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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창-윤창희] 세대 갈등을 넘는 정년 연장, 인공지능이 만드는 역할 재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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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윤창희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될수록 사회적 긴장도 함께 커지고 있다. 고령화와 노동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한편 청년 세대의 일자리를 잠식하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 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번질 때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린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단순히 몇 년 더 일하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축적된 경험과 숙련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며 동시에 세대 간 역할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정년만 연장한다면 갈등은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은 정년 연장 논의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변수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일을 대체하는 기술로 자주 인식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업무의 속도와 방식, 역할의 구성을 바꾸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자료 정리와 분석, 보고서 초안 작성, 회의 내용 요약과 같은 반복적 업무를 AI가 보조하면서 사람은 판단과 조정, 최종 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

이 변화는 특히 정년 연장을 앞둔 세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오랜 시간 현장을 경험하며 쌓아온 직관과 판단력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이다. 여기에 인공지능 활용 능력이 더해질 경우 이들은 단순히 오래 근무하는 인력이 아니라 경험과 기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고급 기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AI를 일의 파트너로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정년 연장 세대에게 요구되는 인공지능 역량은 복잡하지 않다. 업무 맥락에 맞는 질문을 던지고, AI가 제시한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결합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다. 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기회와 환경의 문제다. 실습 중심의 교육과 현장 적용 경험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역량이기도 하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과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동일한 직무와 동일한 자리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근무 기간만 늘리는 방식은 세대 간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대신 경험 기반 자문, 품질 관리, 리스크 점검, 교육과 멘토링 중심으로 역할을 재설계해야 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후배 세대의 업무 효율을 높이고, 조직 전체의 판단 품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은 정년 연장 세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청년 세대의 채용과 성장 경로가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년 연장 세대가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고, 청년 세대가 실행과 혁신을 주도하는 세대 협업형 일자리 모델이 가능해진다. 이는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일을 확장하고 역할을 분화하는 방식이다. 특히 공공부문과 대기업이 이러한 모델을 선도적으로 설계하고 실험할 필요가 있다.

정년 연장자 대상 인공지능 재교육은 복지가 아니라 투자다. 이는 숙련된 인력을 다시 경제 활동의 중심으로 연결하는 선택이며, 단기적 비용이 아닌 중장기적 성장 자산을 만드는 일이다. 산업과 조직을 이해하는 경험과 위기를 거치며 축적된 판단력은 여전히 유효하며, 여기에 인공지능 활용 능력이 결합될 때 정년 연장은 단순한 근속 연장이 아니라 생산성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은 경험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이 더 오래, 더 넓게 활용되도록 돕는 도구다. 반복적 업무를 줄이고 판단과 조정의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숙련 인력은 조직 안에서 새로운 위치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개인을 넘어 노동시장 전체의 효율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준비된 정년 연장은 비용이 아니라 성장의 자원이 될 수 있다.

정년 연장이 이러한 역할 전환과 함께 이뤄질 때, 그것은 단순한 근속 연장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를 재설계하는 계기가 된다. 경험과 기술이 함께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세대 간 일자리 갈등도 완화될 수 있다. 이는 기존의 자리를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을 확장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제 정년 연장은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과 설계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정책 당국과 산업 현장은 정년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를 묻기보다 어떤 능력을 중심으로 일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 답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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