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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김도훈] 가짜 뉴스는 무엇을 먹고 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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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여론특집부 차장
김도훈 여론특집부 차장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가난과 배고픔에 고통받던 프랑스 백성의 '빵을 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말이다. 이젠 다들 아는 사실이지만, '빵 대신 케이크'라는 이 유명한 말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한 말이 아니다. 요즘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향해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짜 뉴스'의 대표적 사례다.

이 표현이 앙투아네트에게 주홍 글씨처럼 따라붙는 건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혁명 전야의 프랑스는 불평등과 빈곤이 극심했고, 민중의 분노를 상징할 적절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는 귀족적 허영의 대명사로 지목됐고, '빵 대신 케이크'라는 허구의 인용은 대중 선동에 최적화된 도구가 됐다. 결국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앙투아네트의 대표 어록으로 굳어졌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로 종종 언급되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오역'의 예로 종종 등장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원문은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한다.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죽음)이 벌어지는 게 당연하지" 정도의 번역이 과하지 않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 버나드 쇼는 묘지를 남기지 않았다. 사후 화장된 그의 유해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작품을 썼던 런던 교외의 '쇼스 코너' 정원 곳곳에 뿌려졌고, 묘비는 아예 세워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래전 여러 글에 인용돼 등장하긴 했지만, 2000년대 중반 한 이동통신사가 만들어낸 묘비 사진과 과장된 말은 이제 정설처럼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흥미로운 건 이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우물쭈물'의 매력을 포기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버나드 쇼 같은 지식인도 인생 어영부영 살다 보니 어느새 이 꼴이 났으니 사는 동안 좀 분발해 보라고 충고하는 메시지를 이 문장에서 읽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정보가 넘친다고 해서 진실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빠르게 퍼지고, '믿고 싶은 이야기'가 곧 '믿어야 할 진실'이 되어 버리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친다.

가짜 뉴스 하면 빠지지 않고 떠오르는 집단이 있다. 극단(極端) 성향의 정치 유튜버들이다. 이들은 사실 확인도 안 된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내며 자신들의 생각을 확산시킨다. 여기에서 '팩트'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가 옳다'는 자기 확신을 심어 주는 일이다. 이런 채널은 더 이상 단순한 의견의 차이를 넘어선다.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라 '확신을 팔고 믿음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성향에 맞춘 영상만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어느 순간부터 사용자는 '다른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더욱 무서운 건, 일부 정치인은 이들과 거리를 두기는커녕 거짓 선동에 편승하며 '공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종종 사람들은 가짜 뉴스 문제를 기술적 문제로 본다. '플랫폼이 나쁘다'거나 '알고리즘이 편향됐다'는 식이다. 물론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가짜 뉴스를 키우는 진짜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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