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들의 고향 의성]<8> 여름 의성 산사와 계곡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여름 산사(山寺)는 고즈넉하다 못해 적막하다. 폭염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찾은 산사 대곡사는 도심의 열기를 피하는 훌륭한 피서지이자 피곤한 삶의 노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일탈이다.

그 산사 여름꽃이 만개(滿開)했다. 여름 꽃은 귀하디귀하다.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한낮의 열기는 노스님의 좌선(坐禪)을 방해할 정도로 폭력적이지만 그 절앤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한 여름에는 태양에 정면으로 맞서는 해바라기 외에는 꽃다운 꽃이 없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해바라기가 해를 보고 웃는다면, 그 절에선 '염화미소(拈華微笑)' 머금은 연꽃 한 송이 피어나 산사를 찾은 낯선 방문객을 반겨준다.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산사 대곡사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그 산사 범종루((梵鐘樓)를 연분홍 '부처꽃', '참나리꽃' '두메바늘꽃' 군락이 에워쌌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위해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명부전(冥府殿)'곁은 오래된 배롱나무가 붉디붉은 '배롱꽃'을 피웠다. 한 여름 산사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풍경이다.

의성은 핫(Hot)하다.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한 곳이다. 인구소멸도시에서 청년들이 몰려드는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뜨거워진 도시다. 지난 봄 온 나라를 태워버리려는 듯 뜨거운 불길로 달려들던 산불의 상처를 치유하고 소멸 위기 농촌의 미래모델을 향해 달려가는 의성이다. 뜨거운 애국심 하나로 지켜 온 '의로운 고장' 이라는 지명처럼 의성사람들의 나라사랑은 불볕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의성 공설운동장 뒤편에 자리한 '호국동산'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성출신 독립운동가와 순국 호국영령을 기리는 추모공간이다.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의성공설운동장이었지만 그 뒤편 호국동산을 만나자 진짜 의성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숙연해졌다.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의성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 범종루 주변에는 여름꽃인 붉디붉은 베롱나무 꽃과 연분홍 부처꽃이 만개했다.

인간의 하찮은 실수가 빚은 참화를 온 몸으로 받아낸 고운사는 다시 재건중이다. 비봉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곡사는 고운사의 말사로 공식적으로는 고려 공민왕 때 창건되었다지만 실제로 그보다 오랜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다.

여름산사를 찾아 나선 것은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일상탈출이라는 여름휴가의 진면목인 치유의 길이었다.채운만큼 비우는 데는 산사만큼 적당한 공간이 없다.

그 산사 대곡사는 '비봉산 대곡사'라는 일주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저 시골구석 작은 절로만 알아서는 큰 코 다친다. 범종루와 대웅전, 명부전, 나한전. 산신각 등 잘 다듬어놓은 듯 가지런하게 배치된 사찰규모도 정겹다. 대곡사 뒤편 비봉산자락을 오르면 작은 암자 '적조암'도 갈 수 있다.

국가유산청이 보물로 지정한 '범종루'는 북적거렸던 초파일 대곡사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유년 시절 엄마 손에 이끌려 이 절에 온 적이 있다. 교통이 불편했던 그 때 초파일 전날 찾아 범종루에서 밤벌레 소리를 들었다. 보물 범종루를 초파일 불자들의 숙소로 만든 상상할 수 없는 옛 추억인 셈이다.

대곡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나지막한 높이의 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낮은 높이의
대곡사 대웅전 앞마당에는 나지막한 높이의 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낮은 높이의 '다소 초라해 보이는' 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체험한 중생을 닮았다.

대웅전 앞마당엔 어느 절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나지막한 높이의 다층석탑이 있다. 석가탑과 다보탑 같은 웅장한 규모나 탑리 오층석탑과 같은 번듯한 석탑이 아닌 173cm에 불과한 낮은 높이의 '다소 초라해 보이는' 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온몸으로 체험한 중생을 닮았다.

백성들의 낮은 삶을 온전하게 보여주려는 부처의 가르침이 아닐까. 탑신을 온통 점판암으로 만든 희귀한 청석탑(靑石塔) 양식이다. 그래도 기단부에는 바닥돌과 연화대좌 상대석 등의 탑 구조는 제대로 갖췄다. 해인사와 동화사 암자에도 이와 같은 형태의 다층석탑이 있어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짐작한다.

푸른 숲 깊은 계곡

풍경도 졸고 있는

고적한 산사

스님은 어디 가고

약수 홀로 염불을 (졸졸졸)

시름 없이 돌아서는 발길

견공이 붙잡는다

박달재 시인의 시 산사가 어울리는 대곡사다.

한여름에도 얼음같은 차가운 바람이 분다는 의성
한여름에도 얼음같은 차가운 바람이 분다는 의성 '빙계계곡'.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많은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피서는 계곡, 빙계계곡

피서는 계곡이 제격이다. 한여름에도 얼음같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빙계계곡'이 의성을 대표한다. 춘산면 빙계리의 빙계계곡은 여름에도 개울에 얼음이 언다는 곳이다. 빙산(氷山)이 있는 이곳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땅 속에서 솟아나는 빙혈(氷穴)이 유명하다. 이 빙산을 휘휘 돌아 차가워진 계곡을 '빙계'라 불렀고 한여름에는 얼음같은 바람이 불고 엄동설한에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스러운 계곡이 빙계다.

빙계마을에 들어서면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 돌담길 사이로 미로처럼 오르면 '빙혈'을 만날 수 잇다.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원효대사'에는 요석공주가 원효대사와의 사이에 난 아들 설총을 데리고 이곳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요석공주가 이 동네 어귀에 도착해서 대사의 거처를 묻자, 마을사람들은 '빙산사 빙혈 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알려준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오는 풍혈(風穴)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소.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요석공주는 빙혈 입구에 도착해서 굴속을 더듬으면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사는 봉치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에 온몸이 어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굴이 넓어졌고 허리를 펴고 팔을 휘휘 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공주는 어둠 속에서 크게 소리쳤다. '아바아(여보)!' 그 소리가 웅하고 울려 퍼져 큰 쇠북의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스러졌다고 한다.

빙산사(氷山寺)가 있던 절터에 있던 빙상사지 오층석탑.
빙산사(氷山寺)가 있던 절터에 있던 빙상사지 오층석탑.

실제로 빙혈에 들어서면 찬바람이 으스스할 정도로 얼음처럼 시원하다. 빙혈은 빙산사(氷山寺)가 있던 빙산사지 바로 곁에 있어 절터만 남은 곳에 오층석탑이 우뚝 솟아있어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인근의 탑리 오층석탑과 크기와 형태가 쌍둥이처럼 닮았다. 신라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빙계계곡 입구에는 조선 중종 때의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안국을 봉향한 빙계서원이 있다.
빙계계곡 입구에는 조선 중종 때의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안국을 봉향한 빙계서원이 있다.

빙계계곡 입구에선 조선 중종 때의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안국을 봉향한 '빙계서원'을 만나게 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가 2006년 유교문화사업을 통해 재건됐다.

계곡 바로 옆에는 캠핑장이 마련돼 있어 한여름에는 도시인의 '캠핑로망'을 실현하기 위한 캠핑카와 트레일러 등의 자리다툼이 일 정도로 인기를 끄는 명소가 됐다. 계곡 아래쪽에는 의성군에서 운영하는 '빙계얼음골야영장'이 운영되고 있다. 카라반(4~6인) 18대와 자신의 캠핑카나 차량 및 캠핑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오토캠핑장 30여석이 마련돼 있다. 성수기(7-8월) 두 달을 제외한 비성수기에는 의성군민 50% 이용요금 할인 혜택이 있다.

의성군 통합예약서비스(https://www.usc.go.kr/reserve/main.do#)에서 예약할 수 있다.

글·사진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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