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하순의 바람이 만개한 벚나무를 흔들자, 방사형의 흰 꽃들이 일제히 가지를 이탈했다. 물끄러미 창밖을 보던 수연은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커피를 마저 마셨다. 꽃들은 붉은 수술을 흔들며 야리야리하게 허공을 떠다녔다. 수연은 앞치마 끈을 조이며 일어섰다. 점심 장사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경기가 나쁘니 장사가 안되니 해도, 어쨌거나 점심시간은 바빴다. 수연이 운영하는 식당 인근엔 빌딩과 상가가, 무엇보다 이 도시 최고라는 대학병원과 크고 작은 의원이 몰려 있었다. 정오를 시작으로 한두 시간은 일제히 쏟아져 들어오는 직장인들로 정신이 없었다. 난리통이란 게 이런 걸까 싶었다. 그러나 휘몰아치던 손님들이 점심시간을 끝으로 빠져나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식당엔 정적이 찾아왔다.
수연은 테이블 정리를 끝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식사를 권하고 그들과 좀 떨어진, 밖이 잘 보이는 창가로 가 따로 밥을 먹었다. 안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밖의 소란함이 실감 났다. 수시로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귀를 파고들어 머리를 울렸다. 수연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태연히 밥을 먹는 자신이 신기했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엄마가 수연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한 건, 오 년 전 이맘때였다.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거였다. 수연은 식당에서, 시장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 엄마에게로 뛰어갔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것이 엄마의 위태로운 들숨 날숨 탓인지, 자신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날은 앰뷸런스보다 수연이 먼저 도착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병원의 진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몸에는 이상이 없다, 정신과 진료를 권한다.
내가 미쳤다는 말이냐며 엄마가 화를 냈다. 수연은, 정신과를 가보라는 의사와 노여워하는 엄마 사이에서 어지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찾지 마.'라는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다. 수연은 찾지 말라는 엄마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곳은 이단 사이비 단체가 운영하는 기도원이었다. 어떤 이의 죽음으로 실체가 드러난 그곳에서 엄마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마른 모습이었다. 경광등을 번쩍이며 구급차가 도착했고, 엄마는 들것에 실려 옮겨졌다. 수연은 기도원의 무엇이 엄마를 미혹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간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는 비로소 정신과 진료를 받아들였다. 엄마의 병은, 범불안장애로 나타난 신체질환에 의한 정신질환이었다. 분명한 건, 어쨌든 약을 먹으면 좋아진다는 거였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엄마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엄마의 잠든 모습 위로 기도원 전면에 커다랗게 붙어있던 '구원'이란 글자가 겹쳐졌다.
언제부턴가 수연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 걸려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엄마와 달리,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는 수연의 증상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저 사람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수연은 곰탕 국물에 만 밥을 숟가락으로 뜨며 남자를 보았다. 전동휠체어의 남자는 식당 앞 입간판의 메뉴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구급차만큼이나 수연의 식당 앞을 많이 지나다니는 것이 또 환자였다.
안면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밥을 다 먹고 티백을 우린 메밀 차까지 마신 뒤에도 휠체어는 그 자리에 있었다. 수연은 씻은 컵을 스테인리스 건조대에 올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가까이서 본 남자는 생각보다 앳되었다. 많이 잡아도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이었다. 머리는 열한 시 방향에, 발끝은 발판에 있었지만 오른 무릎이 살짝 안으로 돌아간 삐뚜름한 모습이었다. 그의 장애는 한눈에도 중증이었다. 팔걸이에 얹힌 팔은 기능을 상실해 손가락으로 간신히 휠체어의 버튼을 누르는 정도였다. 수연은 남자처럼 머리를 기울여 그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갔다. 각종 쌈 채소를 곁들인 불 향 입힌 불고기.
그때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힘들게 통화버튼을 누른 남자가 거치대 쪽으로 고개를 더 기울이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서 합니다." 낮고 차가운, 짜증이 역력한 말투였다. 수화기 밖으로 나이 든 여자의 음성이 길게 이어졌다. 괜히 머쓱해진 수연은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의 휠체어가 식당 쪽으로 움직였다. 수연이 얼른 문을 열었다. 수다를 떨던 아르바이트생들이 문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수연은 직원에게 그냥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하는 동시에 식탁 의자를 빼 휠체어 공간을 만들었다. "불고기 드려요?" 그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식탁 위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먹지 않았다. 뜨거운 불에 막 볶아낸 고기가 김을 피워올리며 식어가고 있었다. 보다 못한 수연이 휠체어 앞으로 다가갔다. "왜 안 드세요?" 그러나 수연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수연은 남자 맞은편에 앉았다. 물티슈로 자신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닦았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펼치고 찰진 밥과 윤기 흐르는 고기, 마늘과 쌈장을 순서대로 얹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상추 끝을 야무지게 오므려 남자 앞에 내밀었다. 그 눈빛, 수연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받아들이고 싶은 그의 눈을 수연은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남자가 입을 벌렸고, 그녀는 그 안으로 쌈을 밀어 넣었다.
그가 음식을 삼키면 수연이 다시 쌈을 쌌고, 그녀가 쌈을 싸면 남자는 다시 입을 벌렸다. 혀 위에는 잘게 조각난 상추와 부서진 밥알이 남아있었다. 식당엔 음식 씹는 소리와 젓가락의 쇳소리뿐이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했고 그들 외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남자가 쌈을 넘길 때마다 수연은, 그의 목젖을 타고 어둡고 아득한 유년의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들의 바닥에서 자신에게 더운 밥을 먹이는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밥공기와 불고기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먹었어요. 정말이에요. 네, 천천히 오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수연은 거리에 서서 남자의 휠체어가 멀어지는 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앞치마 주머니에 넣어둔 전화기를 꺼냈다. "엄마? 식사는?"
반짝,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도시의 하늘이 여린 오렌지빛으로 번져갔다. 벚나무의 꽃진 자리가 유난히 말갰다. 엄마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자주 울먹였고, 수연은 추임새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수연의 눈에 꽃이 들어차기 시작한 것은.
발밑엔 온통 꽃의 행렬이었다. 봄꽃들이 바닥에 흐드러져 마치 아스팔트가 꽃을 피워낸 것 같았다. 낙화는 봄바람에 몰려다니며 수챗구멍에서 우르르 만발했다가, 함부로 내놓은 쓰레기봉투 주위로 헤쳐모였다.
수연의 눈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부시게 하얀 와이셔츠 위로 허리가 쏙 들어간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그녀의 식당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수연은 공기 중에 남아있는 달큼한 꽃향기를 밀어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저녁 장사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약력
-2018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2023 심훈 문학상 수상
-소설집 '야생의 시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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