. 서울시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해설이 있는 공연을 늘리고, 엄격한 관람 예절보다는 자유로운 감상을 격려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만 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대학로 우수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야간공연관람권'도 추진 중이에요. 또 '책 읽는 서울광장'이라는 프로그램도 성황리에 확대 발전하고 있어요. 빈백을 쭉 뿌려놓은 광장에 가족 단위로 와서 아이들을 팔베개 무릎베개로 눕혀놓고 같이 책을 읽는 게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서울광장뿐만 아니라 청계천, 광화문, 한강 변까지 이 프로그램이 번져나가고 있어요. 제가 처음 서울시장을 할 때는 광장에서 공연을 주로 했는데, 그게 분위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투자였다면, 앞으로는 시민의 일상에 문화예술이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고 싶어요."
▶말씀대로라면, 예술의 일상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겠군요.
"도시의 문화예술 인프라는 단순히 건물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예술의 내일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도시의 품격을 결정짓는 공간인 거죠. 예술 인프라가 창작자에게는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패할 수 있는 안전한 실험실이 되고, 시민에게는 예술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광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서울시는 예술가와 시민, 창작과 향유의 모든 과정을 품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왔어요. 다양한 장르가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공간과 제도를 갖추도록 맞춤형 전략을 펼쳐왔고, 최근에는 연극 분야 인프라도 활발히 확충되고 있습니다. 2023년 재개관한 서울연극센터는 대학로 중심부에서 연극인과 시민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올해 3월 개관한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창작의 시작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을 담아낼 수 있도록 클러스터형 공간으로 만들어졌어요. 무대의상, 소품, 무대세트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리스테이지 서울'이라는 플랫폼도 제가 제안해서 만들었는데, 아직까진 자질구레한 소품 위주로만 운영된다고 해서 조금 아쉽습니다.'리스테이지 서울'에는 창작에 필요한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소유를 넘어 순환 시스템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있어요. 작년 말에는 서울영어마을 수유캠프 안에 '대도구 창고'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도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장르가 안정적인 창작 기반을 확보하고, 시민과 더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다져나가야겠죠."
▶그런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연극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려면 전략도 필요하죠.
"다시 강조하자면,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서울이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극인들이 그간 쌓아온 예술적 유산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연극 도시를 만들려면 단순히 인프라를 확장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겠죠. 무엇보다 서구 콘텐츠의 아류가 아니라 '서울만의 색깔'을 갖춘 연극 콘텐츠가 꾸준히 생산되고, 작품들이 국내외에서 신뢰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한국적인 정서와 이야기를 담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성을 갖추도록 해야죠. 서울시는 2023년부터 '서울예술상'를 제정해서 연극을 포함한 순수예술 분야 시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창작자들에게는 자긍심을 부여하고, 우수작에 검증된 작품이라는 신뢰를 부여함으로써 국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만들어주려는 시도지요. 올해 첫발을 떼는 '서울어텀페스타'를 비롯해, 서울에서 개최되는 국제 공연예술축제를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과 같은 세계적인 위상의 공연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서울시가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창작자들이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창작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힘쓸 겁니다. 이를 통해 '서울에 공연 보러 가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세계적인 우수작은 모두 서울에서 탄생한다.'라는 인식이 심어졌으면 좋겠어요."
▶지역마다 문화 격차가 심각합니다. 지역마다 문화 격차가 심각합니다. 대구가 뮤지컬의 도시로 전환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전문적인 인프라 구축은 약한 편이에요. 타 광역 단위 지자체도 공연 시설이 낙후되거나 미비한 실정인데, 전국이 문화예술 도시로 균형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요?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과 접근법이 있을 거예요. 대구는 지금 뮤지컬 도시로 꽤 유명하죠. 권영진 시장 이후에 투자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굉장히 좋은 정책적인 시도라고 생각하고요. 지역별로 각자의 자연환경이나 개성, 인프라를 활용해서 특색있는 문화예술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어요. 광주 같은 경우에는 디자인 비엔날레를 일찌감치 시작해서, 디자인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해왔어요. 순천시는 순천만국가정원이 국제 정원으로 지정받았고, 대한민국 전 국토를 정원화 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서울시가 수년간 축적해 온 공연예술 인프라 구축 경험과 설계·운영·프로그래밍 노하우를 앞으로 전국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차원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검증된 우수 공연이 전국을 순회하고, 지역에서 탄생한 좋은 작품도 서울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양방향 프로그램을 마련해야죠. 앞서 말씀드린 '서울어텀페스타'에도 지역 우수작들을 적극 초청하려고 해요. 인재 양성과 교육 분야에서의 협력도 빠질 수 없습니다. 서울의 공연 창작 인력들이 지역에서 워크숍이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고, 지역의 예술인들이 서울에서 연수받으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게 필요합니다. 서울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문화 균형발전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니까요."
인터뷰 2시간 전에 이창기 문화 수석을 만나 서울시의 다양한 예술 정책을 들었다. 시장은 서울청년문화패스 등 청년 예술인들과 창작자, 청년예술 소비 관객 지원에 대해서도 정책들을 정교하게 알고 있었고 문화와 예술이 더욱 시민들과 밀착될 수 있는 정책을 전문가(박사) 수준으로 연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 질문에 거침없는 생각들을 말했는데, 자신감을 느끼게 했다. 인터뷰 중간에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 운영하는 리스테이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 보였다. "연극 소품, 의상 등을 리스테이지 하자는 취지로 하고 있는데 어떤가요?"라고 질문을 해와 " 잘되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니 웃으면서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에요. 다 얘기 듣고 있어요. 아직까지는 기대엔 좀 못미쳐요. 연극 소품들이 일회성으로 소비되지 말고 리스테이지 하자는 취지로 한 건데 아쉽습니다. "마지막 질문 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3분 정도를 넘기고 있었다.
자리를 시장 옆으로 옮기고는 물었다. "연극을 하시는 아내 몇 점인가요?" 시장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2초 정도 머뭇거린 후 답변이 돌아왔다. "100점이죠." 이 한마디에 인터뷰를 지켜보던 관계자들의 웃음소리가 빵 터졌다. 마지막 분위기로 생방송 같은 인터뷰는 <어쩌다 해피앤딩>이였고 시장은 부속실 문 앞까지 나와 악수를 청했다. 사회 각계인사 450여 명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직감이 생겼다. 말투와 표정, 질문에 답변하는 분위기에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의 실행 정도와 진심을 가늠할 수 있는데,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서울시의 정책은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 들었다. 서울시가 예술이 일상이 될 수 있는 정책 방향의 길을 오세훈 서울시장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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