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남춘모 작가의 개인전 '프롬 더 라인스(From the lines)'는 그가 평생 탐구한 선(線)을 매개로 감각의 가능성을 확장해온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유년 시절 고향인 경북 영양에서 경험한 산비탈과 밭고랑, 바람에 반짝이던 멀칭 비닐(작물용 덮개 비닐) 등의 잔상과 같은 시각적 기억을 토대로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가 산비탈의 돌을 직접 골라내며 이랑을 만들던 환경에서 자랐다"며 "비바람 몰아치는 황무지에서 묵묵하게 일하던 아버지의 모습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던 암흑 같던 때에도 작업을 해온 작가로서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봄 날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쯤, 농부들은 쟁기질로 흙을 뒤엎는다. 깊숙한 어둠 속 흙이 햇빛을 받도록 드러내는 것을 보며 작가는 '창조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하는 것'임을 느꼈다. 봄의 햇빛, 즉 새로움의 시작을 맞이하는 농부의 자세는 그의 작가적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농부의 마음으로, 캔버스를 땅 삼아 묵묵하게 고랑을 갈고 새로운 가능성을 심는다. 그 고랑은 붓질로, 부조회화로, 설치로 변주하며 공간과 시간, 기억이 교차하는 작가만의 회화적 세계를 이룬다.



그의 작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지만 '있는 것을 새롭게 한다'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신작 '프롬 더 라인스(From the lines)'을 처음 선보이면서도 "특별할 것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의 말을 빌려 '작업실에 항상 널부러진 재료'인 한지에 '먹 스며들듯' 편안하게 작업했다는 것.
한지를 콜라주한 이번 신작은 평면 회화의 밀도와 물질감을 섬세하게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한지의 단차와 결이 만든 빛의 리듬은 전통 건축의 채광을 닮아 색다른 감각을 느끼게 한다.
그의 회화에서 격자 문양은 빼놓을 수 없다. 신작 역시 한지 조각을 격자 문양으로 은은하게 겹쳤다. 리안갤러리 관계자는 "이 격자는 우물 정(井) 자와 해시태그(#)의 이중적 이미지로 해석된다는 점이 흥미로운데, 공동체 생활의 중심이자 생명의 기원인 우물과 현대 사회에서의 관계성을 시각화하는 기호라는,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신작 외에도 드로잉 시리즈를 비롯해 대표 조형 회화인 '빔(Beam)',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보이드(Void)', 땅을 캐스팅한 '프롬 디 어스(From the earth)' 등 작가의 주요 궤적을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갖고 늘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작가의 태도라고 봅니다. 이 작업이 완결된 형태가 아니기에, 앞으로 10년 뒤 어떻게 나아가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전시는 10월 15일까지. 일, 월요일 휴관. 02-730-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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