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예체능 계열 학생이 외국 유학을 준비할 때 준비해 놓는 게 있었다. 바로 미술·음악 등 '예술 포트폴리오'였다. 예술 포트폴리오란 명문대에서 학생의 개성이나 창의성 등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가산점이 될 수도 있는 예술 작품이나 연주 영상 모음집을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꽤 많은 외국 유명대가 학생의 미술 작품을 더 이상 받지 않기 시작했다. 미술 작품을 화가로부터 구입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적잖이 적발됐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0대 트렌드로 선정된 '육각형 인간'은 오랫동안 아이비 리그에 자녀를 입학 시키려는 학부모의 최애 인간형이었다. 유학업계에서 육각형 인간이란 GPA(내신)와 SAT(미국식 수능) 점수는 물론 그 외 각종 대회 참가 및 수상과 봉사활동, 심지어 스포츠와 예술까지 만능인 수험생을 말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겉보기엔 완벽한 이런 육각형 수험생의 아이비 리그 합격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원서를 넣는 학생이 죄다 육각형이어서 재미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무렵 조기유학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국외 명문대 합격을 위해 많은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국내에 위치한 국제학교로 진학 시킨다. 국제학교를 다니면 교과과목의 자유로운 선택은 물론 예체능까지 두루 경험해볼 수 있어서지만 그것도 한때다. 학생은 곧 더 강력한 육각형을 만들기 위한 입시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전과목 과외를 받는 학생도 있었고 만점에 가까운 성적표에도 성에 안 차 예술 포트폴리오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생겨났다. 결국 예술 포트폴리오는 쓸모없는 스펙이 돼 버렸다.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서 목표 대학의 철학과 교육 의도를 입시 과정에서 알아차려야 한다. 입시 에세이의 주제와 각종 설문, 추가 제출 가능 서류 지침을 보면서도 어떤 학교가 어떤 학생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느낀 국외 명문대의 인재상은 '시야가 넓고 성품 좋은 똘끼 있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의 학생은 국외 명문대 입학사정관의 안목으로 단번에 간파된다. 심지어 서류만으로도 말이다.
국외 입시에 한해서는 합격을 위해 청소년기를 육각형 스펙 쌓기에 쏟아붓기보다는 송곳 같은 인재로 성장 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똘끼'란 송곳 같은 구석을 의미한다. 모든 과목 100점이 아니라 어떤 분야를 즐겼더니 100점이 나왔다는 성공한 사람의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 이야기를 아직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아이비 리그 입학사정관이다.
이제 원서접수 시즌이 다가온다. 많은 육각형의 원서가 명문대 입학처로 향할 것이다. 그들의 손에 걸러질 수많은 꽉 찬 육각형의 원서를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김나연 HMA유학원 대표

*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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