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개통으로 지역산업의 변화
경상감영이 있는 지방행정 중심지 대구는 1658년 생긴 대구약령시와 서문시장의 영향으로 상업이 크게 발전했다. 이중 대구약령시는 370년 가까운 역사를 간직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설치된 한약재 전문 도매시장이다. 대구약령시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 등 국내외 각처의 약재 관련 인사들이 왕래하였다.
이로 인해 약재 생산자와 상인들은 물론 객주와 거간, 여각 등이 번성하였다. 대구약령시는 세계 곳곳으로부터 온 사람과 재화·용역에 의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경부선 철도와 대구역이 개통한 1905년을 전후해 대구는 본격적으로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대구역의 개통은 교통·운수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 등 도시 전반에 걸쳐 큰 파급효과를 창출했다. 물자와 사람의 시공간적 이동을 넘어 재화를 생산, 소비하는 경제구조로 확산되었다. 대구역은 집객과 분산의 플랫폼 기능을 하는 엄청난 규모의 광장과 복합상업시설, 다중문화시설 등이 형성되는 등의 도시 대변혁을 가져왔다.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최초의 방직공장도 대구에서 탄생했다. 1915년 추인호가 세운 '동양염직소'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한국 섬유산업이 대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1920년대 들어 달성공원 부근에는 20여 개의 영세 직물공장이 더 들어섰다. 이후 대구는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최대 섬유도시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1930년대에는 미나카이, 이비시야 등 일본인이 세운 백화점이 번성하던 때에 대구에서 조선인이 세운 백화점이 등장했다. '반월당'과 '무영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무영당은 대구 지역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후원하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
광복 후 대구에서 태동하여 성장한 기업들이 속속 등장한다. 아마존과 스타벅스의 시작은 '시애틀', 벤츠의 고향은 '슈투트가르트', 코카콜라 하면 '애틀랜타'라고 하듯이 세계적인 기업마다 상징적인 고향이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의 고향은 대구다. 프로야구단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가 대구인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삼성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은 1938년, 대구 인교동에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三星商會)'를 창립했다. 2024년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하여 총 63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는 삼성의 최초 제품은 '별표 국수'다.
1954년 삼성상회로 기반을 잡은 이병철이 침산동 일대에 '제일모직'을 설립하였다. 제일모직은 광복 이후 설립된 단일 공장으로는 한국 최대 공장이었다. 삼성그룹의 뼈대이자 많은 관계사의 모태가 된 제일모직 터는 '대구삼성창조캠퍼스'가 조성되어 있다. 대구삼성창조캠퍼스에는 복원해놓은 삼성상회 건물과 창업주 이병철의 동상, 창업주 이병철의 집무실이 있는 제일모직기념관 등이 있다.

1961년 제일모직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이만하면 딸을 맡겨도 되겠군'이라고 했던 이야기가 전해지는 여자기숙사도 원형 그대로 보존 활용되고 있다. 대구시 북구 칠성동 대구오페라하우스와 그리고 주변에 있는 아파트 단지 일대는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대구 제1공단 터이다. 이 공간은 1960년대 초반부터 가속화된 산업화를 이끈 핵심 공간으로 당시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 산업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큰 곳이다.
◆ 섬유산업의 메카
1957년에는 동구 신천동 일대에 창업자 이원만이 '한국나이롱'을 설립한다. 지금의 코오롱그룹이다. 이 회사에서는 한국 최초로 나일론 원사를 직접 생산했다. 나일론이 처음 나왔을 때 여성들이 나일론 치마저고리를 입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 당시 나일론은 문익점이 전래한 목화씨에 비교될 정도로 의생활 혁명을 가져왔다.

1950년대에 침산동에 제일모직이, 신천동에 한국나이롱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의 섬유산업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또 에너지 사업을 주로 하는 대성그룹도 1947년 대구에서 출발한 '대성연탄'을 모태로 하고 있다. 물론 이 외에도 끈기와 혁신으로 숱한 위기를 극복하고 대구는 물론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이 많다.
196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주요 산업단지로 서울 구로공단과 부산 사상공단, 대구 제3공단을 들 수 있다. 이중 대구의 제3공단은 제1공단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1공단의 확장지구로 조성되다가 1967년에 대구 제3공단으로 변경되어 1968년에 준공되었다. 이 같은 내용은 1966년과 1967년 건설부에서 공고한 관보에 나타나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구의 공업지구인 제3공단은 실제 대구 제1공단의 연속·확장이었던 것이다. 대구 제1공단에는 1960년대 초 제일모직, 대성연탄, 대한방직, 화랑고무 등이 있었다. 또 평화산업, 조일알미늄, 삼호방직, 내외방직 등 많은 공장이 밀집돼 있었다. 3공단의 모태인 제1공단은 대구와 한국의 발전을 이끈 산업 근대화의 요람으로서 국가와 지역 경제발전의 견인차가 되어 온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대구는 전국 최대 섬유도매시장인 '서문시장'을 중심으로 대구의 상업도 빠르게 발전하였다. 경상감영의 서문 바깥에 있다가 1922년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한 서문시장은 지방 최대 향시로 번성하였다. 조선시대 서문시장은 평양시장, 강경시장과 함께 전국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한때 서문시장의 섬유 도매 거래량은 전국 거래량의 70%를 차지할 정도였다.

◆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추적 역할
1967년 국내 최초의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이 창립되면서 금융 분야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첫 지방은행 탄생을 축하하는 뜻에서 대구은행 제1호 예금통장을 개설하였다. 1970년대는 대구를 중심으로 영남내륙공업지역(嶺南內陸工業地域)이 형성되었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대구는 자동차 부품 등 기계산업이 발전하게 되었고 공업단지와 같은 대규모 산업인프라가 계속 구축되었다.제3공업단지가 1968년에 조성되었고 1975년 검단공단, 1977년 서대구공단이 조성되었다.1980년대에는 대구염색산업단지와 성서산업단지 등이 조성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주택건설업체와 유통업체가 성장하면서 지역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다.
1981년에 조성된 '대구염색산업단지'는 섬유패션도시 대구의 브랜드 제고를 선도하는 특화산업단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염색산업단지는 흔히 염색공단이라 불리고 있으며 약 12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오늘날 대구의 섬유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중요 역할의 비중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섬유산업의 중심지로서 신산업과 접목된 첨단형 섬유테크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안경테 제조공장도 대구에서 탄생했다. 바로 1946년에 설립된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다. 대구는 국내 안경테 생산량과 수출액의 각각 70% 이상을 차지해 오면서 한국 최대이자 세계 3대 안경 생산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한국 안경산업의 시발점으로서 '대구의 안경 역사'는 곧 한국 안경의 역사로 상징적 역할을 해온 것이다.
이처럼 대구의 산업화 과정은 제반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가 있었지만 양적 성장에 가려져 여러가지 애로사항도 많았다. 1970년대의 석유파동,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산업 구조화,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화 등과 같은 시련을 겪었다. 여러 난제를 극복해 가면서도 대한민국 산업화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대구는 산업 근대화를 통한 경제적 구국의 선도도시로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잘 보유한 도시다.

오동욱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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