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넓게 펼쳐진 풍경과, 모든 것을 품어주는 듯한 항아리와 대접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전시가 갤러리우진(대구 남구 대봉로 181)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우진의 이전 개관 기념전인 이번 전시에는 허필석, 권혁 작가가 참여해 각자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곧게 뻗은 도로 위를 달리는 빨간 차량이 인상적인 허필석 작가의 작품은 보는 것 만으로 속이 시원해진다. 그의 작업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출발해,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 가족들과 떨어져 할머니 손에서 컸다. 경남 의령의 할머니댁은 산으로 둘러싸인 깡촌. 그는 "어릴 때는 그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다"며 "앞에 보이는 산만 넘으면 부산이고, 바다가 펼쳐져 있을 줄 알았다"며 웃어보였다.
어느 날 우연히 산을 넘으며 현실을 깨닫게 됐지만, 그 때 머릿속으로 그리며 갈망했던 신기루는 성인이 돼서도 꿈 속에 어른거렸다.
"그 때의 기억을 그리겠다는 의도를 갖고 풍경화를 시작했던 게 아니라, 자꾸 언덕과 길, 버스를 그리는 나 자신을 보며 왜 이것에 집착하나 되돌아보니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됐죠. 작품에 등장하는 빨간 차 역시, 시골에서 차 소리만 들리면 엄마가 왔나 싶어 뛰어나가던 기대감과 그리움을 담고 있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은 거창한 노스탤지어라기보다, 어린 아이의 아련한 동경이자 순수한 마음 그 자체다. 여기에 20살 때 떠난 배낭여행에서 매료됐던 남프랑스의 들판도 작품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표현하는 데 한 몫 했다.
그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지치고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관람객들에게 희망과 행복, 에너지를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 작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변화를 시도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세상의 혼란을 품어내는 듯한 항아리와 접시가 자리한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정갈한 도자기들을 똑같이 그리는 대신, 붓으로 빚어내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게 빚어진 도자기들은 하나의 인간이 돼 아우성 치는 현대인으로 형상화되기도, 심장을 맞댄 듯한 두 사람이 되기도 했다.
이렇듯 기존에 치유와 비움, 채움, 기억 등 다소 개인적이고 추상적이었던 주제의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서 동시대가 품고 있는 거대 담론으로 확장된 모습이다.
그는 "현 시대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전쟁 등 갈등의 심화"라며 "혼란에 대한 얘기를 한국적 사상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항아리와 접시는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안아내는 '품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화면 구성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포용의 미학' 작품에는 250개국 언어로 직접 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텍스트가 더해졌고, 37개의 레이어로 구성된 홀로그램 방식도 시도했다.
그는 "평면이지만 공간감 있는, 기존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며 "좀 더 객관적으로, 전세계가 공감하는 갈등의 문제를 한국적 사상으로 '품어내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9월 12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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