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의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이 진행된 톈안먼 망루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손을 잡고 '핵보유국 북한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종언을 의미하며, 국제 비확산 체제를 흔드는 중대사안이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핵보유국 모델'로 우뚝 서려는 김정은의 행보는 끝내 성공할 것인가. 아울러 북한과 중국, 러시아라는 세계 최강의 핵위협에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은 이제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을 원하는 여론이 고조되면 어찌될 것인가. 바야흐로 '한반도 핵균형'이 절박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가공할 핵무기, 공포의 균형이 가져온 '역설적 평화'와 NPT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미국이 1945년 8월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의 위력을 확인한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갖고 싶어했다. 핵무기가 있으면 어느나라도 파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로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다. 핵무기는 인류에 역설적인 평화를 선사했다. 20세기 전반 세계대전 등으로 1억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반면 핵시대가 도래한 20세기 후반에는 전사자가 200만명에 불과(?)했다는 통계수치도 있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와 갖고 있지 않는 나라의 전략적 위상은 확연히 다르다. 세계최초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미국은 그래서 철저하게 다른 나라들의 핵개발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소련이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핵독점은 깨진다. 이도 잠시 뿐 영국이 1952년 미국의 반대 속에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강대국 사이에 핵개발 경쟁이 일었다. 프랑스(1960년)에 이어 비서방권에서는 중국이 1964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의 핵개발은 핵확산 역사에서 분수령이 된다. 5대 핵보유국들은 자신들만의 과점체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1970년 발효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이다.
NPT는 회원국들을 1967년 기준 5대 핵보유국과 나머지 비핵보유국으로 분리해 각각의 의무를 규정했다. 그 내용은 매우 불공평했다. 핵보유국은 비보유국에 핵무기와 그 부품 및 제조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의무만 진 반면에 비보유국들은 핵보유국으로부터 핵무기나 그 제조기술을 이전받지 못할 뿐 아니라(2조), 자체적인 핵무기 개발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위반하면 강력한 제재를 받도록 했다.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은 어떻게 미국의 '전략적 묵인'을 받았나
그런데 이스라엘과 인도, 파키스탄은 현재 국제사회에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식되고 있다. 핵보유국이 되는 것은 단순히 핵무장의 기술적 완성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중요한 변수가 있어야 하는데, 세계 최강 미국으로부터 '용인'을 받아야 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행위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데, 이의를 제기해봐야 별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중동에서 미국 이익을 지키기 위한 사활적 존재인 이스라엘의 경우 그 특수성이 인정된 '적극적 묵인'의 사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아직도 핵보유는 물론이고 핵독트린도 선언하지 않는 이른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는(NCND)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인도는 남아시아 지역 강대국으로서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전략적 가치 속에 미국의 용인을 이끌어냈다. 파키스탄은 1979년 구소련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가치가 빛을 발휘해 미국의 승인을 받아낸 경우에 해당된다. 결국 미국에게 특별한 존재이거나 세계전략상 확실한 전략적 가치가 있을 경우 핵무기 보유가 용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했었다. 하지만 1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1992년 NPT 탈퇴를 선언했다. 처음부터 NPT에 가입하지 않은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와 다른 점이다. 지난 30년간 세계 최강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북한은 끝내 핵무력 완성을 사실상 달성했다.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핵보유'를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이후 6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했다. 2013년 2월 12일 핵무기 사용법을 제정했고,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기 선제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핵보유국법을 채택했다. 2023년에는 핵무력 고도화 정책을 헌법에 명시한 뒤 핵무력 강화를 국가가 추구할 기본방향으로 규정했다. 미국은 북한이 결코 핵보유국 지위를 얻을 수 없다면서 비핵화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사실상 핵보유국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바로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용인'을 활용하려는 것이다.
◆中.러시아 '전략적 묵인' 통해 핵보유국 되려는 北..트럼프의 대응은
만일 북한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롸 러시아의 손을 잡고 '사실상 핵보유국'이 될 경우 이는 핵비확산 역사에서 새로운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노이 노딜'을 통해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확보하지 못할 것임을 확인한 김정은은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과거 미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추구했던 중국은 미국과의 패권경쟁 이후 북한의 핵개발을 문제삼기 보다는 북한과의 연대 강화에 주력했다. 그 결과 유엔 안보리 등에서 대북 제재 등에 반대하며 북한 감싸기를 거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한과 '혈맹'이 된 러시아는 더 노골적으로 북한의 핵무력을 감싸고 있다.
세계가 주목한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장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김정은을 옆에두고 북한의 비핵화를 논의하지 않고도 북중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김정은의 이번 행보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은은 중국 방문 직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20형을 점검하며 북한의 핵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국제사회를 향해 "이제 우리를 핵보유국으로 간주해달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행세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은 공식적으로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뒷배인 북한의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면 '위험국가'들이 너도 나도 중국과 손을 잡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트럼프 변수'가 개입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 첫날부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부르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를 과시했다.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하자는 북한의 제안을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응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요동칠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며, 한미 동맹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욱 부각된다.
◆ "서울을 지키려 뉴욕을 희생시킬 수 있느냐"...'핵균형 대응' 서둘러야
일찍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미국이 프랑스를 위해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드골은 "어느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다른나라와 운명을 함께해 주지는 않는다"는 믿음 속에 결국 자체 핵무장의 길을 선택했다.
톈안먼 망루의 충격이 한국을 흔들고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핵위협을 마주하게 된 한국인의 생존을 담보할 전략적 대응이 절실해졌다. 무엇보다도 한반도내 핵균형이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에 맞는 '맞춤형 핵억제' 방안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의 강화(또는 핵공유)가 한국인들이 확고하게 믿을 수 있는 수준으로 격상되든, 미군의 전술핵무기가 재배치되든 한국인의 생존과 안전을 담보할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한국내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맞서 자체 핵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갈수록 힘을 받는 흐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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