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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채성준]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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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채성준 서경대 교수

해방 직후 한반도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중 어느 체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두고 좌우 진영이 충돌하며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북한은 남한 내 무장 게릴라 등 공산 세력을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정치세력을 포섭하며 사회 혼란을 조성하는 등 갓 태어난 정권을 흔들려는 대남 공작을 노골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국보법)이 서둘러 제정되었다. 1953년 9월에야 제정된 형법보다 5년이나 앞서 마련된 이 법은 말 그대로 국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였다.

사실 북한의 대남 공작은 시대별로 양상이 바뀌며 더욱 정교하게 진화해 왔다. 1950~70년대에는 무장 공비 침투, 요인 암살 기도, 지하조직 구축 등 폭력적 직접 공작이 주류를 이루었다. 1980~90년대 들어서서는 남한 내부의 정치·이념 갈등을 증폭시키고, 학생·노동계 일부와 비밀 접촉을 통해 선전·선동을 유도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해킹, 가상자산 탈취, 금융망 교란 등 정밀 사이버전, 해외 IT 인력의 위장 취업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기술·정보 탈취, SNS·커뮤니티·유튜브를 통한 여론 조작이 공작의 중심축이 됐다. 최근에는 AI 자동 선전물, 해외 서버 기반 계정 세탁 등 새로운 방식이 결합하면서 위협이 더 은밀하고 탐지하기 어려운 형태로 고도화되고 있다. 2021년부터 올해 11월까지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151명이나 된다.

최근 민주당을 포함한 범여권 의원 31명이 국보법 폐지안을 발의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 공작이 현재 진행형임을 감안할 때 왜 하필 지금 국보법을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 시기 국보법이 오남용 논란을 낳았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후 7차례에 걸친 개정을 통해 수사 절차의 투명성 확립, 표현·학문 영역에 대한 제한적 적용, 과잉 처벌 방지 규정 등 민주적 통제 장치가 폭넓게 도입되면서 법의 성격은 크게 변화했다. 인권 침해 및 정치적 활용 여지는 개선되고, 북한 및 친북 세력의 체제 전복 시도를 감시·차단하는 본연의 목적이 명확해졌다.

폐지론 측은 국보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지만 과거 제기되었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이뤄진 만큼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헌법재판소가 1991년 이후 국보법 7조 1항(이적행위 찬양·고무)에 대해 여덟 차례나 합헌 결정을 내린 사실을 고려하면 이번 폐지 논쟁은 법·제도적 필요성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앞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힘을 얻는다.

또한 국보법은 폐지론 쪽의 주장처럼 개인 범죄를 사후적으로 처벌하는 형법이나 합법적 교류를 관리하는 남북교류협력법으로 대체될 수 있는 법이 아니다. 북한이라는 적대적 체제의 '폭력 이전 단계 전복 활동'을 차단해 헌법 질서와 국가 존립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이다. 여타 주요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간첩법과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영국은 공식기밀법과 국가안보법, 독일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보호를 위한 특별 규정, 프랑스와 이스라엘은 정보·테러 대응 관련 특별법을 통해 형법과는 별도로 국가안보 위협을 규율하고 있다.

현재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이 아니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 역시 한국 사회 내부의 분열을 확대하고 안보적 부담을 키우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체제 위협이 구조적으로 확장되는 이 국면에서 국가의 마지막 방어선을 스스로 허무는 선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안보는 선언이나 이상이 아니라, 실질적 위험에 기반해 국가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임을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다.

모든 법이 그렇듯 국보법도 완벽할 순 없지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오늘의 번영을 이루는 보루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북한의 체제 전복 공작을 차단하며 혼란 속 국가를 지탱한 역사적 주춧돌이자 현재의 안전판인 국보법은 남북 대치 국면이 지속되는 한 존재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 생존을 지탱하는 마지막 방패를 스스로 없애는 건 위험만 키우는 무모한 실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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