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도지사와의 인터뷰 일정이 잡힌 뒤, 서점으로 달려가 김 지사가 쓴 책 두 권을 구입했다. 『분노를 넘어, 김동연』은 지사의 성장기, 그리고 공무원이 된 후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부총리를 거치며 경제 전문가가 된 이야기,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분노로 정치인이 된 과정 등을 담고 있었다.
김동연 지사를 오늘날의 정치인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성장기부터 정치 입문까지 그가 목도했던 구태정치에 대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였다. 지사의 또 다른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안돼 공화국'이라 불리며 분열과 갈등의 정치가 심화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고장 난 곳들을 그만의 정치철학으로 진단하고, 이를 과감한 정책 수술로 집도하고자 하는 처방전처럼 느껴졌다.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김 지사는 사진 촬영 중이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이쪽으로 오시죠."라며 집무실 한켠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방문 기념 사진부터 찍자고 했다. 책 두 권을 꺼내 놓고 "여전히 김 지사의 『분노』와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유효하냐"라고 묻자, "그 책들 제가 한 권에 2년 정도 걸려 직접 쓴 겁니다. 제 손으로 썼으니 유효하지요"라고 말했다. 김 지사의 인상은 대한민국의 금기를 깨기 위해 분노에 달궈진 이미지라기보다는 선비에 가까웠다. 정책과 정치 철학을 말할 때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약속된 질문지대로 묻자 "되돌이표로 돌아가는 것 같군요."라고 하며, 고정 관념적인 규칙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날것 그대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김 지사는 인터뷰 도중 집무실 벽면 한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일어섰다. "이건 장애인 화백이 그린 작품입니다. 잘 그렸죠? 제 책상 옆에는 발달장애 아동이 그린 그림도 있어요. 이 작가들의 그림을 최초로 산 사람이 저라고 하더군요. 그 후로 그림이 많이 팔린다고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장애인 예술 활동과 복지 정책에도 관심이 깊어 보였다.
경기도에서 202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예술인 기회소득'을, 창작자를 위한 보편적 복지로 확대할 생각이 없는지 묻자 김 지사는 "제가 경기도지사라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로 복지 정책을 한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런 기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득의 기회도 중요하지만, 창작의 기회는 더 중요합니다. 앞으로 청년 예술가들의 창작 기회를 넓힐 수 있는 정책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인터뷰 전날 안양예술고등학교를 방문해 받은 백은별 작가가 쓴 『윤슬의 바다』를 펼쳐 보였다. "재능 있는 청소년들과 청년 예술가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창작 기회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인터뷰 테이블은 6-7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회의용 탁자였다. 중앙에 앉아 김 지사를 마주보며 인터뷰를 진행하려는데 비서실에서 차를 내왔다. 한 모금 마신뒤, 첫 질문을 했다.
▶지사님이 쓴 책 중 하나는 정책 이야기고, 하나는 인생 이야기입니다. 인생 이야기가 담긴 『분노를 넘어, 김동연』을 읽고 나니 정책 얘기가 담긴 『대한민국 금기 깨기』가 더 잘 이해되더군요. 기득권을 깨고자 하는, 그러니까 현재의 지사님을 만든 성장기의 분노를 여전히 간직하고 계신 것 같더군요.
"그럼요. 그 분노가 저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아주 생산적인 분노죠.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보상 체계와 구조적인 문제들을 진단하고, 끊어진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하면서 경제 틀과 교육 시스템까지 바꾸는 게 제 꿈입니다."
▶그 분노가 대한민국의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제36대 경기도지사로 취임하신 후 이제껏 3년 정도 달려오셨어요, 지사님이 꿈꿨던 경기도가 만들어져가고 있으신가요.
"바쁘게 살았지만 지난 3년 동안 보람이 있었고, 많은 변화를 갖고 왔죠. 제가 중앙부처 경제부총리를 하면서는 그간 생각해 온 거대 담론을 국정 운영에 대한 방향성으로 잡고, 큰 정책을 만드는 일을 통해 사회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경기도지사가 된 후로는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1,420만 도민들의 삶을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중앙부처에 있을 적에는 거시적인 담론과 국가 비전을 담은 큰 정책을 구상할 수 있었다면, 지사 일을 하면서는 도민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미시적인 사업들을 하고 있는 거죠.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해 볼 수 있다니, 저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취임 이후 경기도의 성장 통로를 열었다면, 남은 임기까지 매듭짓고 싶으신 정책은 뭔가요.
"앞으로 임기가 한 10개월 정도 남았지만, 충분히 경기도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윤석열 정부 시기 역주행했던 정책들을 바로잡기 위해 경기도가 외롭게 고군분투해왔거든요. 이제는 경기도가 세계에서나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했던 일들을 더 가열차게 이어갈 겁니다. 다행히 이러한 노력이 새로운 정부의 국정과제에 많이 반영되고 있어요. 지난 3년간은 동토 속에서 외롭게 싸워왔다면, 앞으론 새 정부의 지원 아래 사업들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해야죠. 또 저희 슬로건 중 하나인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처럼, 경기도의 성공을 통해 대한민국의 변화를 끌어내고 싶어요."
▶'달달버스'를 타고 경기도 곳곳을 다니시던데, 운행이 잘되고 있나요?
"잘 됩니다.(웃음) 경기도가 31개 시군인데 지금까지 평택, 양주, 남양주, 수원, 의정부, 안양 여섯 군데를 갔어요. '달달'은 '달려간 곳마다 달라진다'라는 뜻이거든요. 도민들을 대상으로 한 '경청, 소통, 해결'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운영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도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시고 저도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고 바로바로 해결하려고 애를 씁니다. 양주에서는 발달장애인 분들과 그 부모님들을 모시고 대화를 나눴던 게 기억에 남고요. 그저께 간 안양에서는 달달버스가 달리는 와중에 건설 현장 외벽 붕괴 사고가 나서 바로 현장에 쫓아갔어요. 주민 대표분들과 달달버스를 함께 타고 다니기도 했고, 가는 곳마다 색다른 추억을 많이 쌓았습니다."
▶얼마 전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만났는데,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을 연 150만 원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기회소득 정책이 경기도 주민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인 예술인 보장 정책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요.
"제가 경기도민 외의 대상자에게 기회소득을 확대하는 것은 선거법상 어려움이 있지만, 이 정책이 보편적인 예술인 보장 정책으로 확장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기회소득은 사회적으로 가치를 창출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어요.
예술인 외에도 장애인 등 총 여섯 그룹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소득 자체도 중요하지만, 특히 예술가들은 경기도가 자신들을 예술가로 인정해 주는 것에 큰 자존감을 느끼신다고들 해요. 단순한 생계 지원을 넘어 신작 초연 지원, 창작 준비 활동비, 기초 예술 창작 지원까지 예술인들이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가들에게는 전시 기회를, 공연 예술가들에게는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요. 얼마 전 안양예술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미술과 학생들에게는 전시 기회를, 음악이나 연극 전공 학생들에게는 외부 행사 시 공연 기회와 소정의 사례비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쪽 벽면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이게 장애인 기회소득 대상 작가의 그림인데요. 50대 지적장애 여성 화백이 그린 <맛사지사>인데, 자신을 돌봐준 복지사의 발을 씻겨주고 싶다는 고마운 마음이 담겨있어요. 설명을 듣자마자 저 역시 도민을 섬기겠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매했습니다.(웃음)

▶안양예술고등학교 청소년 예술가들을 만나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하셨는데, 경기도를 기반으로 하는 청년 예술가들을 위한 정책구상도 있겠죠..
"청년 예술인들에게는 자립 준비금, 창작공간 임차료, 네트워킹 기회를 마련하고, 공연장 상주 단체 지원과 '거리로 나온 예술' 사업도 병행하면서 무대 밖에서도 창작할 기회를 넓히려고 해요. 꼭 예술가뿐만 아니라 청년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는 철학은 이런 겁니다. 청년들이 부모, 교사, 선배, 사회 시스템, 보상 체계 등 외부의 영향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하고 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 또한 그런 경험을 했고요.
예를 들면 명문대학에 가서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 취업하거나 의사가 되는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을 좇기보다는,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도전하는 '터'를 만들어주는 것이 청년 정책의 근본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공공의 역할입니다. 청년들이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죠. 안양예고 학생들은 대단히 활발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더군요. 특히 문예창작과 백은별 학생은 이미 30쇄 이상 찍은 유명 작가인데, 이처럼 예술을 하는 학생들은 도전적인 시도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도민에게 특화된 문화 정책은 어떻게 그려나가실 생각인가요?
"'기회의 확대'가 경기도 문화정책의 기본 방향입니다. 예술인, 도민, 미래 세대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일단 취약계층에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 중입니다. 9월 15일부터는 영화, 공연 등에 할인쿠폰을 지원하는 경기컬처패스 서비스를 시작해서 더 많은 도민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겁니다. 매월 10만 명의 사회적 가치 창출 기여자에게 쿠폰을 발급하고, 만 원으로 경기아트센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공연관람권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어요. 도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 프로젝트도 확대해서, 궁극적으로는 경기도민 모두가 문화인 또는 체육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청계천 무허가 판잣집에서 자란 김 지사의 성장기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는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소년 가장이 됐다. 덕수상고를 다니며 은행원으로 취업해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야간대학을 다니며 주경야독한 끝에 25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동시에 합격하며 '고졸 신화'를 써냈다. 이후 미시간 대학에서 정책학 석박사 과정을 장학금으로 마쳤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시작해 경제부총리를 거치는 34년의 공직 생활 동안, 김 지사의 '금기 깨기'와 '분노'는 대한민국의 경제 지형을 바꿀 만한 굵직한 정책들로 이어졌다. 이후 제20대 대선에서는 거대 양당의 기득권 후보들과는 달리, 개헌과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무소속으로 출마해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그리고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경기도지사에 출마,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를 불과 8,913표 차이로 따돌리는 박빙 승부 끝에 1,400만 명이 살아가는 경기도의 수장으로 당선됐다.

▶말을 하면서 손동작은 크게 느껴졌고, 말투는 조용했지만 억양은 단단한 논리형에 가까워 매섭게 들렸다. 종결어미는 '~고요'를 습관적으로 반복해 쓰기도 했다. 정책과 정치 철학을 말할 때는 눈빛이 살아 있었고, 어투는 강한 정치 철학을 담고 있었다. 공연예술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지사님이 생각하는 공연예술은 어떤 겁니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뜻대로 하세요(As You Like It)』에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남자와 여자 모두는 단지 배우일 뿐"이라는 대사가 나오잖아요. 인생을 살면서 이 말에 정말로 공감하고 있어요. 저는 젊은 시절부터 연극과 영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최근에는 뮤지컬 <메리골드>를 봤는데요. 자살을 꿈꿨던 사람들이 모여서 결국은 희망을 찾아간다는 내용이에요. 공연에 큰 감동을 받아서 청소년들도 이 작품을 많이 볼 수 있도록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른분들은 공연을 사무적으로 보시는 것 같던데... 대사를 암기하실 정도면 공연을 보러다니셨겠군요.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직원들을 선착순으로 모집해서 연극이나 창작 뮤지컬을 많이도 보러 다녔어요. <지하철 1호선>,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인 <빨래>, <라이어> 1, 2, 3편도 다 봤습니다. <라이어 2>는 특히 재밌어서 두세 번 봤었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전하는 생생한 감동과 삶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서 깊은 울림을 줍니다. 어떤 장르보다도 사람을 잘 이어주는 예술이잖아요. 연극의 활성화는 장르의 육성 차원을 넘어서, 지역 공동체의 연대감을 강화하는 중요한 정책 과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연극인, 또 건강한 예술 문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어떤 정책을 구상 중이신가요?
"경기도 예술인을 위한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예술인 기회소득'입니다. 무엇보다 예술인들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심어줬으면 했어요. 제가 보기에 이 제도는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겁니다. 예술가들에게 기회소득뿐만 아니라 더 많은 기회, 더 고른 기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이 바로 기회의 부족이거든요.
예술인 기회소득으로 안정적인 창작 기반을 마련하고, 기회소득 예술인 상설 무대, 기회소득 예술인 페스티벌, '거리로 나온 예술' 등 실질적인 예술 활동 기회를 확장해서, 예술만을 업으로 해서도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 예술인 인권 보호 등을 위한 경기 예술인 권익 보호와 역량 강화 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지사님을 차기 대권주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 간 문화적 격차가 심하고 서울 수도권에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현상을 어떻게 '기회의 균형'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문화야말로 불평등이 없어야 하는 분야지요.
"맞습니다. 저 또한 경기도 31개 시군을 다니며 두 가지 문화적 격차를 느낍니다. 하나는 직접 문화 활동에 참여할 기회이고, 두 번째는 문화 향유권이죠. 특히 경기 북부 지역에서 이러한 격차가 두드러지거든요. 문화 참여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도민들이 직접 문화 활동의 주체가 되게끔 만들어야 해요. 문화 향유권 증진을 위해서는 공연과 전시 등의 작품 활동이 더 많은 도민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정책을 구상해야죠.
지금 경기도가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운영 중인 정책으로는, 소규모 지역 문화예술 활동 공간과 프로그램 지원을 위한 '유휴 공간 문화 재생 사업', '생활문화센터 조성' 등이 있어요. 지역 인재를 육성하는 일 또한 필요한데, 경기상상캠퍼스와 경기창작캠퍼스를 운영하면서, 도내 대학생과 기초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우수 인재를 선발·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입니다.
▶인구소멸지역에는 문화격차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맞습니다. 인구 소멸 위험지역 청년 문화예술가를 발굴 육성해서 지역 예술계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일에도 힘쓰려고 해요. 저뿐만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라면 문화에 대한 견식은 물론 확고한 철학을 지녀야 합니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문화의 힘을 강조하셨듯이, 이제는 하드 파워를 넘어서는 소프트 파워, 즉 문화의 힘이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지 않습니까? 단순히 한류의 유행을 넘어서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청년들과 예술가들이 열정과 끼를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제공해야죠. 요즘 청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힘들어도 나중에 잘될 거야.'가 아니라, 오늘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고요. 그런 오늘을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모든 도민이 문화인이 된다면, 자연스럽게 관객 개발도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수원연극축제 등 경기도의 여러 예술 작업이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술가 중에서도 특히 연극인들에게.
"예술인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작게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자아실현을 하고 계시고, 크게는 그런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귀중한 가치를 창출하고 계십니다. 경기도에는 수원연극축제를 비롯해 안산 국제거리극축제, 과천 공연예술축제 등 각 시군을 대표하는 축제들이 있어요.
이러한 축제들은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드러내고 예술인들에게는 창작 무대를, 도민들에게는 일상에서 공연예술을 즐길 기회를 제공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지역대표 공연 예술제가 더욱 경쟁력을 갖추어서, 도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뒷받침하겠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동연 지사는 평소의 연극·예술·문화 분야 정책 철학을 소신껏 말했고, 모범답안을 보지도 않았다. 마지막 질문으로 김동연 지사의 『대한민국 금기 깨기』는 여전히 유효하냐고 물었다.
"그럼요. 유효할 뿐만 아니라 지금 제가 정치를 하는 핵심 신조입니다. 대한민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이고, 특히 대한민국 국민의 역량은 세계 최고입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금기 때문에 각자의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청년들과 학생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상품처럼 취급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금기를 깬다면 우리는 그 어떤 나라보다 창의적으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았을 때, 금기 깨기는 개개인의 자유를 확장함과 동시에, 우리 공동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노력입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가치가 이념적으로는 상호 모순되어 보일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두 가치를 합쳐서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요.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과거의 성공 경험, 즉 개발 연대나 양적 성장이라는 신화에 갇혀서 금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금기를 깨야만 다시 도약할 수 있고, 저는 우리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담당자가 사인을 보내왔다. 그래도 몇 마디를 더 질문하고 일어서는데, 김동연 지사는 "콩 볶듯이 인터뷰를 하셨는데도 할 말은 다하시네요"라며 웃었다. 표정에서는 책 제목처럼 『분노를 넘어, 김동연』은 보이지 않았고, 정치와 정책 철학의 소신을 말하는 한마디에 그 분노가 담겨 있었다.
인터뷰를 마친고 돌아온 뒤 인터넷으로 김 지사의 최근정보를 검색했다. '달달버스'로 경기도 민생투어를 다니는 김 지사는 여론조사기관 윈지코리아컨설팅에 의뢰한 도민 대상으로 차기 도지사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보였고 범보수 진영에서는 김은혜의원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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