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도훈 기자의 한 페이지] "더 맛있는 빵 봉사 위해 국가자격 취득했어요"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적십자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박영욱·조옥수·박애련·박연근 씨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근, 박영욱, 조옥수, 박애련 씨. 김도훈 기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근, 박영욱, 조옥수, 박애련 씨. 김도훈 기자

대구 달서구 두류동엔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가 운영하는 서부봉사관이 있다. 대구 유일의 적십자 봉사관인 이곳은 제빵, 제면, 반찬조리 시설을 갖췄다. 이곳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빵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며, 봉사의 즐거움을 느끼고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과 단체로 늘 북적인다.

한 달 평균 1만여 개의 빵이 만들어지는 이곳을 한결같이 지키며 시민과 제빵 봉사 전 과정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있다. 적십자 제빵 봉사원이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44세 봉사원부터 봉사경력 38년의 77세 봉사원까지 모두 15명이 활동한다.

이들 중에서도 제빵 책임봉사원(리더)인 박영욱(67) 씨를 비롯해 조옥수(68), 박애련(63), 박연근(60) 씨는 대구 적십자 봉사계의 모범적 인물이자 제빵 봉사를 이끌고 있다. 이들의 적십자 봉사원 경력은 20년 안팎, 개인별 누적 봉사 시간은 평균 1만3천700시간에 이른다. 직장인 근무시간(주 40시간)의 3분의 2정도(주 25시간)를 봉사활동에 쏟는다고 가정하면 1달이면 100시간, 1년이면 1천200시간이 된다. 그렇게 꼬박 10년을 하더라도 미치지 못 하는 봉사 시간이다.

지난 3일 오후 서부봉사관에서 이들을 만나 제빵 봉사와 나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제빵 봉사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박영욱) '사랑의 빵 나눔' 사업은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가 취약계층을 위해 벌이고 있는 대표적인 나눔 활동으로 기업이나 단체, 시민들의 후원으로 이뤄진다. 재료비 지원뿐만 아니라 제빵 과정에 함께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제빵 봉사가 이뤄지면 봉사원들은 참가자들에게 빵 만드는 방법과 주의점을 알려주고, 빵 반죽부터 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활동을 함께 한다. 시민들이 빵을 잘 만들 수 있도록 강사나 보조강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제빵 봉사는 보통 오전 10시쯤 시작해 오후 1시30분 전후쯤 마치게 된다. 제빵봉사원들은 시작시간 1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재료 계량 등 사전 준비를 한다. 참가자들이 가고 난 뒤에도 포장, 뒷정리 등을 해야 하기에 오후 3시가 돼야 모든 일이 끝난다. 오늘 같은 경우엔 2건의 제빵봉사가 있어 훨씬 더 바빴다. 오후 5시인 인터뷰 시간을 맞춰야 해서 아직 뒷정리할 게 남아 있다. 제빵 봉사는 1개월 평균 18건 정도가 이뤄지는데 점점 느는 추세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만든 빵을 포장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만든 빵을 포장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영욱 봉사원은 제빵 봉사를 이끄는 책임봉사원으로 열정이 대단하다. 지난해 전국 제빵 봉사원 가운데 처음으로 제과·제빵 국가자격을 취득해 주목받았다. 올해는 대한적십자사가 전국 봉사원을 대상으로 총 15명에게 주는 '올해의 적십자 봉사원상'에서 2등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박영욱) 저희 4명 모두 제빵 민간자격증은 있다. 그럼에도 국가자격증을 취득하자고 마음을 먹게 된 건 계기가 있었다. 2023년 하반기쯤 제빵 과정에 늘 함께해주셨던 강사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게 됐다. 10년을 넘게 했지만 선생님 없이 제빵 봉사를 이끌어가자니 무척 불안했다. 두려워하는 제 자신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활동을 하는 틈틈이 1년 가까이 준비했고, 지난해 하반기 제빵 자격증과 제과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올해의 적십자 봉사원상을 받은 건 지난해 서부봉사관에서 진행한 210건의 제빵 봉사 일정 가운데 제가 204건(참여율 97.2%)에 참여한 걸 적십자사 측에서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제빵 봉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봉사의 즐거움과 뿌듯함을 전하고, 빵을 기다릴 이웃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박애련 봉사원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누적 봉사 시간이 1만6천87시간으로 4명 중 가장 많다. 지난 9월엔 '제35회 대구 북구 구민상'을 받았다. 언제부터 적십자 봉사원 활동을 시작했나.

▶(박애련) 2003년 7월 적십자 봉사원으로 입회했으니 올해로 23년째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적십자봉사회 대구 북구협의회장을 맡았다. 협의회장 당시 관내 저소득 다문화가족 결혼식 지원 프로그램인 '다문화 전통혼례식'을 연 게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도 행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다문화가족이 우리 사회에 소속감을 갖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흐뭇하다.

제빵 봉사원 활동은 2019년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서 장애인 대상 활동보조 봉사를 하고,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반찬배달 등을 하고 있다.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영광스럽게도 북구민상(사회봉사효행 부문)을 받게 된 것 같다.

박영욱, 박연근 씨가 취득한 제과·제빵 국가자격증. 김도훈 기자
박영욱, 박연근 씨가 취득한 제과·제빵 국가자격증. 김도훈 기자

-박연근 봉사원은 4명 중 가장 젊은 나이지만 적십자 봉사원 경력은 가장 길다. 누적 봉사 시간도 1만5천900여 시간에 달한다. 2003년 2월 입회할 당시 나이가 30대 후반으로 상당히 이례적이었을 것 같다. 2021년부터 최근까지 적십자봉사회 대구 달성군협의회장을 지냈고, 올해 제과·제빵 국가자격증도 땄다.

▶(박연근)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다 그만두게 되면서 함께 복지시설 목욕봉사 등을 하며 봉사원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도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제빵 봉사를 시작한 건 2011년부터다. 당초 서부봉사관이 제가 살고 있는 달성군에 있었고, 2011년 봉사관 내 제빵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해 박영욱 책임봉사원도 합류했다.

국가자격증 도전은 박영욱 봉사원의 권유로 시작됐다. 나도 했으니 여러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준 덕분에 봉사원 10명 정도가 도전할 수 있었다.

다들 봉사활동을 마치고 힘든 가운데 저녁시간을 활용해 제과제빵 학원을 다녔다. 식구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새로운 도전에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돌이켜보면 자격증 취득 여부를 떠나, 자격증 준비를 한 덕분에 다들 제빵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큰 성과였던 것 같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만든 빵을 포장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만든 빵을 포장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도훈 기자

-조옥수 봉사원은 '2024년 적십자 봉사명문가'의 주인공이다. 적십자 봉사명문가는 대한적십자사가 직계 3대가 봉사를 통해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최우수 봉사원 가문에 수여하는 영예로운 표창이다.

▶(조옥수) 저는 사실 다른 분들과 비교하면 봉사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입회했으니 19년 동안 8천700여 시간 정도 봉사를 한 것 같다. 제빵 봉사는 2023년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두 딸과 외손자가 제 활동을 응원하고 동참해준 덕분에 이런 영광스런 표창을 받을 수 있었다. 올해 마흔 다섯인 큰 딸은 적십자사의 각종 사업에 응급처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마흔 셋인 둘째 딸은 저와 함께 제빵 봉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올해 제과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고 제빵 국가자격증 실기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손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적십자 봉사원으로 활동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박영욱) 만든 빵을 복지시설 등에 전달하고 잠시지만 말벗이 돼주는 것도 봉사원 몫이다. 어느 날 빵을 전달하기 위해 고령에 있는 한 재활원을 찾았다. 20여 년 전에 아들과 가끔씩 목욕 봉사를 갔던 곳이다. 당시 그곳엔 저를 엄마라고 부르던 한 청년이 있었다. 이날 그 청년을 만나면 보여줄 생각으로 예전 사진을 들고 갔었는데, 옛날 그 청년은 40대가 된 모습으로 저를 기억하고 엄청 반갑게 맞아주면서 사진을 보고 기뻐했다. 저 또한 가슴이 뭉클했다.

-봉사활동과 관련해 바라는 부분이나 희망하는 게 있나.

▶(조옥수) 저는 사실 봉사에 대한 꿈을 이뤘다. 지난해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저는 "온 가족이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후 감사하게도 가족들의 공감과 응원에 힘입어 가족 봉사회를 결성하게 됐다. 두 딸 외에도 남편과 아들, 며느리, 사위, 손주, 동생 등 16명이 참여해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빵을 직접 만들어 전하고 있다. 꿈을 이뤄 참 행복하다.

(박애련) 봉사를 통해 이처럼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

(박연근)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주어진 것만 해도 감사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근, 박영욱, 조옥수, 박애련 씨. 김도훈 기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제빵 전문 봉사원 4인방이 서부봉사관 사랑의 빵 나눔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연근, 박영욱, 조옥수, 박애련 씨. 김도훈 기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