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정책의 초점은 분명하다. '노동자 보호'와 '노동환경 개선'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법안과 지원책이 집중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산재보상 확대, 노조 활동 강화 등 굵직한 어젠다가 줄줄이 쏟아졌다.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복원하고 법정공휴일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 경제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고 있는 자영업자는 그림자 취급을 받고 있다. 마치 정부의 사전에는 '노동자'만 있고, '자영업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의 특수한 구조를 보여 주는 영역이다. 전체 취업자의 약 20%가량이 자영업 종사자다. OECD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중이며, 그만큼 민생경제와 직결돼 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은 갈수록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92만5천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했다. 2년 연속 90만 명을 넘은 셈이다. 올해 6월에도 한 달 폐업 사업자가 6만7천 명에 달했다. 내수 침체가 누적된 탓에 자영업 위기는 단순한 어려움이 아니라 구조적 붕괴의 신호로까지 읽힌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응은 미약하다. 가끔 긴급대출이나 세금 납부 유예 같은 단기 처방이 나오지만, 장기적 해법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정부 담론의 편향성이다.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면서, 그 반대편에 있는 고용주는 '갑질 세력'으로 단순화하는 시각이 만연하다. 하지만 현실의 자영업자는 대기업 회장도, 건물주도 아니다. 하루 12시간씩 가게를 지키며 은행 빚을 갚아 나가는 평범한 생활인이다. 이들을 '노동자와 대립하는 사용자'로만 본다면 정책은 늘 왜곡될 수밖에 없다.
'5인 이상 사업장'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근로기준법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만 생각한 이 접근은 자영업자에게는 '폐업 압박'으로 작용한다. 내수 부진과 인건비 상승으로 이미 한계에 내몰린 상황에서 추가 규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실제로는 일자리 자체를 줄이고, 자영업자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 모두를 곤란에 빠뜨리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자영업을 단순히 '노동자 고용주'로만 보지 않는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소상공인을 위한 세제 지원, 지역 상권 보호 정책, 창업-폐업-재창업을 이어 주는 순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자영업자를 정책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 매년 수십만 명이 폐업으로 내몰리고, 신용불량자가 양산된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 '민생'을 입에 올리려면 노동자만큼이나 자영업자를 주목해야 한다. 경제 구조상 자영업자는 '을 중의 을'이다. 이들을 외면한 채 노동만 강조하는 정책은 절반짜리 사회 정의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노동 존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영업 존중 사회'다. 자영업자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애매한 존재로 치부하지 말고, 독립적인 정책 대상군으로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정권의 성공은 숫자로 드러난다. 성장률, 고용률, 소득지표 모두 민생의 온도를 반영한다. 자영업자가 무너지면 고용도, 소비도, 세수도 함께 무너진다.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말하는 '국민의 정부'라면,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절규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재명 정부 사전에 '자영업자'도 넣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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