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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대전환, 경북 '들녘특구'] 농업 경쟁력 확보로 부자 농촌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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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단위 규모화로 농업소득 2배.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들녘단위 규모화로 농업소득 2배.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농업의 위기라는 말은 하루이틀의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인류 생존의 근간이었고 가장 많은 관심과 투자가 이뤄져 왔던 산업임에도 불구, 늘 위기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그만큼 농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뜻으로 최근에는 그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농업의 사회·경제적 비중이 줄어드는데다 농촌인구는 감소 및 고령화되고 있으며 경영비 상승과 자연재해 증가 등 농업의 경쟁력 위협 요인들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탓이다.

이제 농업에 대한 관점과 비전을 달리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지난 2023년부터 '들녘특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들녘 단위 규모화와 이모작 기계화, 6차산업 고도화 등을 통해 농업 경쟁력 확보 및 농가 소득 증대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이에 본지는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전략산업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은 절대 간과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 농업의 신 모델, 경북 들녘특구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농업대전환 촉진에 기여하고 농민과 우리 농촌 현실 또한 보다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한다.

▶글 싣는 순서

1. 농업 경쟁력 확보로 부자 농촌 꿈꾸다 2. 대행형 협업 모델 '경주 식량작물 특구' 3. 산업형 기업 모델 '구미 밀밸리 특구' 4. 창업형 벤처 모델 '포항 식량작물 특구' 5. 주주형 상생 모델 '울진 경축순환 특구'

이모작 기계화로 식량안보 강화.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 농업대전환, 왜 필요한가

2022년 기준 농가의 연소득은 4천615만3천원으로 도시근로자 연소득 7천811만4천원의 59.1% 수준이다. 지난 30여년 간 도시근로자의 소득이 7배 늘어날 때 농가 소득은 4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쌀 소비도 갈수록 줄어 2023년 기준 국민 1명당 연간 쌀 소비량(56.4kg)은 1990년(119.6kg)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에도 생산량은 유지 또는 증가해 공급 과잉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쌀값 하락도 뒤따르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농촌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농촌 인구의 60% 이상이 65세 이상으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고령의 농민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적응하기 쉽지 않고, 소규모 농지이다 보니 기계화나 규모화 실현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는 농업의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 성장동력 상실 등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농업의 지속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도 심해져 농촌 현실을 어둡게 한다. 폭염과 가뭄이 점점 빈번해지고 봄철 저온과 우박, 여름철 국지적인 집중 호우 등으로 농작물의 품질 저하와 수확량 감소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따른 병해충 발생 증가, 발생 패턴 변화도 농업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농업의 역량 강화, 그리고 기존 농업의 틀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농업대전환이다.

6차산업 고도화로 농촌공간 활력.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이모작 기계화로 식량안보 강화.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 농업 경쟁력 확보의 필수 조건, 영농의 규모화

우리나라와 농업 규모가 비슷한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농업 강국이다. 네덜란드의 농가 소득은 8만 달러로 도시근로자보다 높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농가 소득(3만7천 달러) 보다 2배 이상 많다. 그 비결은 과학 영농과 규모화다.

네덜란드의 농가당 농지 면적은 33.8ha로 우리나라(1.6ha)의 20배에 달한다. 1950년대 우리나라 농가당 농지 면적은 0.9ha 수준으로 지난 70여년 간 0.7ha 증가하는데 그친 반면 네덜란드는 농가당 농지 규모가 10배 이상으로 늘어나 규모화를 이뤘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의 수적 차이도 있지만 농지에 대한 인식 차이도 크다. 우리나라는 농지를 농업 경영의 한 요소가 아닌 재산적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 규모화를 이루는데 가장 큰 제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지의 규모화는 농업의 경쟁력 강화에 필수 조건이다. 대규모 농지가 있어야 기계화가 가능하고 이모작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농지 소유주 대부분이 고령 농가가 많고 인력에 의존한 소규모 농업 구조라 대규모 농지 확보가 쉽지 않다. 농지의 가격도 높아 농지 구입에 어려움이 많고 농민 본인 사후에도 자식에게 승계해 농지를 놀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 '들녘특구'로 농지 규모화·과학 영농 이룬다

농지의 효율적 규모화를 위해 경북도의 들녘특구는 '주주형 공동 영농'이란 새로운 개념의 영농방식을 도입했다. 개별 농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농지와 노동, 자본 등의 생산요소들을 들녘 단위로 집적화해 100ha 이상 규모화했다. 또 공동체(법인)를 구성해 기계화를 통한 공동 영농으로 생산성을 높였다. 개별 농지의 소유권은 지주에게 있지만 농지의 경영권은 완전히 공동체에 일임하고 농가는 (준)조합원으로 참여해 지주가 주주가 되는 방식이다.

작목의 선택, 작부체계의 결정, 생산물의 수매와 유통 방안 등은 공동체가 결정하고 여기서 발생된 소득은 참여 농가의 유형에 따라 배당금 형식으로 분배한다. 농사 짓기가 어려운 고령의 농가는 농지를 완전히 공동체에 위탁하고 소득은 위탁한 농지의 면적에 따라 배당을 받는다.

공동 영농에 함께 참여한 농가라면 생산물의 수익에 따라 소득을 배당받는다. 배당금은 일정한 금액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수익의 많고 적음에 따라 증감되기 때문에 참여 농가의 공동체 참여 의식이 높아지고 농가소득 증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은 여성 농업인과 청년 농업인이 함께 참여하고 경영 방식도 기업형으로 전환한다. 단순 생산 위주의 경영 방식에서 탈피해 참여 구성원의 능력과 역할에 따라 분업화를 통해 전문화한다. 이에 따라 부가가치가 높은 작목의 도입과 이모작 전환은 물론 기계화 확대를 통한 공동 영농이 효율적으로 바뀌게 된다.

조영숙 경북농업기술원 원장. 이현주 기자
6차산업 고도화로 농촌공간 활력. 경북농업기술원 제공

◆ 구미, 경주, 포항, 울진에 들녘특구 혁신 모델

경북도는 2023년부터 현재까지 경주, 구미, 포항, 울진 등 4곳에 들녘특구 혁신 모델을 조성했다. 경주는 '식량작물 특구', 구미는 '밀밸리 특구', , 포항은 '식량작물 특구', 울진은 '경축순환 특구'로 진행되고 있다. 향후에는 경북 22개 시군 전체로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경주 식량작물 특구는 전문 청년 농업인들과 협업을 통한 농촌 체험·관광 원스톱 시스템의 대행형 협업 모델이다. 구미 밀밸리 특구는 경북 최초로 우리밀 전문 제분시스템을 도입한 우리밀 가공·유통 산업형 기업 모델이다. 포항 식량작물 특구는 체험 전용 딸기 양액재배 시스템을 도입해 초보 청년 농업인들의 창업형 벤처 모델을 구축했다. 울진 경축순환 특구는 조사료 순환농업을 접목해 청년과 농촌문화를 융복합한 주주형 상생 모델이다.

들녘특구 공동체의 지난 한해 농업 생산액은 같은 지역 같은 업종에 비해 1.3~2.5배 증가했다. 참여한 농가의 소득은 벼농사만 지었을 때 보다 1.5~1.9배, 콩과 양파 이모작에서는 최대 5.8배까지 증가했다. 농지를 위탁한 고령 농민은 기존 임대료보다 2~2.5배의 배당금을 받아 안정적인 소득을 올렸다.

들녘특구는 농업 생산 소득 증대에만 목표를 두지 않는다. 생산물을 활용한 가공·유통이나 체험·관광 등의 6차산업 도입으로 농촌 공간을 혁신하는 모델로 확장할 예정이다. 이런 차원에서 특구별 특화마을도 조성했다. 경주 '豆(두)근豆근 콩마을', 구미 '지음밀愛(애) 빵마을', 포항 '청창농 공休(휴)마을', 울진 '저탄소 牛(우)리마을' 등이 그것이다. 특화마을은 공동체의 추가 소득도 높이고 농촌 공간의 활력화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조영숙 경북농업기술원 원장. 이현주 기자

■〈인터뷰〉 조영숙 경북농업기술원 원장

조영숙 경북농업기술원 원장은 "경북도의 농업대전환은 지난 2022년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우리 농민은 땅도 가지고 있는데 왜 도시근로자보다 잘 살지 못 하는가'란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부자 농민, 잘 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한 취지로 농업대전환을 기획했고, 그 핵심사업이 들녘특구라는 것이다.

조 원장은 "특녘특구는 농업의 규모화, 기계화, 고도화(6차산업 융복합), 배당금이 핵심 개념"이라며 "지역별 특색과 장점을 활용한 특화전략으로 다함께 잘 사는 농촌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들녘특구 모델의 성과가 들불처럼 번져 청년이 돌아오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나며 노년이 행복한 농촌, 누구나 살고 싶은 농촌이 됐으면 좋겠다"며 "경북을 넘어 대한민국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제2의 새마을운동으로 자리잡길 기대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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