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황현호 칼럼] 실질적 법치주의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황현호 전 부장판사, 동대구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법치주의는 국가의 행정권과 사법권이 국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행사되는 것을 말한다. 이 법치주의에는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률이기만 하면 내용을 불문하고 법률로 인정하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그 법률이 자유민주주의, 3권 분립, 시장경제, 인권 보장 등과 같은 기본적 가치에 충실한 것만 법률로 인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있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 제정되고 있는 각종 법률은 형식적 의미에서는 법률이지만 실질적 법치주의 요건에는 맞지 않는 법률이 많다. 가령 금년에 제정된 3건의 특별검사법, 제정하려고 하는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은 권력 분립의 원칙을 위배할 우려가 있다.

특별검사는 국회가 행정권(수사권)을 갖는 점에서, 특별재판부는 국회가 사법권을 갖는 점에서 위헌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법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몰아내기 위한 형식적 법률이고 그 내용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가 없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평등성, 보편성의 원칙에 반하는 법률이다.

형식적 법치주의로 가장 악명 높은 법률은 1933년 독일 히틀러 시대 독일의회에서 제정된 포괄적 수권법이다. 의회의 모든 권한을 총통에게 위임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히틀러의 독재를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형식상 법률이지만 포괄적 위임 법률로서 법률의 기본적 요건을 결하였고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는 법률이다. 따라서 형식적 법률이지만 실질적 법치주의에 맞지 않는 법률이다.

나치 시대 독일은 히틀러 혼자 독재를 한 것이 아니다. 의회 의원들은 유대인 등 인종청소법, 방송 신문 등 언론통폐합법, 정신장애인 등 강제격리법 같은 반헌법적 법률을 자발적으로 제정하였고, 재판관들은 권력자의 편에서 법률을 해석하고 판결하였다. 3권이 일치단결하여 히틀러 총통의 독재를 정당화하였다. 칼 슈미트 같은 법률가들은 예외 상황에서 총통은 헌법의 수호자라고 선전했다. 괴벨스 같은 연설가는 방송 신문을 통해 독일 국민들을 선동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나치 독일 시대 독재를 가능하게 했던 수권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한 데 대해서 독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대해서 반성과 사죄를 하였다. 의회에서 제정되는 모든 제정법(Gesetz) 중에서 자유민주적 가치에 위배되지 않는 제정법만 법률(Reght)로 인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시행하게 되었다.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제도가 헌법재판소이다. 국회가 내용상 자유민주적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위헌적인 법률을 제정할 때 위헌 결정을 하여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킴으로써 실질적 법치주의를 담보할 수 있다. 또한 행정권이 기본적 인권 등 헌법상의 가치를 침해하는 행정처분을 할 때 그 처분의 효력을 부인하는 헌법소원을 인정함으로써 행정권을 견제할 수 있다.

권리를 침해당한 자가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심판을 개시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국민의 권리 보호와 헌법 수호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러한 헌법재판소는 모든 나라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독일, 한국 등 일부 국가만 가지고 있으며 미국, 일본은 대법원이 헌법재판 기능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판결에 대하여 위헌 심사를 할 수 있는 기능까지는 없다.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이래 약 40년간 국회의 입법 권능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심사를 통해서, 행정부의 권한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통해서 기본권을 잘 보장해 왔다. 이웃 일본은 사법 선진국이지만 헌법재판소를 가지지 않아 우리나라 헌법재판제도를 부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때부터 헌법재판소가 정치재판소로 변질되어 실질적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기능이 소홀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추천권 및 인사청문 권한이 국회에 있어서 국회 다수당이 정무적 판단으로 재판관을 추천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국회가 재판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안건 상정을 미루거나 다수당의 구미에 맞는 재판관을 추천하여 헌재의 독립성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