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건표의 연극 리뷰] 윤한솔 연출 형식에 갇혀 무덤이 된 비극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B급 코드의 유희로 끊긴 비극의 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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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독일에서 2023년 초연한 바 있는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안트로폴리스(Antropolis)'는 신과 인간. 인류 문명의 비극성을 재해석해 다루는 시리즈로 <프롤로그/디오니소스>, <라이오스>, <오이디푸스>, <이오카스테>, <안테고네/에필로그>가 5부작으로 완결된다. 고대 신화 5편 중 윤한솔 연출의 <프롤로그 디오니소스>(명동예술극장, 국립극단)는 프롤로그부터 낯익은 전경들이 고대 그리스 비극 뮤직비디오 촬영 세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펼쳐지는데, 공간부터 탈서사화한다. 드레싱룸을 통째로 무대 위에 올려놓고 배우들은 촬영 스탠바이를 하듯 메이크업과 헤어 손질을 하기도 하고, 드라이기를 쓰거나 캐릭터 의상을 입고 활보한다. 실제 분장사가 등장한다든가 하는 연출 콘셉트가 익숙한 장면들인데, 윤한솔의 연극에서 배우는 매개자이고 퍼포머이며 연출 신호를 수행하는 서사적 기호이고 장치다. 서사는 분열되고 몰입과 집중을 교란하며, 극 중 장면의 에피소드는 시각적 놀이와 환경으로 의도적으로 교란한다. 무겁거나 진지해지면 윤한솔은 어김없이 낯선 시각적 전경으로 교차하고 배우는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나)로 태연하게 돌아온다. 윤한솔 연출 형식에 갇혀 "B급 코드의 유희로 끊긴 비극의 전류"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이야기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감각의 교란과 균열

무대는 카메라, 조명, 리허설등의 메타 요소를 통해 비극의 무대를 촬영하는 세트장처럼 '제작 과정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문명화한다. 연출은 때로 극장 내부 전면등을 켜거나 스태프들의 동선을 그대로 노출해 연극적 마법의 일루전을 깨고 균열시켜, 연극이 곧 현실임을 환기하며 극을 바라봄을 '지각 (知覺)'하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객석에도 난입해 의도적으로 제4의 벽(극적 환영)을 허문다. 마치 윤한솔의 장난기로 발동되는 연출 콘셉트의 형식은 '듣기 방식'보다 시각으로 기억하고 감각시키는 실제와 환각의 교차 표현 방식을 고수하는데, 누군가는 연출 형식과 표현 방식을 두고 랑시에르의 '감각의 재분할'이라고 해석한 평론글을 읽은 적이 있다. 크게 동의하기 어렵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서사 체계를 재배치하고, 감각 기관으로 자극적 신호를 보내기 위해 무대의 위계를 해체해 연출 표현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독일과 유럽권에서는 이미 현대 연극 장치로 평균화된 시도들이다. 고전 연출 형식에 가깝고, 현대연극 연출자들도 부분적으로 재료들만 차용해 쓸 뿐이다. 폐차장에서 명차의 부속품만을 쓰는 경우로, 특정 형식이라 할 수 없다.

상상해 보자. 만약 무대에서 신과 인간의 대립과 갈등을 극대화해야 하는 장면이 있다면, 구조적인 연출은 공간 미장센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윤한솔 연출 방식을 선호한다면, 이미지·소리와 사운드·오브제·영상·퍼포머의 행위로 교란해 재구성된다. 이렇다. 갈등을 대체할 만한 라디오를 틀어 특정 장면이 감각될 수 있도록 상징적으로 재구성하기보다, 라디오를 틀었다가 이미지로 전환하고, 영상 화면을 교차해 보여주다가 연출적으로 편성된 드라마 장면을 형성하는 교란 방식이다. 이러한 연출 방식이 무대에서 정속 주행을 못 하면 산만해지고 극은 균열된다. '의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감각의 분할'은 양방향 속도가 달라도 마지막 플롯 종점에서 극을 지각하게 되는 것은 일정하다. 산만함도, 극을 균열시키는 의도적인 연출 행위도 극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안트로폴리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도 연출의 주특기가 전면화된다. 국립극단 제작비가 안정적이니 전작보다 과감하게 접근한다. 오히려 이 지점들이 독일 초연 작품보다 한발 더 들어가, 고전의 비극성을 현대화하기보다 연출 형식에 갇힌 비극이 된 구조를 형성한 느낌이다.

연출의 말을 들어보자. 한 일간지 인터뷰를 통해 "서양과 달리 우리에겐 신화가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작품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B급 코드를 가미했다고 밝힌 바 있다. B급은 정서를 감각하거나 지각적 사고를 전류하지 않는다. 충동과 오락은 유치하면서도 광란의 질서가 있다. B급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철학자 한 사람은 "예능을 보면서 사고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B급 코드 놀이에 올라탄 그리스 비극과 신화는 B급 욕망으로 전소하기에는 무게가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비극처럼'의 무게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밝힌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는 한 편의 왕권 권력 찬탈의 정치사다. 디오니소스의 저주로 어머니 아가우에(김시영 분)에 의해 사지가 찢겨 파멸에 이른 테베의 왕 펜테우스(고용선 분)를 누굴 상징하느냐는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분열된 정치적인 해석과 독이 든 화살은 없었다. 무대는 연극적 규칙과 구조를 이탈해 탈극장화하거나 서사의 몰입을 분열시키며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좌우 출입구도 개방하고, 크루들도 무대 세트를 점검하는 장면들도 그대로 노출된다. 전면에는 영상 스크린 도어를 달아놨고,"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는 현재입니다"로 알람 설정을 하는 듯한 디지털 시계도 현재 시간으로 표기된다. 마치 '비극의 문명, 테베' 라는 메이킹 필름과 광고를 촬영하는 현장처럼.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B급 코드의 유희로 끊긴 비극의 전류

그 밑으로는 독일 초연 작품에서는 타이코 드럼(일본식 대형 북)으로 21명의 드럼 연주자들을 활용했는데, 명동예술극장으로 날아온 디오니소스는 마치 조용필의'위대한 탄생'처럼 5명의 라이브 연주자들이 비극 뮤직비디오 촬영장을 점령하는 것 같고, 상단 위는 신화의 주인공들인 신들이 천상에 있는 것처럼(신의 공간)은 콘테이너로 대체된다. 무대 공간은 시간이 특정되지 않고, 오케스트라 공간부터 좌우 전면과 후면까지 개방된다. 때로는 영상 캠이 라이브로 작동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와 뉴스를 병행 촬영하는 유튜브 촬영 현장 같기도 하다. 또한 연출 형식을 만드는 레시피들이 비극을 코미디 프로그램을 연상할 수 있는 패러디로 시각화되는 연출 기법도 활용된다. 극중 장면에 따라 자막, 영상, 이모티콘, 사건들의 뉴스화와 극과 영상을 교차적으로 전원을 켜며 <프롤로그 디오니소스>는 웹툰처럼 보여지는 전경 구조와 비극의 탄생을 메타적 놀이처럼 현재 시간으로 전환한다.

프롤로그 파트는 백제가 멸망하고 조선의 건국을 보는 것 같은 정치 권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마치 테베를 건국하는 시간 속에서 권력 갈등과 대립, 인간의 욕망과 폭력, 그리고 광기, 그 사이에 그리스 신들이 끼어드는 정도다. 건국사와 다른 점은 '신화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프롤로그 파트는 테베(Thebes) 도시의 기원을 다룬다. 문명의 시작으로 카드모스(장성익 분)를 중심으로 한 왕가의 가계도를 피로 물들게 하는 신화, 테베의 건국사다. 약 50분 정도 끌고 가는 프롤로그 파트는 2부 디오니소스의 복수 파트로 넘어가기 전, 테베 문명의 건국사를 문자, 이모티콘, 예능 프로그램처럼 입체적인 자막을 삽입해 비극 서사의 이해도를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린다. 그런 만큼 카드모스가 주축이다. 신화 속 카드모스는 테베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테베는 페니키아 왕자 카드모스가 제우스 신에게 납치된 여동생 에우로파를 찾다 건설한 도시다. 여동생 에우로파(Europa)를 잃은 뒤 신탁을 따라 도시를 세웠고, 용을 죽여 그 이빨을 뿌려 출생해 살아남은 다섯 명의 전사들이 폭력과 피의 제물로 세워진 피의 도시가 테베 문명의 시작이다.

라이브 캠은 때로 신과의 대화처럼 들리고, 때로는 현대화되어 가는 테베의 땅과 인간들을 상징하는 도구로 확대된다. 투사된 영상 프레임은 무대에 배치된 도시 문명이 발전(수레, 우물, 집, 성벽 등)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도시는 점차 상징적으로 윤곽을 드러내 보인다. 문자와 글, 도시화의 변화가 웹툰의 전경으로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연출은 테베를 세운 카드모스의 몰락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심완준 분)를 섹슈얼리티한 중성적인 인물로 조롱하고 풍자 코드로 이미지화한다. 마치 뿔은 제의(祭儀)의식, 죽은 자를 연상하게 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제의 때 신도들이 쓰던'티아라(머리 장식)'를 웹툰 캐릭터적인 익살스러운 이미지로 현대적으로 변형했다. 1부 프롤로그는 신의 자리에 세운 도시의 저주가 테베의 혼돈과 피로 물든 광기와 파멸로 이어지며, 혼돈의 도시가 되어 가는 문명 과정을 영상과 이미지, 자막과 광고, 현대판 뉴스와 주가 정보 등으로 핵심 정리해준다. 때로는 영상 캠을 전면화해 폭력과 무질서해져 가는 혼돈의 대립 구도를 생방송 중계하듯 스크린에 라이브화해 비극적 서사를 유지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120분 정도를 달리는 2부 디오니소스 파트는 윤한솔스러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무대는 아우토반을 달릴 것 같은 디오니소스의 전용 자동차까지 올려놓고, 콘테이너를 타고 바쿠스의 여인들이 내려오며, 코로스의 현란한 뮤지컬적 앙상블을 보여주면서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신도들』을 각색한 <디오니소스>로 구성된다. 비극의 록 뮤지컬 갈라쇼 현장 같은 분위기다. 디오니소스(조의진 분)는 제우스(Zeus) 신에게 바치는 종교적 제의로 시작된 고대 올림픽 경기 선수처럼, 제우스의 가계도를 잇는 출생의 이미지를 익살스럽게 부각하기 위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팬티형 타이즈를 착용했다. 상의 흰 체육복에는 월계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승리의 상징이었던 월계수가 마치 디오니소스가 제우스의 적통자로 '신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듯한 표식으로 현대적 캐릭터로 작용한다.

2부의 핵심은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의 출생 논란, 테베로 돌아온 디오니소스, 신을 부정하는 펜테우스, 그리고 테베 시민들에게 디오니소스를 추앙하는 축제에 참여하지 말라는 독재적인 행정 명령 발동 등, 카드모스가 손자 펜테우스에게 테베의 왕권을 넘겨준 뒤 디오니소스와 인간 펜테우스의 대립과 복수가 핵심이다. 이 복수의 광란을 마치 신구 정치권의 대립이나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글들도 보이는데, 과한 연결이다. 정치권을 연상할 만한 연출적 장치들은 보였지만, 완전한 한국사회 정치권 분위기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다. 2부는 "신성을 거역하면 도시와 인간은 피로 파멸될 것이다."의 정규편이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라이브캠으로 읽는 신화, 웹툰으로 보는 비극

2부 디오니소스 파트는 용의 이빨로 세운 도시답게 "어서 옵서예, 이빨의 도시 테베"처럼 현대화된 도시가 제주 지역을 연상하게 하는 광고 이미지로 패러디되고, "이빨의 도시–테베" 방문단을 환영하듯 코로스들은 뮤지컬적인 앙상블로 서막을 보여준다. (코로스로 분한 시즌 단원들과 앙상블 배우들은 상당한 연습량을 보였다. 기량을 끌어올린 연습과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럼에도, 언어 위주로 체질화된 배우들은 안무 등에 큰 무리가 없었음에도 전문 뮤지컬 코로스보다는 전체적으로 다소 둔탁한 느낌은 없지 않았다. 배우로서 몸의 유연성이 숙성해 가는 변화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2부 디오니소스 파트는 1부 프롤로그보다, 할아버지로부터 왕권의 권력을 넘겨받은 펜테우스의 도시답게 현대화되기도 하면서도 펜테우스의 이미지는 왕권의 적자임을 드러내는 고전 번역극에서나 볼 만한 의상으로 캐릭터를 대체한다. 테베로 돌아온 디오니소스의 경고에도 펜테우스는 출생 논란을 부추기며 신(디오니소스)을 부정한다. 혼란에 빠진 테베 시민들에게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의 제의 의식을 금지하고 숭배 금지 명령을 내리는데, 무대 중앙 스크린에는 "이 시각 펜테우스 궁정 현장"이라는 자막이 뜨며 왕의 특별 담화 형식의 긴급 속보로 처리된다.

자막은"집 나간 모든 여성들, 즉시 복귀하지 않을 시 처단"이라는 문구와 함께 테베의 분위기는 계엄이라도 터진 것처럼 살벌해진다. 이 극중 장면부터 연출은 마치 12·3 계엄을 연상하게 하는 영상을 패러디화하고, 자막으로'내란','계엄','처단'등 익숙한 문구가 뉴스 속보처럼 처리되면서 현실 정치를 환기할 수 있는 연출적 장치를 살짝 밀어 넣는다. 그러나 정치적 의미는 크게 작동되지는 않는다. 현실 정치와 연결하려는 재료로서의 풍자 코드다. 펜테우스의 강력 대응에 몰린 디오니소스는 마치 계엄 사태 이후 체포 현장처럼 분위기를 영상화한다. 디오니소스는 무대 위 전용차로 아우토반을 달리며 복수를 다짐하는데, 영상을 투사해 타이트한 앵글로 감정 상태를 드러내고, 펜테우스에게 저주를 내리기 위한 디오니소스의 작전을 보여준다. 여기까지의 극중 장면은 연출의 장난기가 최고조로 발동되는 휘발성 있는 지점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신을 거부하고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며 테베를 절대 통치화한 펜테우스의 죽음이다. 디오니소스는 함정을 판다. 펜테우스를 신성으로 유혹하고, 펜테우스는 신의 주술에 걸려 여장(女裝)을 하게 되며, 박카이 여인들의 제의를 염탐하게 된다. 무대는 광란의 축제를 영상화하듯, 박카스로 분한 코로스들의 현란한 제의적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영상으로 투사된다. 여성으로 나타난 펜테우스는 이미 카드모스로부터 권력과 왕권을 지켜온 테베 땅에서 남성 권력을 상실한 젠더성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전복한다. 펜테우스를 처형하기 위한 디오니소스의 복수의 화살은 아가우에로 향한다. 연출은 아가우에에 의해 사지가 잘려 나가는 극중 장면부터 비극성을 발휘하는데, 프롤로그부터 달려온 시간까지 윤한솔 구조(듣기 방식보다 시각적 기억으로 감각시키는 실제와 환각(환영)의 교차 표현 방식)의 풍자, B급 감성과 키치한 극중 분위기, 그리고 연출의 장난기가 전 장면부터 강해서일까. 비극의 허들을 넘기기 전부터 엄숙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숨을 몰아쉬는 기분이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고 제의를 금지한 펜테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가족과 도시 전체를 '광기의 제의'속으로 몰아넣는다. 다시 극중 장면을 보자.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 형식의 무덤이 된 비극

무대는 광란의 축제를 형상화한다. 아가우에(김시영 분)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신의 제의에 취한 '바쿠스 여인'이 된다. 인간이 아닌 신(디오니소스)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다. 이것을 연출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포도주의 오크통 장면이다. 펜테우스의 사지가 잘려 나가는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무대 후면은 비닐로 덮여 있고, 상단에는 디오니소스의 예언처럼 피(죽음)의 포도주가 오크통을 형상한 천장 구조물에 담겨 있다. 등장하는 아가우에(김시영 분)의 머리 위로 디오니소스의 저주가 담긴 포도주의 핏물이 쏟아지는 것을 시각적으로 전경화한다. 바닥은 마치 피로 물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상하고, 여장으로 변한 아들의 머리를 짐승(사자)으로 보이는 환영 속에서 바라보며 아들 펜테우스를 신에게 바칠 제물로 믿게 된다.

그의 머리를 죽창으로 찌르고 사지를 난도질하는 장면이 노출된다. 인형으로 형상화해서인지 비극성의 감도가 낮아질까, 영상으로 부감화해 아가우에와 펜테우스를 포함한 왕권 가문의 몰락, 디오니소스의 저주와 복수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환영에서 깨어나 인간으로 돌아온 아가우에는, 사지가 찢겨 나간 존재가 아들 펜테우스임을 깨닫는 순간, 극중 장면은 모성의 절규와 인간의 파멸로 향한다. 사지를 수습하고 울부짖는 극중 장면은 비극적 분위기를 영상 캠으로 이원 생중계하듯 확대한다 해도,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기에는 한계를 보였다.

연출은 이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테베를 죽음과 파멸로 소멸되어진 땅(무덤)으로 전환하고자 무대를 형광등으로 흑백화한다. 프롤로그부터 디오니소스 파트까지 연출적으로 이 극중 장면의 활애가 크다. 연출은 이 장면에서 미장센화 된 윤한솔스러움으로 승부수를 건 듯 보였다. 그런데 오히려 인형이라는 시각적 질감 때문인지 비극성을 감각시키지 못했고, 무대로 떨어지는 오크통의 포도주는 연출적 콘셉트만 그로테스크했다. 자식을 죽인 아가우에와 테베의 권력과 왕권의 몰락을 가져온 카드모스의 마지막 대화는 비극적이지 않았고, 형식적인 대화로 들릴 만큼 마지막 장면에서 비극성으로 전환한 극 중 장면의 허들을 넘어서지 못해 보였다. 국립극단이 제작하는 그리스 비극 5부작 시리즈 중 윤한솔 연출의 <프롤로그 디오니소스>는 비극의 무게도, 정치권의 대립이나 12·12 계엄을 연상하게 할 만한 극의 맥락도 효과적이지 못했고, B급 감성으로도 완전한 질주가 되지 못한 인상이다. 남는 것은 윤한솔 연출의 형식뿐이었고, 디오니소스는 그 무덤에 갇혀버린 비극 같았다. 앞으로 국립극단이 '롤란트 쉼멜페니히'를 한국 사회로 재소환한 비극 5부작 시리즈가 어떻게 우리 체질에 맞게 무대화되고 정착될지는 안갯속이다. 1부작의 출발은 윤한솔 연출의 형식만을 보여주는 연출 노트처럼 보였다. 2부작은 김수정 연출로, 배우 전혜진이 1인 18역을 맡은 <라이오스>(Laios)가 11월 6일부터 22일까지 공연된다.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프롤로그 디오니소스. 국립극단.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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