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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규제에 갇힌 AI 헬스케어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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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태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정우태 경제부 기자

"이렇게 많은 약을 한꺼번에 먹어도 괜찮을까요?"

지난해 인공지능(AI) 관련 세미나에서 한 강연자가 던진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집에 계신 부모님의 서랍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데 정말 괜찮은 것인지 걱정도 커졌다.

강연의 주제는 '디지털 헬스케어'였다. AI·빅데이터 기술을 의료 분야에 적용해 건강을 증진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미래 산업의 한 축이다. 의료 기술이 발전하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관련 산업도 급격한 성장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은 물론 전통의 제약사, 보험사가 앞다퉈 AI 기술을 도입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AI 열풍에 편승해 주가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건강한 삶을 지탱하는 헬스케어 시장의 잠재력이 높을 것으로 보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이 현금 보유량을 늘리면서도 최근 유나이티드헬스 주식을 대거 매수하면서 관련 종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환자의 보험과 병원 방문, 약 처방 등 헬스케어 전반에 필요한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회사다. 월가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헬스케어 산업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구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Health Tech Ecosystem)' 구축 협약 체결식에 직접 참석했다. 빅테크와 의료기관, 보험사, 스타트업 등 60여 개 기업 및 조직이 참여한 행사였다.

애플, 구글, 아마존, 오픈AI 등 AI 혁명을 주도하는 빅테크가 이번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렸다. 흩어진 건강 기록 시스템을 연결해 환자와 의료진이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당뇨, 비만 등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앱을 개발하고 챗봇 기반의 증상 체크 및 진료 예약 서비스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미 의료당국은 이번 프로젝트 출범을 두고 "모든 분야에서 파괴적인 혁신이 있었지만 의료 시스템은 이에 발맞추지 못해 부담이 컸다. 시스템의 패러다임 전환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에 관대한 미국도 헬스케어 분야에서는 속도를 높이지 못하고 있었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도 100만명 규모의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나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헬스케어 고도화에 필수적인 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것. 생성형 AI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어 AI 기반 연구개발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헬스케어는 메디시티를 표방하는 대구의 5대 신산업 중 하나다. 최근 만난 기업 관계자들의 고민도 규제와 맞닿아 있었다. 한 기업인은 과도하게 많은 규제에 "한국은 '규제의 천국'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복잡한 제도로 인한 서비스 출시 지연으로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역 헬스케어 기업들의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관리를 통해 큰 병을 예방하고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진심이 있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는 당연한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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